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점심을 먹고 나면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 나오는 버릇이 생겼다. 2층 교무실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뽑고, 서무실에 들러 우편물을 챙겨들고 학교 건물 뒷곁으로 간다. 그러고는 이팝나무 그늘에 앉는다.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차향을 맡으며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한다. 여기만 와도 학교의 온갖 소음에서 자유롭다. 그 조용함이, 그 한적함이 어느 순간부터 참 좋다. 거기서 우편물을 뜯어 읽기도 하고, 다음 시간 수업 준비를 하기도 한다. 이때가 어느새 참 귀한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조용하고 한적한 시간에 침입자가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반 이림이, 민지, 지원이가 내 뒤를 밟아 따라 다닌다. 내가 그늘 아래 앉아 있으면 다가와서 인기척을 하고는 말을 붙이려다가 금방 가기도 하고, 5층 창문을 열고 “선생님!” 부르면서 거기 있다는 것 다 안다는 듯 아는 척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쪼르르 와서는 “선생님 2층 교무실에 들렀다가 서무실에 들렀다가 건물 옆에 가셔서 책 읽지요? 다 알아요” 한다.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다 파악했다.
오늘도 그랬다. 교무실에서 나가려고 하니까 열려 있던 문이 스르르 바깥쪽에서 닫힌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아무도 없다. “이상하네” 하면서 지나가니 옆에 숨어 있던 녀석들이 훗훗 웃는다. 그럴 줄 알았다. 녀석들의 장난이다. 별로 개의치 않고, 건물 밖으로 나간 다음 늘 앉는 자리로 갔다. 책을 보고 있는데, 주목나무 옆 작은 덤불이 흔들린다. 거기 숨은 것이다. 들켰다면서 나오는데 셋이 다 약속이나 한 듯 나뭇가지를 귀에 꽂았다. 그러면서 민지가 지원이한테 뭘 하라고 시키는데 쑥스러운지 안 한다. 웃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내게 다가와서 내 머리 위에 그 나뭇가지들을 꽂고는 앞에 셋이 쪼르르 앉는다. 그러더니 배를 잡고 웃는다. 민지는 계속 깔깔 대고, 지원이는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웃고, 이림이는 “뭐가 그렇게 웃긴데?” 하면서도 실실 웃고 있다. “선생님 사슴 뿔 같아요.” “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야 하는데…….” “우리 반에 그냥 꽂은 채로 들어가세요. 폭소 바다일 거예요” 하면서 수다다. 그때, 교감 선생님이 주차장으로 가다가 그 꼴을 보셨는데 황당해하며 허허 웃으신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떼어 내시지 왜 그냥 두셨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걱정이다. 그렇게 앉아 있자니 어느새 시간은 가서 벌써 5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아이고, 오늘은 책도 별로 읽지 못했다.
그런데도 기분이 참 좋다. 이렇게 아이들과 평화롭게 웃으면서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답답한 교실 공간에서는 이만한 활기를 느낄 수 없는데,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생동감이 넘친다. 오늘은 교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세 아이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그런 모습이 참 아름답다. 방학하기 전에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아이들과 하는 산책을 시작해야겠다. 김권호/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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