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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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행복의 중심 휴식 - 휴식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의 중심 휴식>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걷는나무 조그만 항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어부가 한가롭게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업가가 어부를 깨웠다. 그러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업가는 어부가 하루에 한 차례만 고기를 잡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업가는 이 사실을 참지 못했다. “어째서 두 번, 세 번 고기 잡으러 나가지 않는 겁니까? 그러면 몇 배로 수입을 올릴 텐데요.” 어부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득바득 돈을 모아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러자 사업가는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 당신은 1년 뒤에 모터보트를 살 수 있을 거예요. 2년 뒤에는 두 척까지 늘리겠지요. 3~4년 뒤에는 작은 어선도 손에 넣게 될 거예요. 모터보트 두 척에 어선 한 척이면 고기를 훨씬 많이 잡을 수 있어요!”
사업가는 자기 말에 취해 계속 떠벌려댔다. “그럼 작은 냉동 창고를 지을지도 몰라요. 커다란 생선 가공 공장도 마련하겠지요. 이쯤 되면 자가용 헬리콥터를 타고 물고기 떼를 바라보며 어선을 이끌 수도 있어요.” 그래도 어부는 덤덤하게 사업가에게 물었다. “그런 다음에는요?” 부자는 열띤 얼굴로 답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나면, 당신은 편안하게 햇살 아래서 달콤한 낮잠을 즐길 수 있어요. 저 멋진 바다를 감상하면서요!” 어부는 피식 웃었다. “내가 지금 바로 그러고 있잖소.” 하인리히 뵐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선진국일수록 우울증이 많고 자살률도 높다. 이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움켜쥐려고 안달복달이다. 그 뒤끝은 어떨까? 과연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마음속 헛헛함이 사라질까? 부자가 될수록 행복하다면, 잘사는 나라에 늘어나는 우울증과 높아지는 자살률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행복은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데서 온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과학 칼럼니스트 울리히 슈나벨은 왜 그런지를 조목조목 풀어낸다. 그는 잼 고르기에 얽힌 유명한 경영학의 실험부터 들려준다. 미국의 식료품 가게에서 잼을 늘어놓고 팔았다. 한쪽에서는 24가지 제품을 펼쳐 놓았다. 다른 한쪽에서는 6가지만 판매대 위에 놓았다. 어느 편에서 더 많은 잼이 팔렸을까? 손님들은 24가지 상품이 널린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여기서 잼을 산 사람은 2%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6가지 제품이 있는 곳에서는 30%의 손님이 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선택이 늘어나면 불만족은 되레 늘어난다. 무엇을 사건, 안 산 제품에 대해 미련이 남는 탓이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 얻는 게 늘어날수록, 얻지 못하는 것들은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뚜벅이’로 지내다 차를 샀다 해보자. 행복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내 자기 형편으로는 엄두도 못 낼 고급차가 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욕구는 채울수록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애면글면한다. 나아가, 슈나벨은 하인리히 뵐이 보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준다. 만약 어부가 계속 햇빛을 즐기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어부가 졸고 있을 때도 ‘경쟁은 잠을 자지 않는다.’ 커다란 어선을 가진 이들은 어부보다 싼 값에 생선을 시장에 내놓을 테다. 경쟁에서 밀린 어부는 마침내 항구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신세도 별다르지 않다. 세상은 한가롭게 지내는 이들을 짓밟아 버린다. 모두가 다급하게 달리고 있기에, 나 또한 죽자고 뛰어야 한다. 현대사회란 ‘달리는 정지 상태’와 같다. 기본이라도 하려면 정신없이 달음박질해야 한다는 뜻이다. 속도를 높이는 세상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 생각하고 선택할 여유는 더욱 줄어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변화를 쫓아가야 할 판이다. 남 시키는 대로 한다는 점에서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슈나벨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휴식은 오히려 ‘경쟁력’이라고 주장한다. “낮잠을 자지 말라고? 정말 상상이라고는 모르는 아둔함의 극치군!”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마크 트웨인, 아인슈타인, 존 레넌 등 창의적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줄 알았다. 쥐어짜는 분위기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일에서 벗어나 숨을 고를 때, 남다른 생각이 불현듯 튀어나오지 않던가? 그러나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능력’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500시간 이상 명상하지 않고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님은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식을 즐기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평생 일벌레로 살아온 사람에게 휴식은 되레 난감하기만 하다. 우리의 ‘폭탄주’ 문화는 이것으로 설명되지 않을까? 우리의 근무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1위다. 우리 문화에서는 여가가 충분히 주어진 적이 없다. 게다가 이를 누려본 경험도 별로 없다.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은 술과 향락으로 ‘빈 시간’을 날려버릴 뿐이다. 이런 삶은 가치 있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옛 그리스인들은 휴식을 ‘신(神)에게 가까이 가는 행위’로 여겼다. 예술과 철학, 종교 등 정신을 높이는 일들은 휴식을 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은 일하는 시간이 아닌 휴식에 있었던 셈이다. 초·중·고등학교의 주 5일제 수업이 내년부터 실시되나 보다. 미래 사회는 일벌레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 점에서 주 5일제 수업은 바람직한 제도인 듯싶다. 하지만 놀아본 사람이 제대로 놀 줄 아는 법이다. 휴식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휴일과 함께 이를 의미 있게 채워줄 문화·예술·체육 활동도 함께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시사브리핑: 초·중·고 주 5일제 수업지난 6월14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주재로 올해 2학기에 시범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주 5일제 수업을 전면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연간 205일 정도였던 수업일수는 190일 안팎으로 줄어든다. 아울러 사교육 열풍,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대책으로 토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운영, 초등학교 토요 돌봄 교실 확대, 스포츠 교실 등 협력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걷는나무 조그만 항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어부가 한가롭게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업가가 어부를 깨웠다. 그러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업가는 어부가 하루에 한 차례만 고기를 잡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업가는 이 사실을 참지 못했다. “어째서 두 번, 세 번 고기 잡으러 나가지 않는 겁니까? 그러면 몇 배로 수입을 올릴 텐데요.” 어부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득바득 돈을 모아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러자 사업가는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 당신은 1년 뒤에 모터보트를 살 수 있을 거예요. 2년 뒤에는 두 척까지 늘리겠지요. 3~4년 뒤에는 작은 어선도 손에 넣게 될 거예요. 모터보트 두 척에 어선 한 척이면 고기를 훨씬 많이 잡을 수 있어요!”
행복의 중심 휴식
선진국일수록 우울증이 많고 자살률도 높다. 이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움켜쥐려고 안달복달이다. 그 뒤끝은 어떨까? 과연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마음속 헛헛함이 사라질까? 부자가 될수록 행복하다면, 잘사는 나라에 늘어나는 우울증과 높아지는 자살률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행복은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데서 온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과학 칼럼니스트 울리히 슈나벨은 왜 그런지를 조목조목 풀어낸다. 그는 잼 고르기에 얽힌 유명한 경영학의 실험부터 들려준다. 미국의 식료품 가게에서 잼을 늘어놓고 팔았다. 한쪽에서는 24가지 제품을 펼쳐 놓았다. 다른 한쪽에서는 6가지만 판매대 위에 놓았다. 어느 편에서 더 많은 잼이 팔렸을까? 손님들은 24가지 상품이 널린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여기서 잼을 산 사람은 2%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6가지 제품이 있는 곳에서는 30%의 손님이 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선택이 늘어나면 불만족은 되레 늘어난다. 무엇을 사건, 안 산 제품에 대해 미련이 남는 탓이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 얻는 게 늘어날수록, 얻지 못하는 것들은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뚜벅이’로 지내다 차를 샀다 해보자. 행복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내 자기 형편으로는 엄두도 못 낼 고급차가 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욕구는 채울수록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애면글면한다. 나아가, 슈나벨은 하인리히 뵐이 보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준다. 만약 어부가 계속 햇빛을 즐기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어부가 졸고 있을 때도 ‘경쟁은 잠을 자지 않는다.’ 커다란 어선을 가진 이들은 어부보다 싼 값에 생선을 시장에 내놓을 테다. 경쟁에서 밀린 어부는 마침내 항구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신세도 별다르지 않다. 세상은 한가롭게 지내는 이들을 짓밟아 버린다. 모두가 다급하게 달리고 있기에, 나 또한 죽자고 뛰어야 한다. 현대사회란 ‘달리는 정지 상태’와 같다. 기본이라도 하려면 정신없이 달음박질해야 한다는 뜻이다. 속도를 높이는 세상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 생각하고 선택할 여유는 더욱 줄어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변화를 쫓아가야 할 판이다. 남 시키는 대로 한다는 점에서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슈나벨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휴식은 오히려 ‘경쟁력’이라고 주장한다. “낮잠을 자지 말라고? 정말 상상이라고는 모르는 아둔함의 극치군!”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마크 트웨인, 아인슈타인, 존 레넌 등 창의적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줄 알았다. 쥐어짜는 분위기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일에서 벗어나 숨을 고를 때, 남다른 생각이 불현듯 튀어나오지 않던가? 그러나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능력’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500시간 이상 명상하지 않고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님은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식을 즐기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평생 일벌레로 살아온 사람에게 휴식은 되레 난감하기만 하다. 우리의 ‘폭탄주’ 문화는 이것으로 설명되지 않을까? 우리의 근무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1위다. 우리 문화에서는 여가가 충분히 주어진 적이 없다. 게다가 이를 누려본 경험도 별로 없다.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은 술과 향락으로 ‘빈 시간’을 날려버릴 뿐이다. 이런 삶은 가치 있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옛 그리스인들은 휴식을 ‘신(神)에게 가까이 가는 행위’로 여겼다. 예술과 철학, 종교 등 정신을 높이는 일들은 휴식을 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은 일하는 시간이 아닌 휴식에 있었던 셈이다. 초·중·고등학교의 주 5일제 수업이 내년부터 실시되나 보다. 미래 사회는 일벌레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 점에서 주 5일제 수업은 바람직한 제도인 듯싶다. 하지만 놀아본 사람이 제대로 놀 줄 아는 법이다. 휴식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휴일과 함께 이를 의미 있게 채워줄 문화·예술·체육 활동도 함께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시사브리핑: 초·중·고 주 5일제 수업지난 6월14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주재로 올해 2학기에 시범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주 5일제 수업을 전면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연간 205일 정도였던 수업일수는 190일 안팎으로 줄어든다. 아울러 사교육 열풍,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대책으로 토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운영, 초등학교 토요 돌봄 교실 확대, 스포츠 교실 등 협력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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