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더위가 교실 안팎을 후끈 달구어 놓고 있다. 교사로서는 이 즈음이 가장 힘든 때이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아이들과 시비가 그칠 날이 없다. 연이은 공부와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도대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탁월한 ‘카리스마’로 무장하거나, 충격적인 비법을 연마하지 않고서는 수업의 집중력을 높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오죽하면 수업에 들어가면서 ‘도 닦으러 간다’는 우스갯소리를 할까.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다. 시작 종이 쳤는데도 제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없다. 그래서 눈에 띄는 가까이 있는 녀석에게 ‘빨리 들어가라’고 소리를 치니 ‘다 돌아다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눈빛이 싹 달라진다. 그리고 돌아서며 한마디 덧붙인다. “열라 짜증나!”
수업 중인데 한 녀석이 책 뒤에 숨어 휴대전화 문자를 날리고 있다. 일단은 너그럽게 타이른다. “얘야, 핸드폰 하지 마라.” 그러나 아이는 얼른 책상 속으로 밀어 넣고는 딱 잡아뗀다. 옆 친구에게 응원까지 청한다. “야, 나 진짜 핸드폰 안 했지?” 교사는 속이 끓는다. 수업하다가 끝 종이 치면, 선생님이 뭐라거나 말거나 책을 탁탁 집어넣고 벌떼같이 일어나 삼삼오오 무리를 짓는다. 교탁을 치며 호령해 봐야 이미 상황 끝이다.
사정이 이러한즉 매시간 신경이 곤두서고, 수업이 끝나면 머리가 뜨겁다. 의자에 앉아 길게 호흡이라도 해야 감정이 수습된다. 하긴, 어디 교사뿐이겠는가. 짐작컨대, 아이들의 행태가 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니, 부모들도 어지간한 ‘도인’이 다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이 ‘웬수’들의 모습이 좀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하굣길에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코도 반짝, 눈도 반짝, 그렇게 밝고 건강할 수가 없다. 그렇게 속을 긁어놓던 녀석들이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며 온갖 아양을 떨기도 한다. 이런 녀석들을 붙잡고 장난삼아 시비를 걸거나 수다를 떨고 나면, 노여움과 피곤의 무게가 반쯤은 떨어져 나간다. 느긋해지니까 아이들의 등짝이 크게 미울 것도 없다.
퇴근 길에 다시 학교로 되돌아오는 여선생을 만났다. 학급에 장염 때문에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오늘따라 얼굴이 해쓱해 보여서 ‘뭐 좀 사줄까’ 했더니 알탕을 먹고 싶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리고 나가서 한 그릇 같이 먹고 오는 참이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 웃음이 그렇게 시원해 보일 수가 없었다.
맞다. 아이들의 못난 점만 겨냥해서 칼을 뽑을 게 아니라, 스스로가 기분 좋게 해낼 수 있는 것으로 소통의 통로를 뚫어 보는 것. 덥고 지칠수록 이게 묘방이 될 듯 싶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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