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문고 ‘일반계 복귀’ 교육청 반대로 포기
재정부족 우려…교과부 “학교·재단이 책임져야”
재정부족 우려…교과부 “학교·재단이 책임져야”
2011학년도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신입생 모집에서 무더기 미달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원의 37%밖에 채우지 못한 서울의 한 자사고가 일반계고 전환을 추진했다가 다시 자사고 유지를 결정하는 등 교육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자사고 확대 정책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용문고는 내부 논의를 거쳐 자사고 전환을 포기하고 일반고로 복귀하기로 결정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의 승인을 받지 못해 자사고 전환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학교는 지난 17일까지 신입생 추가모집을 했는데도 455명 모집에 168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0.37 대 1에 그쳤다. 용문고의 한 간부급 교사는 “학부모 동의 여부에 따라 일반고 복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교육청이 승인해주지 않았다”며 “교육당국이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해놓고 학교 현장에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용문고가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해왔지만, 이미 자사고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믿고 지원한 학생과 학부모들에 대한 신뢰 보호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게다가 이 학교만 갑자기 일반고로 전환하면 20일부터 진행되는 후기 일반고 모집 일정에도 큰 차질이 빚어진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교육청 관계자도 “이미 신입생 모집 절차가 완료돼 합격자가 정해진 상황에서 현행법상 일반고 전환을 수용할 방법이 없다”며 “대신 자사고 미달 사태가 재연되거나 운영상 문제점이 드러나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 성북구 용문고 대강당에서 열린 ‘신입생 긴급 학부모 대책회의’에선 학부모와 학생 180여명의 성토가 이어졌다. 한 학부모는 “대규모 미달 사태가 나면서 (학비를 못 받으면) 재정에 문제가 생길 텐데, 불안해서 아이들을 어떻게 학교에 보내느냐”고 말했다.
학부모 박아무개(49)씨는 “학교 쪽에서 대책회의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은 뒤, 용문고가 일반고로 전환을 신청했다는 뉴스를 보고 급히 달려왔다”며 “집에서 1시간 거리인데도 자사고라서 아이를 지원시킨 우리 처지에선 학교가 미달이라도 자사고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유식 용문고 교장은 “(미달 사태 탓에) 매년 11억원, 3년 동안 33억원의 학교 운영비를 재단이 부담해야 하지만 자사고로 끝까지 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사고 확대를 추진한 교과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자사고는 학교 운영에 자율권을 주는 대신 책임도 학교와 재단이 져야 한다”며 “(자사고) 운영은 각 시·도 교육청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과부는 대책을 내놓을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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