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린 전국청소년시낭송축제에 참가한 학생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시를 낭송하고 있다. 한국도서관협회 제공
수업 시간에 만나는 ‘시’
인상깊은 구절 골라보기, 시 낭송 해보기 등
시쓰기는 아이들의 ‘호기심·창의성’ 자극해
인상깊은 구절 골라보기, 시 낭송 해보기 등
시쓰기는 아이들의 ‘호기심·창의성’ 자극해
중학교에 왔다. 읽기 쉽고 잘 찍으면 100점도 받을 수 있는 국어는 그래도 좀 만만한 과목이었다. 그런데 웬걸. 화자, 비유, 상징, 음보, 심상, 대구…. 끝이 안 보인다. 이토록 짧은 4줄 시행 안에 필기한 건 8줄 아니 10줄도 넘는 것 같다. 만만하게 봤더니 암기과목보다 독하다.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 되고 필기한 단어들은 도대체 뭔 뜻인지. 여기서 무슨 ‘감동’을 찾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1. 시를 읽는 맛
시를 처음 배우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위와 같은 마음을 가져봤을 것이다. 동시를 통해 행과 연을 익히고 노래처럼 편안하게 시를 즐긴 학생들도 본격적인 시 장르를 접하면서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시와의 만남은 중학교 1학년 국어 1단원에서 시작된다. 동시에서 시로 넘어가는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도 있겠다.
첫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이다. 실제로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 중에도 시라고 하면 무조건 ‘어렵다’는 이미지를 가진 분이 많았다. 그 사람의 인상이 밝은지 어두운지 웃을 때 목젖이 보일 정도로 화통한지, 이런 것들은 자기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시 수업은 ‘스스로의 판단’보다 각종 ‘이론’들로 덧칠되어 있다. 이런 붓터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시는 내게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스스로’ 작품을 만나는 기회를 준다.
① 다짜고짜 들어보기: 사전정보 없이 무조건 눈을 감고 시부터 들어보게 한다. 낭송은 감정적이지 않고 냉정하게 또박또박. 처음 들어본 시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와 전체적인 이미지가 어떤지 함께 나눈다.
② 내가 찾은 이 문장: 작품을 직접 읽어보며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을 하나만 골라 그 이유를 써본다. 다양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하는 의견으로 선택이 모이곤 한다.
③ 네 마음을 말해봐: 시인이 이 시를 왜 썼을까, 그 마음을 헤아려 스스로 써본다. 아직 아무런 정보도 가르쳐주지 않았건만 아이들은 시인을 넘어 시의 숨겨진 매력까지 찾아내는 신비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를 읽는 맛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매 시간 한 편의 시를 읽어주고 있다. 새 학기 첫날이니까 박노해의 ‘첫마음’, 오늘은 배가 고프므로 최승호의 ‘아구찜 요리’, 날이 더워 생각나는 이제니의 ‘아마도 아프리카’, 선생님의 첫사랑을 물으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지난 몇 해 내가 느낀 건, 아이들이 시를 꽤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진도에 밀려 시를 지나치려는 날은 먼저 읽어달라고 아우성인 아이들에게서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끼곤 한다.
2. 시를 보여주는 맛 나는 시 외에도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을 조별로 나누어 발표하게 한다. 방법은 ‘자유’다. 연극이든 춤이든 유시시(UCC)를 찍어 와도 좋고 프레젠테이션을 해도 좋다. 단, 자습서를 베끼지 말 것! 조원이 모두 참여할 것! 이것이 원칙이다. 조별 발표에서도 아이들은 역시 ‘시’ 단원에서 큰 고민에 빠진다. 밑줄 긋고 필기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시의 특징을 잘 베껴서 발표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선생님은 또 그 단어가 무슨 뜻인데 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고민 많은 아이들을 위해 시 단원 첫 시간에 ‘우가우가 부족’과 함께 ‘리듬’을 타러 간다. 시가 고대 부족의 노래에서 출발하였고, 그래서 지금도 시를 노래하는 가수들이 많으며, 음표가 없어도 무언가 반복적인 리듬감이 느껴지는 시에 대해 소개해준다. 그리고 직접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함께 불러본다. 예를 들어 휘성의 ‘사랑은 맛있다’라는 노래가 유행할 때에는 그 노래의 도입부 랩을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로 바꾸어 같이 불렀다.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웃기다, 재밌다, 딱딱 맞네. 이러한 시의 흥겨움과 리듬감을 느끼면 아이들은 시가 좀 만만해진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노래나 랩에 교과서의 시들을 넣어 불러보면 시의 운율이나 대구는 외우기도 전에 먼저 이해가 된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발표는 다채로워진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4행으로 눈물 나는 연극을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었고, 김춘수의 ‘꽃’을 발레로 표현한 아이들, 시를 가사로 직접 곡을 붙여 노래한 아이들도 있었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노래, 춤, 연극 심지어 발레로까지 표현하는 아이들의 창의성에 매년 놀라움을 느끼고 있다. 물론 반별로, 조별로 흥미의 차이는 있지만 발표하는 아이들은 그 시에 애정이 생기고 보는 아이들도 시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지는 건 분명했다. 한 작품의 발표가 끝나면 그 조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해당 작품을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그리고 더욱 세부적인 학습내용을 정리해주며 학습활동을 통해 마무리할 수 있게 한다. 3. 시를 쓰는 맛 시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시를 직접 써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수업 시수 안에서 그것도 30명이 넘는 학생의 작품을 하나하나 보고 평해주기엔 교육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는 한 줄 쓰기와 삼행시, 패러디시 등을 자주 이용한다. 아이들이 처음 쓰는 시는 ‘식상함’에서 출발한다. 꽃이 나를 향해 웃어 주고 냇물이 졸졸졸 노래하며 정다운 내 친구와 함께하는 것. 시작(詩作)은 이런 틀을 벗겨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꽃은 너희를 향해 웃고 있지 않아, 맑은 날 도로변의 개나리를 본 적 있니?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어 노란색이 노랗게 보이지 않잖아. 그걸 쓰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 나면 장내가 숙연해진다. 무언가 깨달았다는(?) 얼굴들. 틀을 벗은 아이들이 그다음 쏟아내는 신선한 생각들은 내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결국 시 쓰기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성장시키고 창의성을 발현하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시를 쓰는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언어의 매력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이 쓴 시의 제목이 ‘봄’이었는데 이걸 ‘봄에는’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라고 하면 아이들은 더 좋다고 반응한다. 시와 관련된 ‘이론’들을 쉽게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음보’(音步)란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처럼 시를 끊어 읽는 걸음걸이라고 풀어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다 함께 발을 구르거나 걸어보며 시를 읽으면 아이들은 달달 외우지 않아도 그 시가 몇 음보인지 떠올릴 수 있다. 최근 박성우의 <난 빨강>이라는 시집이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청소년 시집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아이들 마음을 속속들이 말해주면서도 시적 요소를 놓치지 않아서다. 다양한 시인의 각기 다른 매력을 여러 시집을 통해 느껴보는 다독도 중요하다. 우리가 경험한 시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선생님이 엄하게 시켰을지언정 몇 편의 시를 외우고 있다는 점이다. 외운 시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채 우리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 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한 권의 시집을 펼쳐들고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 한 편을 골라보자. 짧은 시간 동안 접할 수 있는 많은 작품들, 시가 어렵다는 첫인상에 갇히지 않고 문학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최은숙 서울 휘경여자중학교 국어교사
2. 시를 보여주는 맛 나는 시 외에도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을 조별로 나누어 발표하게 한다. 방법은 ‘자유’다. 연극이든 춤이든 유시시(UCC)를 찍어 와도 좋고 프레젠테이션을 해도 좋다. 단, 자습서를 베끼지 말 것! 조원이 모두 참여할 것! 이것이 원칙이다. 조별 발표에서도 아이들은 역시 ‘시’ 단원에서 큰 고민에 빠진다. 밑줄 긋고 필기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시의 특징을 잘 베껴서 발표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선생님은 또 그 단어가 무슨 뜻인데 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고민 많은 아이들을 위해 시 단원 첫 시간에 ‘우가우가 부족’과 함께 ‘리듬’을 타러 간다. 시가 고대 부족의 노래에서 출발하였고, 그래서 지금도 시를 노래하는 가수들이 많으며, 음표가 없어도 무언가 반복적인 리듬감이 느껴지는 시에 대해 소개해준다. 그리고 직접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함께 불러본다. 예를 들어 휘성의 ‘사랑은 맛있다’라는 노래가 유행할 때에는 그 노래의 도입부 랩을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로 바꾸어 같이 불렀다.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웃기다, 재밌다, 딱딱 맞네. 이러한 시의 흥겨움과 리듬감을 느끼면 아이들은 시가 좀 만만해진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노래나 랩에 교과서의 시들을 넣어 불러보면 시의 운율이나 대구는 외우기도 전에 먼저 이해가 된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발표는 다채로워진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4행으로 눈물 나는 연극을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었고, 김춘수의 ‘꽃’을 발레로 표현한 아이들, 시를 가사로 직접 곡을 붙여 노래한 아이들도 있었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노래, 춤, 연극 심지어 발레로까지 표현하는 아이들의 창의성에 매년 놀라움을 느끼고 있다. 물론 반별로, 조별로 흥미의 차이는 있지만 발표하는 아이들은 그 시에 애정이 생기고 보는 아이들도 시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지는 건 분명했다. 한 작품의 발표가 끝나면 그 조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해당 작품을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그리고 더욱 세부적인 학습내용을 정리해주며 학습활동을 통해 마무리할 수 있게 한다. 3. 시를 쓰는 맛 시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시를 직접 써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수업 시수 안에서 그것도 30명이 넘는 학생의 작품을 하나하나 보고 평해주기엔 교육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는 한 줄 쓰기와 삼행시, 패러디시 등을 자주 이용한다. 아이들이 처음 쓰는 시는 ‘식상함’에서 출발한다. 꽃이 나를 향해 웃어 주고 냇물이 졸졸졸 노래하며 정다운 내 친구와 함께하는 것. 시작(詩作)은 이런 틀을 벗겨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꽃은 너희를 향해 웃고 있지 않아, 맑은 날 도로변의 개나리를 본 적 있니?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어 노란색이 노랗게 보이지 않잖아. 그걸 쓰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 나면 장내가 숙연해진다. 무언가 깨달았다는(?) 얼굴들. 틀을 벗은 아이들이 그다음 쏟아내는 신선한 생각들은 내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결국 시 쓰기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성장시키고 창의성을 발현하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시를 쓰는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언어의 매력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이 쓴 시의 제목이 ‘봄’이었는데 이걸 ‘봄에는’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라고 하면 아이들은 더 좋다고 반응한다. 시와 관련된 ‘이론’들을 쉽게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음보’(音步)란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처럼 시를 끊어 읽는 걸음걸이라고 풀어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다 함께 발을 구르거나 걸어보며 시를 읽으면 아이들은 달달 외우지 않아도 그 시가 몇 음보인지 떠올릴 수 있다. 최근 박성우의 <난 빨강>이라는 시집이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청소년 시집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아이들 마음을 속속들이 말해주면서도 시적 요소를 놓치지 않아서다. 다양한 시인의 각기 다른 매력을 여러 시집을 통해 느껴보는 다독도 중요하다. 우리가 경험한 시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선생님이 엄하게 시켰을지언정 몇 편의 시를 외우고 있다는 점이다. 외운 시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채 우리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 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한 권의 시집을 펼쳐들고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 한 편을 골라보자. 짧은 시간 동안 접할 수 있는 많은 작품들, 시가 어렵다는 첫인상에 갇히지 않고 문학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최은숙 서울 휘경여자중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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