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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어릴수록 ‘원초적 본능’ 조절 힘들답니다

등록 2005-06-19 14:23수정 2005-06-19 14:23

과거 남녀 차별 문화가 강하던 시절에는 남녀가 만나는 기회 자체를 제한했다. 그래서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몹시 고리타분하게 들리고 현실성이 없는 생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고루한 말 속에 오늘날에도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성 발달 과정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얼마 전 남녀 화장실의 구분이 모호한 구조인 한 유아원에서 남자 아이 몇 명이 호기심으로 여자 아이가 소변보는 것을 훔쳐보고 급기야 성기를 만지는 사건이 발생해 병원을 찾은 일이 있었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성적 호기심이 강할 줄은 몰랐다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유아원 화장실을 남녀가 함께 쓰도록 만든 것은 어른들이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만일 이 나이의 어린이가 성적인 자극에 몹시 민감하고 억제가 어려운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릴 때일수록 걸러지지 않은 원초적 본능이 강하기 때문에 교육에 의해 적절히 본능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성적인 억제가 강했던 조선 시대에는 예의범절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훈육이 어릴 때부터 강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결과 특히 여성에게 지나친 성에 대한 억제가 가해지고 오히려 건강한 성 발달을 가로막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온갖 성적 자극이 범람하고, 성 억제가 더는 미덕이 아닌 오늘날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행동의 결과를 스스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사고력이 발달하는 학령기에는 스스로 성적인 충동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이성에 대한 관심을 ‘고무줄 끊기’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한 예다. 하지만 이보다 어린 유치원 나이의 아이들은 훨씬 적나라하게 성적인 관심을 표현한다. 그 결과 뜻밖의 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은 어린 아이들의 왕성한 성적 호기심을 미리 경험으로 알고 어릴 때부터 성적인 본능을 잘 길들여야 한다는 지혜를 바탕으로 ‘남녀칠세 부동석’을 실천하신 것은 아닐까? 오늘날 어른들에게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성적 자극이 아이들에게는 지나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가정에서나 교육 현장에서나.

신의진/연세대 정신과 교수 yjshin@yumc.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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