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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차가운 친밀함’ 낳는 감정자본주의

등록 2010-09-26 15:52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우리말 논술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

[난이도 수준-고2~고3]

2. 감정자본주의 - 소셜 네트워크, 차가운 친밀함?

〈감정자본주의〉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돌베개

호손 공장 실험은 경영학에서 아주 유명하다. 1920년대 미국에 있던 이 공장은 전화기를 만들던 곳이었다. 원래 실험은 작업장 밝기와 생산량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작업장이 밝아지자 생산량이 늘었다. 그러나 작업장을 어둡게 해도 생산량은 늘었다. 평소와 똑같이 조명을 했을 때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도 생산은 많아지기만 했다. 실험 내내, 노동자들은 더 열심히 일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경영학자 엘턴 메이오(Elton Mayo)는 그 까닭을 ‘관심’에서 찾았다. 연구원들은 하루 종일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업은 힘들지 않은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도 끊임없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건, 연구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었다. 노동자들에게 자신을 관심 있게 지켜볼뿐더러, 자기 말을 세심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인정받는다는 느낌은 일에 신바람을 불어넣었다. 호손 공장의 실험을 통해 메이오는 ‘인간중심경영’을 내세우게 되었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호손 공장 실험을 산업에서 ‘감정’이 중요하게 된 계기로 꼽는다. 직장에서 사사로운 감정은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공(公)과 사(私)는 확실하게 가릴 줄 알아야 했다. 경영자는 규칙과 생산목표를 앞세워 노동자들을 몰아붙였다. 측은한 마음도 ‘애사심’과 ‘책임감’ 앞에서 지워버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 좋은 경영자는 훌륭한 상담자처럼 여겨진다. 노동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살필 줄 알아야 유능한 경영자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공과 사는 점점 섞여 버린다. 가족같이 따뜻한 일터가 좋은 직장이라 여겨지는 시대다. 직장 안의 갈등도 경쟁 때문이라기보다, ‘소통’이 안 되는 탓이라 여겨진다.

게다가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은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감정을 살피고 보듬을 줄 아는 능력은 ‘핵심 경쟁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에바 일루즈가 현대 사회를 ‘감정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반면, 감정자본주의에서 감정은 되레 천덕꾸러기가 되어간다. 예를 들어보자. 능력을 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잣대가 필요하다. 지능지수(IQ)처럼 ‘감정 능력(?)’을 나타낼 방법이 있을까? 감성지능(EQ)은 이 물음에 답을 준다. 세상은 이미 심리검사들로 가득하다. 감정을 가늠하는 여러 검사들은 그 자체로 커다란 산업이 되었다. 그럴수록 감정은 점점 알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실한 사람은 진짜 성실한 것일까?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탓에 조바심 내는 ‘강박증’은 아닐까?

심리학자들은 자꾸만 진짜 감정을 따져 묻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느끼는지를 떠오르는 감정에서 찾지 않는다. 숫자로 드러난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비로소 확신할 정도다. 디에스엠(DSM)은 정신병을 짚어낼 때 쓰는 진단표이다. 여기에 적히는 마음의 병은 늘어만 간다. 디에스엠에 ‘객관적으로’ 적혀 있지 않은 감정은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한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치일 뿐이다.

감정을 다루는 산업은 심리검사, 정신 의약품, 상담소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내 마음을 읽고 헤아려주겠다며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외롭고 헛헛할까? 에바 일루즈는 그 이유를 인터넷을 들어 설명해준다.

인터넷에서는 말 못할 깊은 감정도 털어놓을 수 있을 듯하다. 서로가 아이디(ID)만 내세우는 평등한 공간이니, 눈치 볼 것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서 나와 친구 될 사람을 구한다고 해보자. 먼저, 나는 나의 특성과 감정을 정리해 ‘등록’해야 한다. 생김새는 어떤지, 취미와 특기는 무엇인지 등등을 적고,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도 꼼꼼하게 밝힌다. 이러는 동안 나의 바람과 감정은 정리되고 분석된다. 감정은 사라지고 ‘객관적인 자료’만 남은 셈이다.

과연 나는 원하는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마음의 끌림을 논리로 풀어내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 가는 대로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적절치 못한 판단이라는 ‘안내문’을 보내올지 모른다. 나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만 느껴야 한다. 논리적인 분석이 직감(直感)을 밀어내는 꼴이다.

깊은 관계까지 나아가기는 더 어렵다. 인터넷에서의 만남은 늘 만족스럽지 않다. 끌리는 누군가를 찾았다 해보자. 그래도 인터넷에는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이들이 널려있다. 이 사람을 고르면 저 사람을 놓칠 듯싶다. 그래서 한 명에게 오롯이 마음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에바 일루즈는 인터넷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냉소’라고 잘라 말한다. 냉소란 ‘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과연 인터넷에서의 숱한 관계맺음이 나의 헛헛함을 달래줄까? 트위터 등을 써서 수천, 수만 명과도 직접 말을 트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서로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외롭고 조급해져만 간다.

“나에게는 ‘절친’(진짜 친한 친구) 수백명이 있어요.”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절실한 관계는 서로에게 남다른 관심을 쏟고 애정을 쌓을 때 이뤄진다. 수백 명과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나의 모든 시간을 사람들에게 바쳐야 할 테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진다.

이쯤 되면 에바 일루즈가 ‘차가운 친밀함’(cold intimacy)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이해가 된다. 감정자본주의는 자원을 고갈시키듯 감정을 메마르게 한다. 영혼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 트위터(twitter)란?

개인용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나누는 데 이용되는 온라인 서비스이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140자 남짓의 짧은 메시지로 온종일 대화를 나눈다.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로 여론 형성에 중요한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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