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한국의 놀랄 만한 경제성장 과정을 가리켜 “서양에서 수백 년 걸린 과정을 단 30년 만에 이루었다”고 하며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한다. 사실 다른 나라에선 수백 년 걸린 것을 우리나라가 30년 만에 이루었다는 것은 세계사적 사건이다.
한국은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경제 개발을 시작하는데, 1963년에 농림어업에 종사하던 인구가 전체 취업자의 63%나 차지했지만 1970년엔 50%로 줄었고, 1980년에 34%, 2000년에 10% 미만으로 급감했다. 대신, 공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1963년에 37%에서 1970년에 50%로 늘었고, 1980년에 64%, 2000년 이후로 95% 가까이 급증했다. 가히 혁명적 변화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농림어업 종사자들을 분해시키고 이들을 공업이나 서비스업 쪽으로 집중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국민총생산(GNP) 지표도 급증하는데, 1970년엔 80억달러, 1975년엔 200억달러였다가 1980년 600억달러로 뛰었고 2000년엔 무려 5천억달러를 넘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먹을 파이를 키우는 과정이 서양의 산업화 과정에 비해 수십 배나 압축적으로 전개되었다 해서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는 과연 어떤 면이 좋아지고 어떤 면이 나빠졌는가? 우선 좋아진 면은 이런 것일 터이다. 못 사는 농촌이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고, 길도 넓어졌으며 최소한 굶주려 죽는 사람이 훨씬 적어졌다. 또 주거 환경이나 의료, 교육 측면에서 양이나 질이 모두 좋아졌다. 나아가 이렇게 나라가 잘 살게 되면 국력이 강해져 국제 관계에서도 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대개는 이런 논리가 우리의 성장 욕구를 부채질한다.
반면 그늘진 면도 있다. 수출산업화 과정에서 농민들을 희생시키고 젊은 노동력에게 노동3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채 저임금이나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또 ‘오직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앞만 보고 달리는 바람에 3면의 바다와 70%의 산이 가진 장점을 보지 못하고 오염시키거나 훼손시켰다. 더구나 이른바 ‘아이엠에프(IMF) 사태’를 겪으면서 취업자들은 고용 불안과 노동 강도 때문에, 졸업생들은 취업난과 대량 실업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일상화했다. 게다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돼 갈수록 양극화가 심각해진다. 이런 식으로 경제적·사회적 격차가 심해지니 사회가 불안해지고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개는 좋은 면은 살리고 나쁜 면은 줄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우느라고 고생하는 바로 그 과정이 파이의 분배나 원천 측면을 희생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런 것일 게다. 파이를 키우는 과정 자체를, 분배 및 원천을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가는 과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천천히 가더라도 건강하고 올바르게 가는 것이다. 인도 북부의 라다크 마을을 두고 이름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박사가 우리가 본받을 ‘오래된 미래’라고 이름지었듯이, 우리의 전통적 농어촌의 소박한 마을과 그 주민들이 가진 정직하고 정겨운 마음, 그들의 살림살이 원리들을 오늘에 되살려 내기만 한다면, 이런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 나갈 것이라 믿는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 ksd@korea.ac.kr
강수돌/ 고려대 교수 ksd@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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