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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성폭력은 개인 아닌 사회문제랍니다”

등록 2010-08-08 15:21수정 2010-08-15 17:59

이윤상(40)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윤상(40)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교육 인터뷰]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
사회적 편견·지인의 가해가 신고 걸림돌
학교 내 규범화된 성폭력 처리절차 필요
‘2차 피해’ 방지와 친고죄 폐지도 절실해
#1. 경기도 파주경찰서는 지난 7월20일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ㅁ초등학교 ㄱ교사를 구속했다. ㄱ교사는 지난 5월25일 방과 후 도서관에 남아 있던 2학년 ㄴ양을 빈 교실로 데려가 출입문을 잠그고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ㄴ양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는 담임교사의 말에 따라 성추행당한 사실을 한 달 넘게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ㄴ양의 어머니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딸의 모습을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딸에게 재차 묻던 중 담임교사의 성추행 사실을 알게 됐다. ㄴ양 어머니는 지난 7월초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ㄱ교사가 다른 학생도 성추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여죄를 찾고 있다.

#2.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 7월13일 제주시 ㅅ중학교 ㅂ교장이 이 학교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했다고 인정했다. ㅂ교장은 성희롱 혐의를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이 학교 여학생 10명은 인권위 조사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 가운데 ㅊ양은 <제주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교장 선생님이 ‘이쁘다’고 하면서 엉덩이와 어깨를 만졌다”며 “수치스러웠지만 차마 부모님에겐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일은 여학생들로부터 피해사실을 전해들은 이 학교 여교사가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인권위는 조만간 제주시교육청과 해당 중학교에 성희롱 결정문을 통보하고, 제주시교육청에 ㅂ교장을 경고 조치하라고 권고할 예정이다.

#3. 서울 ㄱ고등학교 o교사는 2008년 10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교내 생활지도부실 등에서 제자 ㄷ양을 7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o교사는 질문하러 찾아온 ㄷ양에게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격려하면서 끌어안는가 하면 몸을 더듬고 자신의 신체를 만지게 하는 등 성추행을 일삼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o교사는 이를 알게 된 학부모 고발로 지난 4월 구속 기소됐지만, 재판을 받던 지난 7월 중순 피해자 측과의 합의로 석방됐고, 공소도 기각됐다.

봇물이 터진 듯 학교 안 성폭력 문제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공교육기관에서 교육자가 학생 등을 대상으로 행해진 사건들이라 충격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학교는 대표적 성범죄 사각지대 가운데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왜 학교 안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걸까? 이런 일이 발생하면 피해자나 학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은 무엇일까? <한겨레>는 지난 4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40·사진) 소장을 만나 학교 안 성폭력 문제와 그 대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성범죄’라는 부끄러움에 더해 ‘학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학교 안 많은 성폭력 피해학생과 피해교사들은 신고조차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사실 학생이나 교사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라면 누구나 신고를 꺼린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07년 실시한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신고율은 2.3%에 불과하다. 성폭력 피해자 100명 가운데 98명은 피해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엔 ‘순결 이데올로기’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강도나 절도 등의 범죄 피해자가 부끄러워 신고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둘째는 성폭력 가해자와의 관계에 있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를 보면 성폭력 가해자가 ‘아는 사람’인 경우가 85%에 달한다. 성폭력 가해자가 직장 상사, 동네 선배, 아버지나 삼촌, 학교 선생님 등 피해자와 친밀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피해자들은 신고하길 무척 꺼린다. 신고 이후에 겪게 될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선뜻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 신고 이후에 겪게 될 ‘2차 피해’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

=2004년 11월 말 세상에 드러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밀양의 41명의 고등학생들은 5명의 여중생에게 1년여에 걸쳐 집단 성폭력을 휘둘렀다. 이 사실은 한 피해자가 이모의 설득으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정말 미숙하게 처리했다. 경찰은 신고 때부터 ‘비공개’를 약속했지만 언론에 피해자의 실명과 구체적 피해 사실까지 공개하고 말았다. 또 조사과정에서 애초 약속한 여경이 아닌 남자 경찰에게 성폭력 사실을 일일이 털어놓아야 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범인 식별실을 사용하지 않고 형사과 사무실에 피의자 41명을 세워놓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지목하게 했다. 당시 한 경찰관은 피해자들에게 “밀양물 다 흐려놓았다”는 말을 해 큰 모욕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 사건의 시사점은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대상’이 아닌 ‘트러블메이커’로 여긴다는 데 있다. 가정 성폭력을 신고하면 ‘가정 파괴범’, 학교 성폭력을 신고하면 ‘학교 망신’ 등의 말도 안 되는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1993년 성폭력특별별이 제정된 이후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이어져왔지만, 그 제도를 운영하고 시행하는 사람의 ‘인식’의 개선 없이는 성폭력 범죄 개선은 요원한 일이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성폭력 발생의 원인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차별적 성별 이중 규범이다. 쉽게 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사회가 ‘남자는 남자다워야’ ‘여자는 여자다워야’ 등의 성역할을 가르치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은 공격적이고 지배적’이며 ‘여성은 수동적이고 종속적’이라는 인식이 성폭력 범죄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둘째는 성(sex)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다. 남성은 ‘성’을 당연히 향유할 권리처럼 여기고, 여성은 ‘성’은 부끄럽고 위험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남성의 성적 실천에 대해 관대하게, 여성의 성적 발언에 대해선 무례하게 여기도록 한다. 이런 문화적 토양에선 성폭력 문제는 은폐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성폭력은 ‘사회적 권력 관계’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들이 ‘남자와 여자, 상사와 부하직원, 교수와 대학원생’ 등의 위계관계에서 발생한다.

‘학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교장과 교사, 교사와 학생, 선배와 후배’ 등의 위계가 공고한 곳에선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기 쉽다. 최근 ‘화학적 거세’나 ‘전자 발찌’ 등으로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가 하는데 이는 자칫 ‘성폭력 범죄=개인의 정신병리적인 문제’로만 생각하게 할 수 있다.

-학교 안에서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치자. 학교와 피해학생 등은 각각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은가?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학교는 그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하다. 이래선 문제를 더욱 키울 뿐이다. 성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학교에 공신력 있는 처리절차가 없다면 성폭력 전담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피해자가 학교 안팎에서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상급기관인 교육청이나 교육부는 성폭력 문제가 발생한 학교를 징계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학교엔 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피해학생은 현재 당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를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신뢰할만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야 문제 해결이 시작된다. 현재 전국엔 133개의 전문 성폭력 상담기관이 있다.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 이 기관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다.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나?

=무엇보다 신고율을 높이는 제도적,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강간과 강간미수 등의 성폭력 고소율은 7%이다. 고소된 사건 중 기소돼 재판에 회부되는 비율은 40%, 이 중 실형판결율은 20%이다. 즉, 1천건 가운데 실제 처벌을 받는 건수는 5.7건에 불과하단 것이다. 즉, ‘성범죄는 처벌될 확률이 아주 낮다’는 인식이 성폭력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러므로 신고율과 성폭력 수사 전문성을 보강해 성폭력 범죄의 유죄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신고율을 높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형법상 성폭력에 대한 ‘친고죄 규정폐지’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취지는 피해자 본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존중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성폭력을 ‘사회문제’가 아닌 ‘개인문제’로 여기는 한 성폭력 범죄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전문 상담기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전문 상담기관

글·사진 조동영 기자 dycho1973@hanedui.com

■ 바로잡습니다

지난 9일치 <함께하는 교육> 6면 ‘교육 인터뷰’의 인터뷰 대상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현상 소장이 아니라 이윤상 소장입니다. 기자의 착오로 잘못 보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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