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미술관으로 변신한 ‘학교’

등록 2011-07-11 10:23

‘사제동행’을 주제로 한 작품에 신현고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제동행’을 주제로 한 작품에 신현고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커버스토리] ‘감성교육’ 실천하는 인천 신현고
“원래 미술을 좋아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쉽게 접할 수 없다 보니 거리감이 느껴졌죠. 하지만 고등학교에 와서 미술과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학교 곳곳에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제가 참여한 작품도 복도에 걸려 있거든요. 지난 6월에는 ‘즐거운 우리집’이라는 주제로 공기평 작가 초대전이 열리기도 했죠. 미술 전공이 꿈인데, 학원에 따로 다니지 않아도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돼요.” 인천 신현고 2학년 허은지양은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다. 수업시간에 또는 학교에서 여는 다양한 작품 활동에 참여하면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인천 신현고 학생들에게 미술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도 협동작품에 참여하면서 미술을 즐기고 있다. 개개인의 작품이 하나로 모이면 또다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곤 한다. 미술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학교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교장 선생님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정도다. 학생과 교사들이 함께 참여한 손바닥과 발바닥 작품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학교 곳곳에 미술 작품 전시

학교 건물 1층 갤러리 ‘뮤즈’에서는 1년 내내 전시회가 열린다. 최근엔 중국어 선생님과 함께 만든 ‘전지 공예’를 전시하고 있다. 중국어만이 아닌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다른 층에는 여성 작가들의 ‘조각과 도예의 소통전’이 열리고 있다. ‘찾아가는 갤러리’ 행사 가운데 하나로 기획됐다. 교실을 오가며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너른 복도와 벽은 학생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 ‘청자의 빛’이란 작품은 학생 76명의 참여로 완성됐다. ‘학교 건물’은 수채화, 데생 등 다양한 미술 기법으로 그려져 교장실 앞 벽에 걸렸다. 문화예술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교육환경이다.


지난해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신현고는 음악, 미술, 체육 등 ‘문화예술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학력과 더불어 인성, 특기를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다. 음악 시간에 가야금을 배우고 체육 시간에는 유도와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 그렇다고 국영수 과목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음악, 미술, 체육 수업을 다른 학교에 견줘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많아 공부에 집중이 잘된다고 한다. 2학년 박현주양은 “전통악기는 다루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가야금을 배우면서 그런 생각을 지우게 됐다”며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어 풍부한 감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생들 참여도 높아

문혜란(사진) 체육 교사는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받은 머그컵을 자랑하며 내밀었다. 컵에는 문 교사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신현고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 캐릭터전’을 열며 준비한 것이었다. 학생들의 독창적이고 재치 있는 표현력에 교사들도 놀랐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벽도 허물어졌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머그컵이죠. 학생들의 작품을 보며 저 또한 많이 변했습니다. 유명하고 비싼 작품보다 학생들의 작품이 더 감동적이었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통해 학생들의 속 깊은 마음도 알게 되었죠.”


문혜란 체육교사
문혜란 체육교사
3학년 임하은양은 미술 수업을 통해 창의성을 기를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두루마리 화장지에 내 이야기를 그려 넣는 시간이었는데, 일상 속 물건이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는 게 무척 신기했다. “중학교 때까지 미술은 똑같이 잘 그리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친구들은 위축되기 마련이었죠. 하지만 똑같이 그리는 것보단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딱딱한 미술’에서 ‘재미있는 미술’로 바뀐 거죠.” 2학년 임다은양은 학교 소속감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참여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학교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이과생들은 특히 미술에 관심이 많이 떨어지는데, 학교 곳곳에 미술 작품이 있으니 흥미가 생기죠.”

미술과 연계한 교과통합형 수업

이렇게 신현고에 ‘문화예술교육’이 제대로 자리잡은 건 김현정 미술 교사의 힘이 컸다. 지난해 교육방송 <최고의 교사>에 소개된 김 교사는 미술을 다양한 교과와 연계한 창의적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1학년 때는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본연의 미술 수업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2, 3학년이 되면 이런 수업에 흥미가 떨어지는 편이죠. 그래서 종종 미술 비평이나 통합교과형 수업을 준비합니다. 최근엔 ‘고흐가 소녀시대를 만났을 때’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류 콘서트 장면을 배경 삼아 보여줬죠. 대중문화가 우리의 문화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면서 미술과 함께 논술 수업도 했지요.”

김 교사는 “학생들이 서로 협동해서 예술 작품을 만들고 학교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모습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미술로 학교 구성원이 소통하고 학교의 역사를 만들어 갔으면 해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예술적 영감이 되죠. 특별한 사람의 재주가 아니라 미술을 잘 못하는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도 ‘작품’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조금은 비뚤어졌던 학생이 미술 수업을 통해 변하기도 했고요.”


신현고 학생들은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감성을 키워가고 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 손바닥 작품.
신현고 학생들은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감성을 키워가고 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 손바닥 작품.
요즘엔 학교의 빈 공간을 학생들의 ‘휴게실’로 꾸미는 일을 벌이고 있다. 저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휴게실 디자인 모형을 제출했다. 휴게실은 학생들의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디자인을 골라 실제로 꾸며볼 예정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휴게실을 꾸미면 ‘교사들의 휴게실’이 만들어지죠. 학생들이 만들고 싶은 휴게실의 모습은 정말 다양했어요. 찜질방으로 만들어 놓은 학생도 있었고요. 일상생활 속에서 미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잘 드러냈죠. 이렇게 아이들이 미술에 거부감 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시도해봤으면 합니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미술을 조금씩 접하게 하는 것이죠.”

‘학부모 전시회’도 열릴 예정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전시회가 열리면 학부모도 초청해서 함께 감상한다. “방명록에 남긴 글들을 보면 학부모님들이 더 좋아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을 학교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씀하시죠.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라 더 그렇습니다. 2학기에는 학부모 전시회도 열 계획입니다. 수묵화를 그리는 어머님의 작품을 전시해보려고 해요.”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 속에서 이런 교육환경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학교 구성원들의 적극적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준비한 것도 아니다. 수업 시간을 활용해 만든 것들이다. 문혜란 교사는 “요즘 아이들이 점점 감성을 잃어가고 있다”며 “삶을 가치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감성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교사는 “학교를 미술관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복도 한 켠을 이용해 부엌도 만들 생각이다. “학교 건물 층마다 주제가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요. 3층은 꿈, 4층은 소통 이런 식으로 말이죠. ‘따뜻한 부엌’이라는 주제로 복도에 찬장을 만들고 교사 캐릭터가 그려진 머그컵을 진열해 놓을 예정입니다. 하나의 설치작품이 학교의 부엌이 되는 거죠. 행복한 가정은 부엌이 따뜻하거든요. 학교도 그런 곳이었으면 해요.”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