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교육 인터뷰 /
정신과전문의 이정현씨
“나는 왜 꿈이 없을까?” “내 얼굴은 왜 이리도 못났지?” “난 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나는 왜 인기가 없는 거지?” 우리나라 십대들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혼란스럽다. 그러잖아도 혼란스러운 시기인데 예쁘고 잘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경쟁사회를 만나니 마음은 더 우울하고 불안하다.
마음과마음 식이장애 클리닉 이정현(사진) 원장은 지난해 <심리학, 열일곱 살을 부탁해>(걷는나무)를 통해 누구한테도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십대들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열일곱 살로 대표되는 십대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13년 동안 1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유독 열일곱 살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를 만나 우리나라 열일곱 살로 대표되는 십대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물어봤다.
십대 때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근데 요즘 들어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호소하는 십대들이 늘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문제는 아이들한테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는 거다. 과거에도 공부나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틈이라는 게 있었다. 친구 사귀다가 때론 토라지기도 하고,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그걸 풀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한테는 이런 걸 경험할 여유 자체가 없다. 학교 끝나면 학원 가고, 학원에서 돌아오면 밤 10시다. 그나마 친구와 관계가 돈독한 아이들은 그 시간에 친구를 만난다. 근데 어느 부모가 그 시간에 친구 만나고 들어오는 걸 좋아하겠나. 당연히 지금이 몇 시냐고 야단친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부는 언제 할 거고, 왜 그런 친구를 만나느냐고 듣기 싫은 질문이 이어진다. 짜증, 우울 등 고민과 갈등의 싹은 보통 이 지점에서부터 자란다.”
십대 대다수 고민은 학업 문제
경쟁 부추기는 사회, 불안 키워
부모·자녀, 쌍방 공감력 필요해
“많이 힘들지…”부터 시작할 것
부모가 십대에게 여유를 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이 점수로 줄을 세우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 십대들이 유독 혼란스럽고 부모와 잘 다투는 이유는 공부 때문인가?
“단순히 공부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어려운 거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못 갈 것 같고, 하기는 할 건데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 흔히 요즘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까졌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운영하는 식이장애 클리닉을 찾는 환자 가운데 대다수가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는 고민을 얘기한다. 두 번째가 가족 문제다. 마지막이 친구 문제인데 그 안에 이성교제가 포함돼 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로 가고 있지 않나. 본래 이 시기에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소심하고, 고민이 많다. 그리고 오락가락한다. 근데 다양한 것에 관심을 보이는 이 시기에 천편일률적인 가치를 부여하니까 강박이 심한 것 같다. 공부는 물론이고 뭘 해도 제대로 튀어야 할 것 같은 일등 콤플렉스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책을 많이 한다. 특히 요즘은 과거와 비교하면 가정 경제가 전반적으로 나아졌다. 부모님이 학교 잘 보내주고, 학원도 보내준다. 사고 싶은 문제집과 학용품도 사준다. 아이들이 느끼기에도 공부 못할 핑계가 없는 상황이다. ‘내가 못났기 때문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 1등 강박 때문에 힘들어했던 환자 사례로는 어떤 게 있나?
“외고를 준비하다가 떨어진 친구가 있었다. 복통, 우울증 등을 호소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이른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고, 경제적인 문제도 없었다. 부모님은 자녀가 외고 떨어진 것에 대해서 특별히 속상해하지도 않았다. 근데 아이는 세상 다 끝난 것 같다는 태도였다. 자살 시도까지 했다. 엄마는 아이가 복통, 두통 등을 호소하니까 각종 내과를 돌아다녔다고 하더라. 마음은 이해를 안 해주고, 아프다니 병원만 보낸 거다. 그러다가 이게 반복되니 어느 순간 ‘또 시작이냐?’라고 짜증을 냈고, 부모와 아이 관계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이 처지에서는 에스오에스를 친 건데 엄마는 아이 행동을 이해 못한 거다. 이 친구처럼 외고 떨어진 다음에 우울증이 오거나 고교 1학년 가서 성적이 엄청 떨어지는 친구들이 참 많다.”
이 학생은 1등 강박을 어떤 식으로 해결했나?
“일단, 몇 달 동안 상담을 했다. 아이의 경우는 지금 어떤 심정인지 얘기를 많이 들어줬다. 또 엄마한테는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왜 필요한지 알려줬다. 물론 그 전에 엄마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을 해줬다. 흥미로운 건 얼마 전에 아이가 자기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알고 보니 이런 변화를 끌어낸 건 주변 지인이었다. 주변에 과학고에 떨어진 경험이 있는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떨어지고도 의대 진학을 열심히 준비하는 걸 보면서 느낀 게 많다고 했다. ‘나도 같은 처지인데 나는 왜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라고 말이다.”
이 학생 사례처럼 성적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십대가 우울증, 불안증세 등을 보이면 이 과정에서 부모도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부모한테는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가 필요한가?
“묘하게도 자녀가 십대가 되면 부모님한테는 갱년기가 온다. 아빠의 경우는 조기퇴직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자식들 잘 키우려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 상황은 이렇게 변하고 아이까지 나를 고생시키니 여러모로 속상할 거다.
요새 부모님들은 지나치게 똑똑해서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음보다 머리가 앞선다. 일단, ‘쟤 대체 왜 저러지?’라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저 친구가 이유가 있으니 저러겠지…’라고 생각해주자. 그리고 내가 정말 너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질문들을 건네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때와 장소도 중요하다. 텔레비전 보는데 ‘너 왜 공부 안 하니?’라고 하면 어느 아이가 ‘요새 외고 떨어져서 의욕이 없다’고 하겠나. 십대가 늘 짜증나 있는 건 아니다. 아이가 부모한테 호의적으로 마음을 열 것 같은 순간이 언제인지 부모는 잘 알고 있다. 그 적절한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다. 아이들은 단번에 엄마가 뭘 얻어내려고 저런다는 걸 알아차린다. 공부시키려고 저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힘든 게 뭔지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껴야 한다. 이건 진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 진심을 품으려면 엄마한테도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한테 필요한 마음가짐이 있듯이 십대들한테도 부모님을 대할 때 필요한 태도나 마음가짐이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서툴다. 어떤 아이는 표현을 너무 안 해서 문제고, 어떤 아이는 표현이 너무 과격해서 문제다. 내가 원하는 걸 이끌어 낼 수 있게끔 요령껏 표현해야 하는데 요령 없게 표현해놓고서 엄마한테 무조건 “잘해달라”고 한다. 사실 대화를 잘할 수 있다면 문제도 없는 거다.
아이한테도 내가 뭐가 힘든지, 부모한테 뭘 말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볼 여유가 필요하다. 엄마, 아빠한테 받고 싶은 반응이 뭔지 스스로 그걸 파악해서 잘 요구하는 요령이 필요한 거다. 이 역시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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