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난이도 수준-중2~고1]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35 (마지막회) /
열한 살 그녀는 ‘올백 소녀’다.
나는 초딩 은서의 별명을 그렇게 지었다. 이런 말을 던지면 ‘재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자신의 딸이 ‘공신’(공부의 신)임을 만방에 자랑하려는 팔불출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시험만 봤다 하면 올백! 전교 1등 ‘올 100점’ 소녀를 떠올리리라. 어림없는 판타지다. 은서는 ‘All Back’ 소녀다. 해석을 잘해야 한다. 완전히 뒤로 넘긴 ‘올백 머리’와도 관련 없다. 은서의 굴욕을 상징하는 한마디. 백이면 백, 글을 쓸 때마다 퇴짜를 맞는 ‘올 빠꾸’ 소녀!
그녀의 오빠, 열네 살 준석은 동생을 보며 혀를 찬다. “얼마나 글이 한심했으면….” 그런 준석에게 묻는다. “너는 무슨 소년이냐?” 당당한 대답이 되돌아온다. “훗, 저는 에이피소년이죠.” “에이피?” “All Pass라는 말씀.” 헉! 그건 아니올시다. 흰머리 하나 없지만, 준석을 ‘반백 소년’으로 칭하는 바이다.
통계를 보면 그렇다. ‘홈스쿨’을 시작한 뒤 남매의 글을 저장한 한글프로그램 폴더를 열어봤다. 무려 200여편이다. 퇴짜당한 원고도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중 은서의 것이 110편이다. 총 35회치를 썼으니, 1회 평균 두 번 이상을 ‘불합격’당한 셈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은서는 단번에 통과한 적이 없다. 준석도 사정이 훨씬 낫지는 않다. 총 77편이다. 1회 평균 한 번은 다시 쓴 셈이다. 대여섯 번 남짓은 단숨에 통과했다는 게 조금 위로가 될 뿐. 9개월 동안 그렇게 아이들은 학업의 울타리 밖에서 쓴맛을 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쓴맛을 본다. 정기적인 글쓰기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소감을 쓰도록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뚝딱 끝내면 좋으련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글쓰기 홈스쿨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다.” 준석의 초고 첫 단락에서 ‘폭탄’을 발견했다. “1년 동안 글쓰기 훈련을 했다는 놈이 진부해서 말라비틀어진 ‘엊그제 같은데’가 뭐냐?” ‘단어 탄압’이지만 할 수 없다. 은서는 세 시간째 한 줄도 못 쓰고 신음만 흘린다. “아빠, 도대체 소감을 어떻게 써야 해?”
이 연재칼럼의 첫 회 제목은 “일가족 칼럼 사기단을 조심하라”였다. 그동안 준석 은서 남매의 글을 통해 뭔가 글쓰기의 노하우에 관해 한 수 가르쳐주는 척 폼을 잡았다. 시간은 흘러 흘러 벌써 마지막 35회째가 됐건만 아이들은 여전히 민첩하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일가족 칼럼 사기’를 친 게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좀 더 활동적인 글쓰기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중략) 지난 1년 동안엔 주로 집에서만 뇌를 쥐어짰다. 우리가 만날 누워서 생각만 하는 데카르트도 아니고.”(준석) “공부보다 글쓰기가 어렵다. 공부는 답이 있는데, 글쓰기에는 답이 없다.”(은서)
만날 놀림만 당한 은서지만, 은근히 통찰력 있는 글이다. 그렇다. 공부에는 답이 있지만, 글쓰기에는 딱 떨어지는 답이 없다. 100점도 없고 빵점도 없다. 상대적인 평가만 존재한다. 머리가 빠개지는 경험을 통해 그 진리를 깨달았다. 은서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글쓰기의 고통이란 어쩌면 ‘짜증나는 프린터’다. 느낌은 분명히 있는데, 구체적인 표현으로 출력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종이가 자꾸만 걸리는 번거로움. “표현하는 자가 강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이 칼럼이 그런 어른과 아이들을 위해 콩알 반쪽만한 기여라도 했다면 기쁜 일이다. ‘올백 소녀’의 신음은 헛되지 않았을까? 굿바이!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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