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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이벤트’가 아닌 ‘일상 활동’으로

등록 2011-05-30 13:58

디베이트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 디베이트는 초등학생 때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다.  투게더 디베이트클럽 제공
디베이트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 디베이트는 초등학생 때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다. 투게더 디베이트클럽 제공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20. 디베이트 대학 조직법
21. 한국과 미국에서 디베이트의 위상
22. 참여, 그룹, 경쟁이라는 마술

디베이트 역사가 긴 미국에서 디베이트가 어떤 위상에 있는지 알아보자.

미국 교육에서 디베이트는 대학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는다. 이런 디베이트 문화가 고등학교까지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 예를 들어 미국에서 대표적인 고교생 디베이트 조직인 엔에프엘(NFL)은 1925년도에 결성되었다. 이후 미국 디베이트는 중학교에도 퍼졌다. 하지만 아직도 중학교에는 안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어떤 중학생 디베이트 대회는 열렸다 안 열렸다 한다. 나아가 초등학교에서의 디베이트는 거의 볼 수 없다. 남가주의 한인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일 정도다.

결국 미국 교육에서 디베이트는 고등학교·대학교 중심이다. 주요 활동 양상은 동아리 활동 위주다. 고등학교마다, 대학교마다 디베이트 클럽이 결성돼 활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무언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한국의 일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이미 디베이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의 디베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베이트에 앞서 미국 사회에 뿌리내린 토론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과는 토대가 다르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익숙한 사회에서의 디베이트는, 획일화되고, 윗사람 말에 순종하고, 권위로 문제를 풀려는 문화에서의 디베이트와 확연히 다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 학생들은 평소에 토론과 대화를 중시하는 교육 문화 속에서 자라다가, 고교 이후 디베이트에 ‘필이 꽂히면’ 디베이트 클럽에 가입해 활동하는 식으로 디베이터로 성장한다.

선발 위주의 소수 아닌 절대다수 참여 구조로
교육에 필요한 근본적 두뇌질서를 주는 기회로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보다 말하기 조심스럽다. 지난 10년 넘게 한국 토론문화 창달을 위해 애써온 분들의 쉽지 않았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내가 이해한 것과는 다른 양상의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디베이트에 대한 내 평가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선상으로 한정하고 싶다. 아직 한국에서 디베이트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모르는 분들에게 내가 이해한 특징을 말씀드리는 정도로 양해해달라는 것이다.

한국 디베이트, 아니 한국의 토론은 지금까지 “소수의 선발된 학생들이 학교의 명예를 위해 1년에 두어차례 열리는 이벤트성 토론 대회에 나가는 것”이 주요한 활동 양상이었다고 본다. 이 말은 수혜자가 일부에 국한됐고, 평상시 활동보다 대회 참여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는 걸 뜻한다.


하지만 디베이트의 마술과도 같은 교육적 효과를 떠올리자면, 이런 양상은 아쉽다. 미국 디베이트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디베이트는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 시작하는 것은 늦다. 중학교, 아니 가장 이상적으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정도만 되어도 디베이트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뿐더러, 이때 시작해야 효과가 더 좋다. 이는 마치 피아노를 일찍 시작할수록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피아노를 시작하면 손가락이 이미 굳어 있다. 머리가 말랑말랑한 초등학교 시절 디베이트를 시작해야 흡수가 빠르다.

둘째, 디베이트는 모든 학생들이 해야 한다. 공부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찾고 하는 것은 모든 공부 공통의 요구사항이다. 거기다 이런 디베이트 훈련을 거치면 머리가 논리적으로 변하고 좋아지기 때문에 다른 공부를 할 때도 쉬워진다. 그러니 일부 선발된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 디베이트 강연을 하러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실론’을 들어 고개를 흔드는 분들을 봤다. 한 반에 30~40명씩 되는 현실에서 디베이트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다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혼동된다. 가장 좋은 교육방법이라면 우선적으로 채택하기 위해 여건을 바꿔야 할 것 아닌가? 교육 일선에 없는 사람으로서 함부로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해결의 관점’에서 어른들이 아이디어를 집중했으면 좋겠다. 고등 실업자들을 디베이트 코치로 양성해서 보조교사로 활동하게 한다거나, 학부모 중에서 자원자를 뽑아 디베이트 코치로 양성하거나, 디베이트 코치 중에서 재능기부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배치하자는 것이다. 하여간 한국의 모든 학생들이 디베이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어른들이 지혜를 모아보자.

셋째, 디베이트는 꾸준히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매주 해야 한다. 자주 연습할수록 피아노 실력이 좋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회를 앞두고 잠깐 집중해서 피아노 연습을 해봐야 피아노 실력이 늘 수가 없다. 게다가 대회는 평소의 활동을 지원하는 촉진제의 구실을 하는 것이지 이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평소에 꾸준히 피아노를 치다가 간혹 열리는 대회에 나가 기량을 견주어보는 식이 맞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디베이트의 교육에서의 위상은 ‘교육에 필요한 근본적인 두뇌 질서를 마련해주는 활동’이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펼치는 디베이트의 슬로건이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매주 모여 디베이트하는 그날까지!’가 되었다.

이상의 관점에서 한국의 디베이트 문화가 개선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자.

첫째, 대회 위주의 디베이트 활동을 지양해야 한다. 좀더 강조해야 할 점은 평상시에 꾸준히 디베이트 교육을 하는 것이다. 캠프나 대회는 그야말로 이벤트에 불과하다. 이벤트가 본질적인 활동을 대신할 수는 없다. 대회 자체도 상을 주고받는 행사라기보다는 디베이트 심화학습의 계기여야 한다.

둘째, 디베이트 원론에 조금 더 충실했으면 좋겠다. 디베이트 포맷을 임의로 바꾸거나, 각각의 포맷이 가진 특징을 제거하고 그 순서만 따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포맷 유형들을 숙지하고, 유형별 특징을 검토해 저학년(초등~고등)에게 어울리는 디베이트 포맷을 선택해서 하도록 하자. 내 생각에는 퍼블릭 포럼 포맷이 저학년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가장 다양하게 학생들의 두뇌를 자극하는 포맷이다.

셋째, 좀더 저학년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초등 고학년부터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그 시스템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넷째, 디베이트 대회에서 원고를 받아 이를 예선으로 대체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아마도 예선까지 치르려면 너무 일이 커지기 때문에 이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디베이트의 목표에 위배되는 방법이다.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자가 많다고 사진을 제출받아 예선에서 거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베이트는 디베이트로 승부를 봐야 한다.

또다시 조심스럽다. 한국 교육에서 ‘비판적 사고력 향상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던 논술이 제구실을 못했다. 그 패인은, 학생들이 해야 할 비판적 사고활동을 교수님이나 선생님, 논술강사가 대신 한 것에서 비롯됐다. 학생들 스스로 원자료들을 읽으며 분석하고, 논리를 세워 발표하고, 또 이를 서로 반박하는 과정에서 좀더 세련된 논리를 만들어나가는 훈련을 해야 했다. 그런데 원자료 분석과 논리 정립을 어른들이 했다. 학생들에게는 그 정리된 결과가 전달됐다. 비판적 사고 훈련을 위한 논술이 암기과목으로 변해간 과정이다.

그 전철을 디베이트도 밟게 되면 암담할 것이다. 디베이트만큼은 제대로 확산시켜 ‘비판적 사고력 향상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만들어야겠다. 다시 말하지만 디베이트의 요체는 첫째, 정확한 디베이트 포맷의 결정과 그 집행, 둘째, 매주 꾸준히 활동할 것, 셋째, 학생들 자신의 생각의 힘을 기르는 방향으로 디베이트를 진행할 것, 넷째, 이 모든 것들의 목표가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 있음을 명심할 것에 있다. 지금 막 태동하는 디베이트, 이것만은 제대로 지켜서 한국 교육 개선의 계기로 삼아보자. 케빈 리 Help@TogetherDebate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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