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규희/ 서울 월곡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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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희 체육 할래? 책 읽을래?”
“책 읽을래요.”
“정말?”
“네.” (아니, 체육에 목숨 거는 애들이 웬일이야?)
#2. “동진이(가명)는 아까 싸운 친구 생각하면서 <무지개 물고기와 흰수염 고래> 읽어.”
#1은 2001년 5학년을 맡았을 때 일이다. 그 해 가을 어린이 문학 강좌를 들은 같은 학교 교사들과 함께 동화 읽기 소모임을 만들었고, 아침 자습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부터 <잔디숲 속의 이쁜이>, <고양이 학교>까지 동화에 묻혀 살았다. 아마 <…이쁜이>의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아이들이 체육을 마다했던 것 같다. 아이들도 스스로를 신기해했다.
#2는 2002년 5학년 담임을 할 때 상황이다. 동화 작가 송언 선배가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에게 했던 방법인데, 형식적인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하고 있다. 읽고 나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면 쌓였던 감정이 풀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동진이는 아버지가 재혼해 형,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친구와 싸우며 지나치게 폭력을 썼다. 그랬던 동진이가 이듬해 스승의 날에 편지를 써 왔는데,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동진이의 6학년 담임 선생님도 놀라워했다.
강좌를 들은 이후 어린이 문학의 매력에 빠지면서 훨씬 더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 지도를 하게 됐다. 2001년 동화 읽어 주기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암탉>을 교사들과 읽을 때는 주인공 잎싹의 성장에 몰두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읽어 주다 보니 (어머니로서) 족제비의 처지가 마음을 찔렀다.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쁜이>를 읽을 때도 나는 이쁜이와 똘똘이가 그려 나가는 새로운 이상세계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창 연애에 관심이 많은 후배 교사는 둘의 로맨스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좋은 책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학교를 옮기고 나서 지난해부터 같은 지역의 선생님들과 동화 모임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맡았던 2학년 아이들이 올해 스승의 날에 써 온 편지에서 가장 기뻤던 말은 책 읽기가 즐거워졌다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책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독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교사나 학부모가 어린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나 학부모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부나 입시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멋있는 말로 아이가 책을 많이 읽게 하려고 유도한다. 문제는 아이들이 학부모나 교사의 마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도 실천하지 않는 행동을 따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 다르다. 스스로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계속 핑계를 대면서 하지 않는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을 찾아 읽어서 내면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독서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실제로 느껴야 아이들은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러려면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 보자.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많은 교사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만들어 가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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