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 모임’ 선생님들은 해마다 아이들과 함께 새만금 바닷길을 걷습니다. 자연을 느끼며 느리게 걷는 길에서 아이들은 개펄도 보고 친구랑 놀기도 합니다. 선생님들은 현세대가 자연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인지, 사랑하는 제자들이자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과 같이 걸으며 생각해 본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바닷길 걷기에 참여한 날, 나는 날이 어찌나 더운지 아이들이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걷더군요. 개펄 곁 둑방에 갈대와 환삼덩굴이 얽혀 자라 논길로 에둘러 가느라 더 먼길을 걷게 되었을 때에도 불평은커녕 즐거워하며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은 더위나 환삼덩굴, 아픈 다리와 물집 잡힌 발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렇게 느리고 미약한 걸음으로 뭘 할 수 있겠냐는 시선과 만났을 때, 고생에 비해 얻을 게 적다는 시선과 만났을 때 힘들 것 같더군요.
거북이 트랑퀼라는 꿈을 향해 느린 걸음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우화입니다. 거북이 트랑퀼라는 우연히 동물나라 대왕 레오 28세의 결혼식 이야길 듣게 됩니다. ‘몸이 크건 작건, 늙었건 어리건, 뚱뚱하건 가냘프건, 사는 곳이 물이건 땅이건 동물이란 동물은 모두 초대받았다’는 말에 트랑퀼라는 밤새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 잔치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쉼 없이 느릿느릿 앞으로 기어갔지요. 사자굴까지 가는 길에서 트랑퀼라는 바느질쟁이 거미와 미끈미끈 달팽이, 몽당다리 도마뱀, 지혜로운 까마귀를 만납니다. 모두들 트랑퀼라가 느리다고 비웃거나, 날짜에 맞추어 도착하기 어려우니 포기하라고 충고합니다. 트랑퀼라는 길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트랑퀼라는 ‘이미 결심을 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어. 한 발짝씩, 한 발짝씩 나아갈 거야’ 하며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끈기짱' 거북이가 펼치는 모험
아이도 어른도 흠뻑 빠져들어
우화 통해 느림의 미덕 알려줘
〈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미하엘 엔데 글, 만프레트 슐뤼터 그림, 유혜자 옮김/보물창고)는 미하엘 엔데의 작품답게 독특한 상상력과 즐거운 말 표현, 놀라운 반전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빨간 스카프를 한 트랑퀼라의 매력과 트랑퀼라가 벌이는 모험에 기꺼이 빠져들 듯합니다. 게다가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온갖 동물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반복 구성 덕분에 어린 독자들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하며 그림책을 넘길 듯합니다. 나는 트랑퀼라가 한 고비 넘기고 다시 한 발짝, 한 발짝 걷기를 계속할 때마다 글 없이 그림이 펼쳐지는 게 좋았습니다. 트랑퀼라가 기어가면서 바라본 풍경들일 테니까요. 기차역 앞의 트랑퀼라도 재미있습니다. 기차를 탔는지 그냥 기어왔는지 글에는 설명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결혼잔치에서 트랑퀼라가 즐거워하며 뭔가 마시는 그림도 흡족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커다란 잔에 든 것은 맥주일까? 달콤한 망고 주스일까?’ 대부분의 우화가 그렇듯이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처지에서 상상하고 교훈도 얻고 위로 받기도 할 듯합니다. ‘조금 더 편히 지내기 위해서, 너무 힘든 일을 하는 게 바보 같아서, 지금 출발하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험난한 길을 찾아갈 용기가 부족해서’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사람에게도, 느린 발걸음에다 꿈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함께 위로가 되고 교훈이 될 이야깁니다. 〈모모〉의 작가이기도 한 미하엘 엔데는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가’답게 ‘느림의 미덕’을 이야기합니다. 올여름, 개펄 걷기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 주고 싶습니다.
이성실/자연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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