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영어’ 전문가 홍현주 박사
[함께하는 교육] 교육 인터뷰 /
‘엄마표 영어’ 전문가 홍현주 박사
자녀의 영어교육은 사교육에 의지하는 게 대부분이다. 소신 있는 부모라도 영어교육과 관련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를 뛰어나게 잘하지 않는 한 대부분은 사교육에 아이를 맡긴다. ‘영어’는 사교육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위해서는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이가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기도 전에 영어유치원에 보내는가 하면 각종 영어캠프도 넘쳐나고 있다. 사교육에 흔들리지 않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어교육 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는 걸까. 영어교육 전문 커뮤니티 ‘쑥쑥닷컴’ 홍현주(48·사진) 영어교육연구소 소장은 엄마들 사이에서 ‘엄마표 영어’로 잘 알려졌다. 한국외대 영어교육학 박사로 <부모를 위한 초등 6년 영어관리법>, <엄마는 친절한 영어 유치원 선생님> 등을 펴내기도 했다. 내 자녀에게 맞는 영어학습은 뭔지와 함께 부모들의 영어교육 고민에 대해 들어봤다.
영어를 배우는 시기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과도한 영어교육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어뿐만 아니라 자녀교육 전반이 다 그렇다. 그럼에도 영어 사교육비가 워낙 비싸고, 영어는 일찍 배우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에 유난히 부각되는 것 같다. 또 부모 세대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심리도 있다. ‘세계화’가 강조되고 영어가 생활 깊숙이 들어오다 보니 영어를 못하면 뒤처진다는 생각이 작용하는 듯하다.
영어를 일찍 배우면 좋다는 게 틀린 건 아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해야 한다면 조기에 배우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유용성 있는 언어’를 익히는 게 목표라면 어릴 때부터 그렇게 비싼 사교육비를 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를 해결하거나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를 배우기 위해 아이들을 내몰아서는 안 된다.”
많은 부모들이 영어는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원 영어교육의 효과는 어떻게 보나?
“유명한 영어학원들의 교재와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놀랄 만큼 어렵다. 초등 5학년 교재라고 하는데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수준이다. 영어에 굉장한 재능이 있거나 수업을 열심히 잘 따라오는 아이들만 소화할 수 있다. ‘영어 신동’을 위한 커리큘럼에 전국의 아이들이 혹사당하다 결국 영어에 실증을 낸다. 영어는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과도한 선행을 한다. 숙제량도 지나치게 많다. 현재 아이의 인지발달과 배경지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극소수의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없다.” 국외 영어캠프나 조기유학을 가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초등학교 1, 2학년 때 미국에 와서 1년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미국에서 1년 정도 배운 실용영어를 한국에 돌아가서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걸 유지한다고 다시 비싼 학원에 다니고 나중에는 학습영어에 매진하고 만다. 나중에 외국 대학에 진학한다거나 국외 취업을 할 계획이 있다면, 초등학교 5, 6학년이나 중학교 때 2년 정도 갔다 오면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본격적인 읽기·쓰기 교육이 4학년 이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3개월 짧게 캠프에 다녀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오면 적응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다고 들었다. 우리와 어떤 점이 다른가? “정식 교사는 아니었고 박사후과정으로 가서 남미계 초등학교 아이들을 주 20시간씩 3년간 가르쳤다. 이 아이들은 바로 실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생존 영어’를 배워야 함에도 많은 동화책을 읽는다. 당시 아이들에게 회화가 아닌 스스로 책을 읽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했다. 우리는 초등 저학년 때는 ‘영어 회화’에 집중하다가 고학년이 되면 바로 ‘시험 영어’로 아이들을 돌려세운다. 남미계 아이들한테 왜 책을 읽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풍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회화도 잘 할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이 ‘회화’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그리고 읽기는 의사소통과는 먼 영역인 것처럼 여긴다. 책 읽기가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읽기는 ‘문자’만 읽는 게 아니다. ‘읽기’를 바탕으로 ‘듣기, 쓰기, 말하기’도 가능하다. 이야기가 있는 유의미한 읽기는 언어 구사에 큰 도움이 된다.” 영어는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강한 것 같다.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언어는 배우는 게 힘든가? “많은 부모들이 조기교육 때문에 고민한다. 처음부터 이중언어 교육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국어를 어느 정도 배운 다음 하는 게 좋은지 질문을 많이 한다. 조기교육 또는 적기교육, 두 가지 가운데 어떤 걸 하든지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소신을 갖고 하되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이의 타고난 성격이 내성적이고 학습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영어도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될 정도로 부모의 욕심을 밀고나가서는 안 된다.” 원어민처럼 발음이 좋아야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발음이 좋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교육받은 사람의 영어’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우리말 구사 능력도 달라지지 않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본보기다. 영어는 우리말과 달리 억양과 강세가 중요한데 반 총장님은 그런 점들이 굉장히 정확하다. 강세나 억양은 많이 듣고 따라하면 된다. 규칙을 잘 지키면 품위 있는 영어를 할 수 있다. ‘th’ 발음을 얼마나 잘하느냐, r와 l 발음을 잘 구분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긴 시간 동안 영어를 공부한다. 문법을 배우고 단어를 외우는 시간만큼 억양과 강세를 익혔으면 한다.”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며 부딪히게 되는 영어교육의 단계별 고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유아기 때는 영어를 즐겁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 노래를 들려주거나 비디오를 보여준다. 하지만 글자를 알아야 하는 시기가 되면 고민을 많이 한다. 글자를 빨리 배우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지나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려운 책을 읽히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얼마나 어려운 책을 읽느냐를 두고 부모들끼리 경쟁하기도 한다. 아이가 배경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어려운 책을 읽으면 의미가 형성되지 않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아이의 발전 속도에 맞춰서 영어 학습을 이끌어줘야 한다. 재미를 느끼는 것에서 학습 동기가 생기는데, 부모의 욕심으로 오히려 영어교육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엄마들 사이에서 ‘해리 포터’의 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해리 포터’는 굉장히 어려운 책인데도 남들이 하니까 우리 아이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아이가 좋아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아이의 성격에 따른 영어 학습법은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아이가 어디에 흥미를 보이고 얼마나 집중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집중력이 짧은 아이가 긴 시간 듣기를 하는 건 힘들다. 아이가 집중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게 필요하다. 아이의 성격이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체험을 즐긴다면 회화를 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해 말하기와 듣기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된다. 내성적인 아이는 원어민 수업보다는 독서를 통해 쓰기를 하도록 돕는 게 낫다. 이때 책은 대화체가 많은 것을 택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직접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부모는 교사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한테 교사라는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부모는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관찰자이자 흥미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공급자에 머물러야 한다. 부모가 직접 가르치려고 결심하면 힘들어진다. 영어에 자신이 없더라도 충분히 아이의 영어교육을 이끌 수 있다. 쉬우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한다. 조바심과 비교만 버리면 된다. 다양한 방법에 귀를 기울이되 그 방법을 그대로 아이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엄마표 영어’를 권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학습 속도에 맞는 영어교육을 할 자신이 있는 부모에게 권하고 싶다.”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유명한 영어학원들의 교재와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놀랄 만큼 어렵다. 초등 5학년 교재라고 하는데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수준이다. 영어에 굉장한 재능이 있거나 수업을 열심히 잘 따라오는 아이들만 소화할 수 있다. ‘영어 신동’을 위한 커리큘럼에 전국의 아이들이 혹사당하다 결국 영어에 실증을 낸다. 영어는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과도한 선행을 한다. 숙제량도 지나치게 많다. 현재 아이의 인지발달과 배경지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극소수의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없다.” 국외 영어캠프나 조기유학을 가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초등학교 1, 2학년 때 미국에 와서 1년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미국에서 1년 정도 배운 실용영어를 한국에 돌아가서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걸 유지한다고 다시 비싼 학원에 다니고 나중에는 학습영어에 매진하고 만다. 나중에 외국 대학에 진학한다거나 국외 취업을 할 계획이 있다면, 초등학교 5, 6학년이나 중학교 때 2년 정도 갔다 오면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본격적인 읽기·쓰기 교육이 4학년 이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3개월 짧게 캠프에 다녀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오면 적응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다고 들었다. 우리와 어떤 점이 다른가? “정식 교사는 아니었고 박사후과정으로 가서 남미계 초등학교 아이들을 주 20시간씩 3년간 가르쳤다. 이 아이들은 바로 실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생존 영어’를 배워야 함에도 많은 동화책을 읽는다. 당시 아이들에게 회화가 아닌 스스로 책을 읽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했다. 우리는 초등 저학년 때는 ‘영어 회화’에 집중하다가 고학년이 되면 바로 ‘시험 영어’로 아이들을 돌려세운다. 남미계 아이들한테 왜 책을 읽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풍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회화도 잘 할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이 ‘회화’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그리고 읽기는 의사소통과는 먼 영역인 것처럼 여긴다. 책 읽기가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읽기는 ‘문자’만 읽는 게 아니다. ‘읽기’를 바탕으로 ‘듣기, 쓰기, 말하기’도 가능하다. 이야기가 있는 유의미한 읽기는 언어 구사에 큰 도움이 된다.” 영어는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강한 것 같다.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언어는 배우는 게 힘든가? “많은 부모들이 조기교육 때문에 고민한다. 처음부터 이중언어 교육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국어를 어느 정도 배운 다음 하는 게 좋은지 질문을 많이 한다. 조기교육 또는 적기교육, 두 가지 가운데 어떤 걸 하든지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소신을 갖고 하되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이의 타고난 성격이 내성적이고 학습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영어도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될 정도로 부모의 욕심을 밀고나가서는 안 된다.” 원어민처럼 발음이 좋아야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발음이 좋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교육받은 사람의 영어’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우리말 구사 능력도 달라지지 않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본보기다. 영어는 우리말과 달리 억양과 강세가 중요한데 반 총장님은 그런 점들이 굉장히 정확하다. 강세나 억양은 많이 듣고 따라하면 된다. 규칙을 잘 지키면 품위 있는 영어를 할 수 있다. ‘th’ 발음을 얼마나 잘하느냐, r와 l 발음을 잘 구분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긴 시간 동안 영어를 공부한다. 문법을 배우고 단어를 외우는 시간만큼 억양과 강세를 익혔으면 한다.”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며 부딪히게 되는 영어교육의 단계별 고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유아기 때는 영어를 즐겁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 노래를 들려주거나 비디오를 보여준다. 하지만 글자를 알아야 하는 시기가 되면 고민을 많이 한다. 글자를 빨리 배우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지나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려운 책을 읽히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얼마나 어려운 책을 읽느냐를 두고 부모들끼리 경쟁하기도 한다. 아이가 배경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어려운 책을 읽으면 의미가 형성되지 않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아이의 발전 속도에 맞춰서 영어 학습을 이끌어줘야 한다. 재미를 느끼는 것에서 학습 동기가 생기는데, 부모의 욕심으로 오히려 영어교육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엄마들 사이에서 ‘해리 포터’의 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해리 포터’는 굉장히 어려운 책인데도 남들이 하니까 우리 아이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아이가 좋아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아이의 성격에 따른 영어 학습법은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아이가 어디에 흥미를 보이고 얼마나 집중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집중력이 짧은 아이가 긴 시간 듣기를 하는 건 힘들다. 아이가 집중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게 필요하다. 아이의 성격이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체험을 즐긴다면 회화를 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해 말하기와 듣기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된다. 내성적인 아이는 원어민 수업보다는 독서를 통해 쓰기를 하도록 돕는 게 낫다. 이때 책은 대화체가 많은 것을 택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직접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부모는 교사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한테 교사라는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부모는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관찰자이자 흥미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공급자에 머물러야 한다. 부모가 직접 가르치려고 결심하면 힘들어진다. 영어에 자신이 없더라도 충분히 아이의 영어교육을 이끌 수 있다. 쉬우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한다. 조바심과 비교만 버리면 된다. 다양한 방법에 귀를 기울이되 그 방법을 그대로 아이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엄마표 영어’를 권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학습 속도에 맞는 영어교육을 할 자신이 있는 부모에게 권하고 싶다.”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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