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은 동물 그대로의 삶이 있기 때문에, 애완동물은 자기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 기르기를 꺼리는 아빠. 동물을 동물로만 보지 않고 그저 나와는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른 친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딸. 하지만 전업 작가 아빠를 둔 덕에 두 마리 햄스터가 식구가 되는 순간부터 아빠와 딸이 햄스터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 이렇게 <햄스터가 도망쳤다!>(이상권·이단후 글, 김정선 그림/샘터)는 출발한다.
이 책은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햄스터를 기르는 요령을 다룬 책이 아니다(물론 햄스터 기르기 교본 구실도 한다). 햄스터를 매개로 가족 간의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족 일기도 아니다(물론 이 책은 아이가 직접 쓴 일기다). 그저 햄스터가 한 식구가 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가 아기자기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인데, 실제 벌어진 일들과 덧붙여지는 아이의 감상이 빚으며 풍기는 향은 참으로 고소하다.
햄스터에게 밥을 주다가 손등을 물린 아이는 5초를 흔들어도 햄스터가 놓아 주지 않다가 7초가 되니까 놓아 주었다고 일기에 쓴다. 아마도 물린 손등이 아파서 예닐곱 차례쯤 세게 손을 털어낸 시간을 7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증언(?)하는 정확한 수치에 웃음이 난다. 놀라고 아파서 얼굴이 빨개졌던 아이가 밤에 책상머리에 앉아 일기에는 ‘7초’라고 꾹꾹 눌러 쓰는 모습.
햄토리와 햄쪽이가 낳은 새끼들 중에는 유독 모험심이 강한 녀석이 있어 집 안 어딘가에 숨어 버렸는데, 녀석을 잡기 위해 아빠가 내놓은 묘책은 먹이를 소주에 절여서 녀석의 길목에 놓아두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술에 취해 발랑 누워 자고 있을 햄스터를 기대하는 아빠와 아이.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날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침이 되자 엄마의 웃음소리만 들렸다.”
이 책은 6개월 남짓한 기간에 쓴 아이의 일기 중 일부를 발췌했다. 마지막에 모험심 강한 문제의 햄스터가 탈출하는 장면을 목도한 아이는 이미 햄스터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햄스터의 선택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의 키가 쑥 자란 모습을 보여 준다. 다소 짧은 분량에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으면서 떠오르는 풍경 하나.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던 마당 있는 집. 아빠가 정성스레 가꾸던 화단 옆에 나란히 놓여 있던 흙 묻은 검정색 장화와 노란색 장화. 김문정/시공주니어 편집팀장 kmoon@sigong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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