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생명의 나무>(피터 시스 글·그림/주니어김영사)라는 그림책의 제목이 눈에 띈다면 당신은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찰스 다윈의 일생과 진화론’이라는 부제까지 읽게 된다면 한마디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뭐라고? 그림책이라는 게 기껏해야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읽는 책 아니야? 아무리 교육열이 높아도 그렇지, 요즘은 유치원생이 진화론을 배운단 말이야? 그러고 나면 슬슬 궁금해질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결국은 책장을 훌훌 넘겨볼 테고, 그럼 당신은 다시 한번 아연실색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림책에 대한 고정 관념에 도전하는 책이다. 그림책의 독자가 누구냐 하는 생각에, 그리고 그림책이 다른 어떤 책보다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며 친절할 거라는 생각에 대해 말이다.
모양새는 그럭저럭 우리가 아는 그림책의 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거기 담긴 내용은 만만치가 않다. 어린이는커녕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다윈의 생애와 진화론을 알고 싶다면 이보다 훨씬 쉽고 친절한 책이 많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 피터 시스라는 작가의 그림책인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피터 시스는 갈릴레이, 콜럼버스 등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인물들을 특유의 섬세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그림책에 담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에는 다윈을, 그가 살던 시대, 가족과 성장 과정, 비글 호의 항해, 논문 발표와 학계의 반응, <종의 기원> 출간과 말년에 이르기까지, 겨우 마흔 쪽 남짓한 공간 안에 정교하게 형상화하였다.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자료 수집벽을 지닌, 완벽주의자라고 해도 좋겠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윈의 편지와 일지, 저술 등을 토대로 관찰일지를 재현해낸 점이다. 다윈이 그림을 그렸다면 꼭 이렇게 그렸을 것만 같다.
이 책을 읽는 데는 품이 많이 든다. 다윈과 진화론에 대해 기초 지식이 있는 독자만이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독자든 열정적인 관찰자이자 수집가인 다윈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림책은 이미 다양한 종으로 진화하였다. 초등 고학년 이상, 청소년과 어른에게 권한다. 최정선/보림 편집주간 ebony@borimp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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