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19. 돈의 인문학 - 돈은 미디어다?: 얼굴 있는 돈과 얼굴 없는 돈
19. 돈의 인문학 - 돈은 미디어다?: 얼굴 있는 돈과 얼굴 없는 돈
<돈의 인문학> 김찬호 지음 문학과 지성사
대만의 어느 거지가 무려 12억 원을 벌었단다. 순전히 구걸을 통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성공사례(?)’를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조건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1년에 두 번만 목욕할 것. 둘째, 추운 데서도 잠을 잘 잘 것. 셋째, 몸에 상처가 나도 곪을 때까지 약을 바르지 말 것. 넷째, 지저분한 채로 생활을 할 것.
이런 상황을 견뎌내는 ‘인재’라면 마땅히 ‘천만장자 거지’가 될 테다. 하지만 생각 똑바로 박힌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대체 부자가 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10억대 부자인 거지는 여전히 ‘거지 같은 삶’을 산다.
어찌 보면 우리 주변에도 비슷한 삶을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아득바득 돈을 모으는 이들이 한둘이던가. 죽은 노인의 이부자리에서 수북하게 깔린 돈다발이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돈에 매달릴까?
모든 욕심에는 끝이 있다. 식탐이 아무리 커도 배부르면 수저를 놓기 마련이다. 만석꾼이라 해도 곡식 창고가 가득 차면 주변에 나눠 준다. 계속 두었다가는 어차피 썩어 내버려야 하는 탓이다. 그러나 돈은 상하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돈에 어떻게 한 재산 모으게 되었는지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돈다발을 흔들면 어디서나 대접받고 우러름 받을 뿐이다. 그러니 돈에 환장할 수밖에 없겠다.
프로이트는 돈은 물신(物神)이라고 말한다. 물신이란 현실에서 가장 큰 위협을 내치는 수단이다. 돈만 있으면 죽음마저도 피해가고 영원히 행복할 듯싶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김찬호 교수는 다음 두 물음을 견주어 보라고 말한다. “세상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얻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 돈 한 푼 없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이 완전히 다름에도 대답은 비슷할 테다. 지혜, 사랑, 우정, 배려, 용기, 열정, 보람, 추억, 희망 등등.
이 모든 것이 없이 돈만 있다면 어떨까?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아버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었다. 40% 넘는 학생들이 ‘재력(財力)뿐’이라고 답했단다. 많은 학생들에게 아버지는 돈지갑 이상이 아니었던 거다. 조금 덜 벌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과외비를 마련하려고 아등바등하기보다, 그 시간에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면? 자식들은 그래도 돈이 없는 아버지를 원망하게 될까?
돈은 사람을 망쳐놓기까지 한다. 로또 당첨자 셋 가운데 한 명은 5년 내로 패가망신한단다. ‘돈만 있는 사람’만큼 불행한 이도 없다. 돈을 빼앗으려는 다툼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마음은 늘 편하지 않다. 자기 삶에 대한 애정과 긍지도 별로 없다. 의지할 돈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늘 전전긍긍이다. ‘돈만 없는 사람’의 삶은 훨씬 낫다. 튼튼한 몸과 활달한 마음, 가슴 벅찬 일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일상을 설레게 한다. 주변에는 사랑과 우정을 나눌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려울 때면 서로 의지할 이웃도 있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적다. 물론, 돈은 꼭 필요한 수단이다. 김찬호 교수는 돈을 ‘미디어’라고 말한다. 돈이 있기에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 친척이 아니더라도, 적절하게 돈을 치러주면 장례식같이 내밀한 도움까지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돈은 인간관계가 전혀 없는 이들끼리도 협력하게 한다. 돈은 필요한 사람 누구와도 소통하게 하는 미디어인 셈이다. 그러나 돈은 그 자체로는 값어치가 없다. 돈은 사람들 사이의 신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돈을 주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면 돈은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사업을 한다. 대가 없이 빌려주는데도 돈을 떼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은행은 5명을 한 무리로 묶어서 빌린 돈에 책임을 지게 한다. 그리고 매주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이렇게 풀린 종잣돈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된다. 우리나라도 그라민은행을 본떠, ‘햇살론’ 등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은가 보다. 그 까닭을 김찬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방글라데시의 ‘사회적 자본’은 우리보다 훨씬 낫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 사이의 끈끈함을 뜻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서로의 삶이 이웃과 가깝게 얽혀 있다. 그래서 돈을 떼먹고 나 몰라라 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다른 곳에 도망쳐 살기도 쉽지 않다. 어디에나 오래되고 튼실한 이웃관계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그 속으로 새롭게 파고들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진작 무너져 버렸다. 아이를 키우거나 노인을 돌볼 때, 이웃과 품앗이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집값에 따라 철새처럼 옮겨 다닌다. 서로를 떠받치고 신용을 뒷받침해줄 공동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은 돈을 갚을 능력만으로만 가려진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돈에 더욱 매달린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돈밖에 믿을 게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수쿠크(이슬람채권)법을 놓고 기독교계가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돈에는 ‘얼굴이 없다’고 한다. 카지노를 통해 벌었건, 투기를 해서 벌었건, 돈만 많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요즘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돈의 성격’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신기하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돈의 얼굴을 따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쿠크법 논쟁이 종교 논란을 넘어 돈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에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난이도 수준 고2~고3
돈은 사람을 망쳐놓기까지 한다. 로또 당첨자 셋 가운데 한 명은 5년 내로 패가망신한단다. ‘돈만 있는 사람’만큼 불행한 이도 없다. 돈을 빼앗으려는 다툼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마음은 늘 편하지 않다. 자기 삶에 대한 애정과 긍지도 별로 없다. 의지할 돈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늘 전전긍긍이다. ‘돈만 없는 사람’의 삶은 훨씬 낫다. 튼튼한 몸과 활달한 마음, 가슴 벅찬 일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일상을 설레게 한다. 주변에는 사랑과 우정을 나눌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려울 때면 서로 의지할 이웃도 있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적다. 물론, 돈은 꼭 필요한 수단이다. 김찬호 교수는 돈을 ‘미디어’라고 말한다. 돈이 있기에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 친척이 아니더라도, 적절하게 돈을 치러주면 장례식같이 내밀한 도움까지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돈은 인간관계가 전혀 없는 이들끼리도 협력하게 한다. 돈은 필요한 사람 누구와도 소통하게 하는 미디어인 셈이다. 그러나 돈은 그 자체로는 값어치가 없다. 돈은 사람들 사이의 신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돈을 주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면 돈은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사업을 한다. 대가 없이 빌려주는데도 돈을 떼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은행은 5명을 한 무리로 묶어서 빌린 돈에 책임을 지게 한다. 그리고 매주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이렇게 풀린 종잣돈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된다. 우리나라도 그라민은행을 본떠, ‘햇살론’ 등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은가 보다. 그 까닭을 김찬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방글라데시의 ‘사회적 자본’은 우리보다 훨씬 낫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 사이의 끈끈함을 뜻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서로의 삶이 이웃과 가깝게 얽혀 있다. 그래서 돈을 떼먹고 나 몰라라 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다른 곳에 도망쳐 살기도 쉽지 않다. 어디에나 오래되고 튼실한 이웃관계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그 속으로 새롭게 파고들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진작 무너져 버렸다. 아이를 키우거나 노인을 돌볼 때, 이웃과 품앗이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집값에 따라 철새처럼 옮겨 다닌다. 서로를 떠받치고 신용을 뒷받침해줄 공동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은 돈을 갚을 능력만으로만 가려진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돈에 더욱 매달린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돈밖에 믿을 게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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