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린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함께하는 교육]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
태어나면서 토론 배우는 유대인 아이들
한국은 ‘싸움문화’ 있고 ‘토론문화’ 없어
태어나면서 토론 배우는 유대인 아이들
한국은 ‘싸움문화’ 있고 ‘토론문화’ 없어
1. 놀라운 유대인 교육 효과의 비밀 - 토론
2. 디베이트를 ‘형식적인 토론’이라고 하는 이유
<함께하는 교육>은 이번호부터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인 케빈 리가 쓰는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시리즈를 연재한다. 디베이트는 특정 주제를 놓고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펴되, 엄격히 제한된 형식과 조건을 지켜가면서 하는 토론을 일컫는다. 디베이트는 단순히 말 잘하는 훈련이 아니라,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를 통해 듣고 말하는 종합적 교육으로, 주입식·암기식에 익숙한 한국 교육의 대안으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케빈 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디베이트 교육을 확산시키고, 조직한 경력이 있다.
ㄱ이라는 주식이 있다. 100원을 투자했는데, 15년 뒤 10만원이 되었다. ㄴ이라는 주식이 있다. 200원을 투자했는데, 15년 뒤 1천원이 되었다. 어떤 주식을 선택할 것인가? 모두 ㄱ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적어도 교육에 관한 한 지금까지 ㄴ을 선택해왔다고 본다. 애는 많이 썼지만, 그만큼 문제도 많이 노출되었다는 뜻이다. 교사, 학부모, 학생, 국가 모두를 위해 이제는 ㄱ이라는 주식에 관심을 기울여볼 때다. 교육 효과 측면에서, 지금까지 ㄱ주식에 즐겨 투자해왔던 사람은 유대인들이다. 유대인은 전세계 인구 대비 약 0.2%다. 남한의 ¼ 수준, 북한보다도 작다. 그런데 노벨상은 지금까지 20~30%를 가져갔다. 이 기준으로만 하면 100~150배의 교육 효과다. 이뿐인가. 미국 대학의 꽃 아이비리그에서 유대인 학생 수는 ¼에 이른다. 1950년대 하버드는 유대인 학생 수가 50%에 달해 입학사정방법을 바꿔야 했다. 경이적인 숫자라고밖에 할 수 없다. 만약 두뇌올림픽이 열린다면 금메달 상당수는 유대인 몫이 될 것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이 놀라운 유대인 교육 효과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유대인 교육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를 강조한다. 아이덴티티 교육, 부모가 선생님이 되는 교육, 토론 교육. 어떤 사람은 ‘아이덴티티 교육, 그게 왜 교육 효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나?’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덴티티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는 학생들은 교육 효과가 높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자신의 꿈을 정립한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강요하는 로드맵에 따라 공부하는 학생과는 그 효과가 크게 다를 것이다. 유대인 아이덴티티 교육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유대인 특유의 명절. 이들 명절을 통해 유대인들은 선조들의 고난을 배우고, 유대인 역사에서 자신의 좌표를 깨닫는다. 둘째로, 13살에 열리는 유대인 성인식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정립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결혼식만큼 중요하게 치는 이 행사에 참가한 친척, 친지들은 부조를 한다. 미국 중산층 유대인 자식의 경우 그 액수가 5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13살에 이미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목돈까지 마련한다. 다른 학생들과는 출발선부터가 다른 것이다. 부모가 선생님이 되는 교육에 대해서도 어리둥절해하는 한국 사람이 있을 듯하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모보다는 학원 강사가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서 자녀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부모다. 부모의 따뜻한 관심 속에서, 부모와 직접 공부를 해나가는 학생들은 마음가짐이 바로잡혀 있다.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사랑 속에서 자신감을 갖는다. 큰 공부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3시만 되면 퇴근하는 유대인 변호사를 봤다. 이유를 물었다. “자식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란다. 이렇게 9시까지 같이 공부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재우고, 이어 어른들만의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 비결. 토론 교육. 이번 연재의 주제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토론으로 교육을 받는다. 늘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배운다.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부모가 묻는 첫 질문이 “오늘 학교에서 뭘 질문했니?”다. 밥상머리에서도 토론은 계속된다.
이런 토론은 전문가가 하는 정연한 강의에 비해 체계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놀라운 교육효과의 비밀이 있다. 토론을 하게 되면 학생들은 주체가 된다. 교실에 앉아 선생님이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적기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난다. 주체가 되면 재미가 붙는다. 자전거 타는 것을 구경만 하는 학생에서 자전거를 직접 타는 학생이 되었을 때의 환희를 생각해보라. 공부 효과가 배가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토론을 통해 제시되는 다양한 견해는 사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좀더 논리적이고 세련되게 정리하기도 한다. 토론의 한 순서인 ‘반박’이 여기에 큰 도움을 준다. 토론을 안 해보고 자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반박당하면 당황한다. 하지만 늘 토론을 하고 자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반박당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해서 그런 반박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정연한, 빈틈없는 논리를 구사하려고 한다. 시련 속에서 사람이 크는 것처럼, 반박 속에서 정연한 논리를 구사하는 학생이 탄생한다.
어떻게 보면 특별해 보이지 않은 이런 세가지 비결이 합쳐져서 놀라운 교육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유대인 교육의 비밀과 한국 사람들의 교육을 비교해보자.
아이덴티티? 한국 사람들은 단일 혈통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이덴티티 교육에 소홀하다. 심지어 태어나 얼마 자라지 않은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데리고 간다. 영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비행기에 실어 미국으로 보낸다. 그리고 초·중·고 과정을 통해서는 단 하나만의 목표, 즉 ‘명문대 입학’을 제시한다. 결국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자각하는 것은 대학 입학 후 또는 군대 제대 후가 된다. 뒤늦게 자신의 꿈을 요리에서 찾은 학생이 늦깎이로 일본에 스시를 배우러 가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계산해보자. 만일 그 사람이 어려서부터 자신의 적성을 요리에서 찾아 노력했다면 그사이 얼마나 큰 성과가 있었을까? ‘명문대 입학’이라는 단 하나의 교육 목표가 가져오는 사회적 손실은 이미 명확해졌다고 본다. 한국 학생들이 자신만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돕자. 행복과 윤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부모가 직접 교육? 다행히 이에 대한 맹아는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다. 이른바 ‘엄마표 교육’이다. 이를테면 필자가 공동대표로 있는 ‘모여라북클럽&디베이트클럽’은 지난 5년간 엄마가 직접 지도하는 북클럽을 무료로 운영해왔다. 효과? 당연히 높다. 자신감이 생기고 발표력이 좋아지면서 학교에서 학생 대표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번 들어오면 나가려고 하질 않아 늘 같은 학생들끼리 북클럽을 한다. 돈이 안 드니 가계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은 한국에서 아직 ‘맹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보다는 ‘어느 학원, 어느 강사가 좋은가’에 골몰하는 부모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토론 교육? 이제는 여기저기서 토론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입식, 암기식의 방법이 주류다. 며칠 전 한국의 국회에서는 토론문화 제로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죽일듯이 싸운다. 그러다 며칠이 흐르면 또 웃으며 악수한다. 정말 외국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
유대인 교육의 비밀을 기준으로 한국 교육을 보면, 한국 교육은 유대인 교육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러니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효과는 대단하지 않았고, 오히려 큰 문제들이 파생되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국 사람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배워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선은 제일 만만해 보이는 토론부터 따라잡자.
너무 늦었다고, 이미 방향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모두들 패배의식을 갖고 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한국 사람에게도 어느 다른 민족과 비교해도 우수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열정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피가 36도라면, 한국 사람들 피는 42도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뜨거운 열정으로 서로 협력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전혀 해낼 수 없는 기적의 역사들이 가능해진다. 엘피지에이(LPGA)를 보자. 스키점프를 보자. 불과 몇년 만에 고개를 숙인 조기입학과 와인 열풍을 보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들을 한국 사람들은 불과 몇년 사이에 다 장악해버린다.
이 열정을 이제 토론에 쏟아붓자. 사실 토론의 원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에 내 예상으로는 3년 정도가 지나면 토론이 한국 교육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본다. 수백년 토론을 해온 역사가 있는 나라와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나는 이를 이미 캘리포니아주 한인 커뮤니티에서 봤다. 처음에는 디베이트라는 말조차 따라하지 못하던 한인 학부모들의 자식들이 이제는 주류 사회에서 열리는 디베이트 대회에서 거듭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바로 열정, 즉 끝도 없는 연습 덕분이다.
비판적 사고를 강조했던 논술의 도입을 보고 환호했다가, 논술의 변질을 보고 좌절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제 그 자리를 디베이트로 채워보자. 이 디베이트만은 제대로 키워서 한국 교육을 바꿔나가는 계기로 삼아보자. 다음주부터 디베이트로의 긴긴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는 유대인보다 늦게 토론을 시작한다. 하지만 유대인보다 훨씬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 디베이트가 바꾼다.
ㄱ이라는 주식이 있다. 100원을 투자했는데, 15년 뒤 10만원이 되었다. ㄴ이라는 주식이 있다. 200원을 투자했는데, 15년 뒤 1천원이 되었다. 어떤 주식을 선택할 것인가? 모두 ㄱ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적어도 교육에 관한 한 지금까지 ㄴ을 선택해왔다고 본다. 애는 많이 썼지만, 그만큼 문제도 많이 노출되었다는 뜻이다. 교사, 학부모, 학생, 국가 모두를 위해 이제는 ㄱ이라는 주식에 관심을 기울여볼 때다. 교육 효과 측면에서, 지금까지 ㄱ주식에 즐겨 투자해왔던 사람은 유대인들이다. 유대인은 전세계 인구 대비 약 0.2%다. 남한의 ¼ 수준, 북한보다도 작다. 그런데 노벨상은 지금까지 20~30%를 가져갔다. 이 기준으로만 하면 100~150배의 교육 효과다. 이뿐인가. 미국 대학의 꽃 아이비리그에서 유대인 학생 수는 ¼에 이른다. 1950년대 하버드는 유대인 학생 수가 50%에 달해 입학사정방법을 바꿔야 했다. 경이적인 숫자라고밖에 할 수 없다. 만약 두뇌올림픽이 열린다면 금메달 상당수는 유대인 몫이 될 것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이 놀라운 유대인 교육 효과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유대인 교육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를 강조한다. 아이덴티티 교육, 부모가 선생님이 되는 교육, 토론 교육. 어떤 사람은 ‘아이덴티티 교육, 그게 왜 교육 효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나?’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덴티티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는 학생들은 교육 효과가 높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자신의 꿈을 정립한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강요하는 로드맵에 따라 공부하는 학생과는 그 효과가 크게 다를 것이다. 유대인 아이덴티티 교육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유대인 특유의 명절. 이들 명절을 통해 유대인들은 선조들의 고난을 배우고, 유대인 역사에서 자신의 좌표를 깨닫는다. 둘째로, 13살에 열리는 유대인 성인식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정립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결혼식만큼 중요하게 치는 이 행사에 참가한 친척, 친지들은 부조를 한다. 미국 중산층 유대인 자식의 경우 그 액수가 5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13살에 이미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목돈까지 마련한다. 다른 학생들과는 출발선부터가 다른 것이다. 부모가 선생님이 되는 교육에 대해서도 어리둥절해하는 한국 사람이 있을 듯하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모보다는 학원 강사가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서 자녀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부모다. 부모의 따뜻한 관심 속에서, 부모와 직접 공부를 해나가는 학생들은 마음가짐이 바로잡혀 있다.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사랑 속에서 자신감을 갖는다. 큰 공부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3시만 되면 퇴근하는 유대인 변호사를 봤다. 이유를 물었다. “자식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란다. 이렇게 9시까지 같이 공부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재우고, 이어 어른들만의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 비결. 토론 교육. 이번 연재의 주제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토론으로 교육을 받는다. 늘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배운다.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부모가 묻는 첫 질문이 “오늘 학교에서 뭘 질문했니?”다. 밥상머리에서도 토론은 계속된다.
토론을 경험한 학생은 반박을 피하기 위해 논리정연한 사고를 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사진은 한 고교 토론동아리 학생들이 교내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그룹을 지어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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