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권위’에 자기 생각을 더해야

등록 2011-05-02 11:52

[김창석 기자의 서술형·논술형 대비법] (46) 권위를 빌릴 때의 원칙
‘발췌’ 아닌 ‘발제’한 느낌으로
자기의 언어로 바꿔써야 효과
어떤 분야이든 권위자가 있게 마련이다. 권위자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어떤 분야에 대해 글을 쓸 때 전문가들의 권위를 빌리는 일은 설득력을 높이는 데 긴요하다. 이 때문인지 논리적인 글쓰기를 할 때 권위자의 얘기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이들이 많다. 권위자가 한 말이나 권위자가 쓴 책에서 일부를 옮겨쓰는 방법으로 말이다. 권위에 기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쳇말로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권위자의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식의 논증을 ‘권위를 빌리는 논증’이라고 부른다.

권위를 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관한 글을 쓰면서 핵이나 원자력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을 인용하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법률 문제에 관한 글을 쓸 때 법조인들의 말을 참고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전문가나 권위자가 한 말이나 글을 인용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역효과가 더 커지는 경우도 생겨난다.

먼저 자신이 쓰려고 하는 글의 내용과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다루는 글의 주제와는 별로 상관없는 내용인데도 전문가의 얘기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인용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글에서 강조하는 맥락이 흐려지거나 모호해지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 또 너무 추상적이거나 전문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얘기를 쓰는 것도 좋지 않다. ‘지적 오만’이거나 ‘자기만족’으로 쓴 글로는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힘들다. 많은 이들이 읽을 글이거나, 시험에 쓰일 글이라면 더욱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일반론적인 내용을 전문가의 입을 빌려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만약 워런 버핏이 “주식 투자에는 신중함과 함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면, 이것은 인용할 만한 가치가 없는 내용을 인용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권위자만이 할 수 있는 내용을 인용해야 빛이 나고, 읽는이에게도 그 권위가 먹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용의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두루뭉수리로 정리된 얘기라면 전문가의 입을 빌리더라도 효과가 나지 않는다.

인용이 너무 많아서도 곤란하다. 좋은 얘기를 모두 모아놓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글 말이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고, 누구는 이렇게 개념 규정했으며, 누구는 이렇게 강조했다는 식의 얘기만 나열된 글에는 글쓴이의 진정한 생각이 담겨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글은 공허한 느낌을 준다. 또 여러 얘기가 뒤죽박죽 모여 있어서 어떤 얘기를 하려는지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

아무리 권위자의 말이라 하더라도 ‘글쓴이만의 생각’이라는 깔때기를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자기 속에서 되새김질해본 생각과 그러지 않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단순한 발췌와 인용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통해 ‘원본’을 재구성하거나 재창조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기 식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자신의 언어로 된, 자기 스타일의 글을 쓸 수 있다.

권위자의 문제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덧붙여지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지식은 재구조화된다. 원래의 생각에서 제2의 생각, 제3의 생각으로 거듭나게 되는 셈이다.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지식은 원본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할 일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권위 있는 콘텐츠를 모아 내용을 살피되, 거기에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이 덧붙여져야 한다.

대학입시에서 쓰는 논술을 가르치는 이들 가운데는 ‘배경지식’이라는 이름으로 글에 쓸 재료를 짧은 시간에 암기하도록 하는 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보다는 권위에 전적으로 기대는 글을 쓰게 된다. ‘지식의 현란함’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폭’을 보여주는 글이 좋은 글이다. 소박한 내용이라도 자신만의 해석이 돋보여야 한다.


kimcs@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