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29만명 설문조사 결과
2008년 1월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한 영어교육 공청회에서 “미국에선 ‘오렌지’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어륀지’ 해야 알아듣는다”며 “영어 표기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 ‘어륀지’는 현 정부의 ‘영어 몰입 정책’을 상징하는 말이 됐고, 정부 출범 뒤에는 수준별 이동수업 등 각종 영어교육 정책이 잇따라 시행됐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성적표는 초라하다.
21일 <한겨레>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교육과학기술부의 미공개 보고서 ‘영어교육정책 성과 분석 및 발전 방안 연구’를 보면, 중·고교생이 △수준별 이동수업 △영어 전용교실제 △<교육방송>(EBS) 영어교육방송 △주당 1시간 회화수업 △교과교실제 등 5가지 정책을 경험한 뒤 “영어를 더 잘하게 될 것 같다”고 답한 비율이 50%를 넘는 정책은 영어교육방송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는 대체로 40% 언저리를 맴돌았다.
이 보고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희삼 연구위원팀이 교과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11월 초·중·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 29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담고 있다.
중·고교 영어교육 정책과 달리 △초등 3~4학년 영어시수 확대 △초등 영어체험교실 △방학 중 집중영어캠프 △원어민 화상 강의 등 초등학교 대상 정책은 모두 60~80%대의 비교적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정책별로 보면, 영어 수준별 이동수업을 받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수준별 수업으로 영어를 더 잘하게 될 것 같다’는 문항에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한 비율은 41.0%에 그쳤다. 중학생도 49.5%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교육방송>의 영어교육방송에 대해선 고등학생 64.9%, 중학생 68.9%가 “방송으로 영어를 더 잘하게 될 것 같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초등학교 3~4학년의 영어수업 확대를 두고서도 초등학생 79.6%가 영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권영길 의원은 “이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형 교육’이 구호만 요란했을 뿐, 실제 학교 현장에선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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