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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남 몰래 정원 가꾸는 청소부

등록 2005-06-19 15:00수정 2005-06-19 15:00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카피(광고 문장)가 있다. 무엇을 선전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나는 이 카피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그래, 나도 그렇게 살려고 한 때가 있었지. 작은 섬마을 선생님이 되어, 자라나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이 잘 자라서 좋은 세상 만들도록. 그렇게 한세상 조용히 살다가 흔적 없이 가야지 하고.

하지만 20대 초반의 이 꿈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름 없는 섬마을 선생님에서 멋진 책을 꿈꾸는 편집자로 변신한 나는, 오늘도 어떻게 베스트셀러 한번 만들어 유능한 기획자가 되어 볼까 노심초사 중이다. 그러다 보니 이 카피가 조금은 찔리게, 조금은 묵직하게 마음에 남았나 보다.

어디 요즘 세상이 소리 없는 것을 좋아하는가? 이제는 묵묵함이나 부지런함조차 그 가치가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고 빠르고, 조금이라도 예뻐야 기억해 주는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정원>(보림)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카피를 생각했다. 이 책에는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 지하철 청소부 모스 아저씨가 등장한다. 모스 아저씨는 날마다 저녁이면 지하철역으로 출근해 청소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라지는 그곳이지만 지하철역은 그가 아끼는 직장이다. 어느 날, 모스 아저씨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터널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불편해 하는 것을 알고, 터널을 청소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환기구 한쪽 구석에 집에서 가져온 작은 나무를 심는다. 소리 없이 세월이 지나고 작은 나무는 점점 자라 마침내 지하철 환기구 뚜껑을 넘어 거리에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을 발견한 신문사와 방송국은 취재를 하기 위해 한바탕 북새통을 이루지만 이런 소동은 머잖아 잠잠해진다. 다시 세월은 흘러 환기구 주변은 나무들로 무성하고 도시의 시원한 그늘이 된다. 그리고 그 아래는 언제나처럼, 그러나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모스 아저씨가 승강장 청소를 마치고 지하 정원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고 싶게 만드는 <지하정원>은,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 지은이가 뉴욕에서 만난 실제 인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배수원/주니어김영사 편집부장 swbae@gimm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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