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책이나 사회책을 보면, 먹고사는 것(살림살이)을 뜻하는 경제엔 크게 세 가지 근본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먹고사는 수단을 뜻하는 파이의 크기 문제, 파이의 분배 문제, 그리고 파이의 원천 문제다.
파이의 크기 문제란, 우리가 먹고살기 위한 밥, 다시 말해 욕구 충족의 수단을 되도록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자원은 제한돼 있고 인간 욕구는 무한’하므로 효율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선택을 해야 파이를 크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파이의 분배 문제란, 일단 만든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개는 많은 성과를 낸 사람이 많이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그래야 서로 많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파이도 쉽게 커질 것이라 본다. 물론 절대 빈곤층에게는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파이의 원천 문제란, 도대체 우리가 만들어 나눠 갖는 파이가 어떤 토대 위에 만들어지는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여태껏 경제 이론이나 실천에서 거의 토론이 안 된 지점이다. 파이의 원천은 일차적으로 우리 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이고, 다음으로 우리보다 후진국의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며, 끝으로 잘 사는 나라나 못 사는 나라를 막론하고 모든 자연 생태계의 희생이다.
예컨대, 우리가 보는 경제책에는 한국의 국민총소득(GNI)이란 말이 나오는데, 1인당 국민총소득은 1970년의 9만원에서 2003년엔 무려 167배인 1507만원으로 늘었다. 파이의 크기 기준으로 볼 때, 불과 30년 만에 자그마치 160배가 늘어난 것이다. 전체 국민총소득은 1970년에 세계 39위였는데 2003년엔 세계 10위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개인이나 나라 전체가 상당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과연 모두의 몸과 마음이 부자가 된 것일까?
파이의 분배 문제를 보면 사태는 전혀 다르다. 최근 한 통계를 보면 도시 근로자 가구들의 소득격차가 1982년 이래 최악이다. 도시근로자 가구를 소득 규모에 따라 5단계로 나눌 경우, 소득이 가장 높은 20%의 월 평균 소득은 659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6% 증가했으나 소득이 가장 낮은 20%는 2.5% 늘어난 112만3천원에 머물렀다. 최하위와 최상위는 무려 6배가 차이가 난다. 이를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집을 세 채 이상 보유하며 고급 외제차를 타고 해외여행과 호화관광을 즐기고 명품 쇼핑에 중독돼 살아가는 자들이 수십만 있는가 하면,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등지에서 오갈 데 없이 노숙을 하며 사는 이들이 수십만 있다. 이 모든 사태는 막연하게 ‘공부 열심히 하고 일 열심히 하면 모두 잘 사는 사회가 온다’고 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가르침이 말짱 거짓말임을 증명한다.
게다가 파이의 원천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 깊다. 저 위대한 간디의 말대로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지구 하나만 해도 충분하나 인간의 탐욕을 위해서는 지구가 몇 개 있어도 모자란다”. 경제 발달사에도 나오듯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은 괄목상대하게 이루었지만 동시에 파괴력도 엄청나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주의가 그랬고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신식민주의가 그랬듯, 오늘날 소위 선진국이란 자국 민중의 피와 땀과 눈물뿐 아니라 후진국들의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추출했다. 게다가 선·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자연 생태계는 ‘잘 살아 보자!’라는 구호의 희생양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온갖 사회·생태적 문제들, 예컨대 선·후진국 격차, 농촌 및 원주민의 파괴, 지구 온난화, 이상 기후, 오존층 파괴 따위는 바로 그 냉혹한 결과다. 고려대 교수 ksd@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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