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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똑똑한 기계와 산만한 인간

등록 2011-07-11 11:38

[난이도 수준 : 고2~고3]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

37.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디지털 세상은 스마트할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컬러스 카 지음최지향 옮김/청림출판

소크라테스에게는 글쓰기가 마뜩지 않았다. 그 시대의 대부분 지식은 ‘암기’를 통해 전해졌다. 줄줄 외웠다가 이야기로 풀어내는 식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글쓰기가 ‘망각’을 가져올 뿐이라며 툴툴거렸다. 하긴,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게 된 다음부터 우리의 기억력은 얼마나 떨어졌던가. 소크라테스의 불만을 이해해줄 만하다.

게다가 글은 깊은 생각을 앗아간다. 머리에 지혜를 새기려면 뜻을 읊조리고 또 읊조려야 한다. 입말로 거듭 되뇌는 동안 생각도 같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종이에 옮긴 글은 어떤가? 독자의 눈은 글자를 휙 훑고 지나간다. 이래서는 생각이 튼실하게 자라나기 어렵다. 표정과 달리, 활자에서는 진정성도 확 다가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글이란 생각 없는 영혼을 만드는 ‘나쁜 수단’이다.

하지만 이제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황당하게 들릴 뿐이다. 많이 읽고 써야 유식해지지 않던가. 이렇듯 글에 대한 태도는 완전하게 바뀌어 버렸다. 이천 년이 넘는 세월이 가져온 변화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컴퓨터에 쏟아지는 걱정도 별다르지 않을 듯싶다. 사람들이 컴퓨터에 붙어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 ‘접속’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활자에 익숙한 이들은 이런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 화면에서 저 화면으로 어지럽게 옮겨 다닌다. 긴 글을 진득하니 읽는 모습을 보기도 어렵다.

그뿐 아니다. 넷세대(Net-generation)들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법이 없다. 키보드를 두드려 정보를 ‘사냥’하려 들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활자에 매달리는 이들을 한심하게 보았다. 마찬가지로, 책에 익숙한 사람들은 컴퓨터에 빠진 지금 세대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활자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컴퓨터는 ‘바보상자’로 보인다. 컴퓨터가 바꿔놓은 세상은 어둡고 막막하게 다가오곤 한다.


과연 컴퓨터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어놓을까? 미래학자 니컬러스 카는 다른 생각을 들려준다. 확실히 컴퓨터는 사람들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컴퓨터 사용 시간이 늘어날수록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검색 능력’은 날로 자라난단다. 끝까지 읽지 않고도, 족집게처럼 필요한 부분만 짚어내는 재주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요긴한 정보를 만드는 과정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 학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따졌다. 세상을 설명할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다. 지금은 이렇게 머리를 싸매는 연구는 줄어드는 추세다. 인터넷 검색 엔진을 예로 들어보자. ‘맛집’이란 키워드를 넣으면 연관검색어로 ‘장충동’, ‘홍대 앞’ 등의 낱말이 뜨곤 한다. 왜 ‘장충동’, ‘홍대 앞’인지를 묻거나 따질 필요가 없다. 검색 엔진은 사람들이 함께 많이 찾아보는 정보를 일러준다. 어떤 내용이 얼마나 자주 서로 얽히는지만 알아도,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손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인터넷 검색 엔진의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이럴수록 검색의 결과는 더더욱 요긴해진다. 컴퓨터가 사람들이 찾아본 내용을 일일이 가려 통계를 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새로운 검색에 그대로 녹아든다.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학생들의 집중력이 심각하게 나빠졌다고 아우성이다. 과연 이런 모습이 걱정거리가 될까? 예전에 활자가 새로운 문화를 열었듯, 컴퓨터는 이제 전혀 색다른 문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현실을 걱정하기보다, ‘정보화’에 어떻게 익숙해질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니컬러스 카는 이 물음에 섬뜩한 답을 들려준다. 인터넷은 ‘교육 도구’가 아니다. 검색 엔진은 네티즌들이 산만하게 돌아다닐수록 돈을 번다. 그래야 더 많은 광고를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색 엔진들은 한 화면을 오래 보지 못하게 요란한 ‘효과’들을 집어넣는다. 하이퍼링크와 연관 기사들도 끊임없이 주의를 흐트러뜨린다. 이렇듯 사람들은 산만하도록 길들여질 뿐이다. 그런데도 전자기기 덕에 사람들이 ‘스마트’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인류의 기억력 또한 심각하게 나빠지는 중이다. 기억을 제대로 하려면 주의 깊게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화면에 꾸준하게 정신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멀티미디어’ 기술은 되레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탓이다. 니컬러스 카는 기억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를 들려준다. 하나같이 화면으로 얻은 정보는 머리에 제대로 남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인터넷과 컴퓨터는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글자는 문명의 모습을 아주 다르게 만들었다. 구텐베르크 활자는 읽고 쓰기를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문화의 고갱이가 된 인터넷과 컴퓨터는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나갈까?

영국의 한 회사는 논술 답안을 컴퓨터로 점수 매기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피로도와 주관적인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이 채점하는 것과 같은 정확도를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답안은 어떻게 될까? 소프트웨어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입력된 평가 공식과 어긋나는 답지는 ‘오답’일 뿐이다. 스러지는 창의성, 산만해진 정신에 떨어지는 집중력과 기억력. 니컬러스 카가 인터넷이 열어갈 세상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모든 교과서를 2015년까지 디지털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자기기가 학습 효과를 높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많은 학교들은 지금도 ‘학습 분위기 유지’를 위해 전자기기를 학교에서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 현장과 교과부가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다. 우리 학교들의 판단이 ‘소크라테스의 기우(杞憂)’인지, 제대로 된 고민인지를 깊이 따져보아야 할 때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시사브리핑: 스마트 교육 추진 전략교육과학기술부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추진중인 ‘스마트 교육 추진전략’에 따라 2014년에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는 모든 학년에서,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뀔 예정이다. 정부는 “21세기가 지향하는 스마트 교육은 자기주도적으로 흥미롭게 수준과 적성에 맞춰 풍부한 자료와 정보기술(IT)을 활용해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획일화된 입시교육에서 탈피해 개인별 특성에 맞춘 교육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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