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고무동력기>(김동수·박혜준 지음/보림)는 고무동력기 만들기에 관한 책이다. 물론 틀리지 않다. 이 책을 보면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종이 글라이더 만들기’를 사서 오빠와 함께 만들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하굣길에 고무동력기 재료를 사 와 혼자 낑낑대며 만든다. 날개를 몸통에 연결하는 것이 먼저인지, 날개에 종이를 붙이는 것이 먼저인지, 아이는 혼자서 중얼중얼 동력기를 만든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더운 날엔 휴대용 선풍기가 되고, 미운 애한테는 일부러 동력기를 날려 머리통을 맞히고….’ 드디어 고무동력기 완성! 아이는 조종사가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강에 가서 고무동력기가 끌어주는 오리배를 타고, 놀이동산에 가서 관람차를 탄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이런 내용이라면 즐겁고 신나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슬프다. 그건 이 책이 고무동력기 만들기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딩동딩동 초인종을 누르는 동시에 열쇠를 밀어넣고 집으로 들어간다. 이때, 아이의 머리 위에는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문을 열고 혼자 집에 들어서면 방안은 이상하게 넓고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아이는 곧 혼자 고무동력기를 만들며 쓸쓸함을 달랜다.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혼자 놀지만 문득문득 엄습하는 무서움은 떨쳐 버리기 힘들다. 물귀신이 스멀스멀 오리배 밑에서 튀어 올라와 아이를 방해하고, 코끼리 열차를 타고 놀이동산에도 따라온다. 하지만 걱정없다. 이런 무서움쯤이야 천하무적 고무동력기로 날려 버릴 수 있다.
아이가 혼자 놀다 놀다 지쳐 갈 때, 아이 앞에 커다란 코끼리가 나타난다. 아기 코끼리를 코로 번쩍 들어올리는 엄마 코끼리와 그걸 오도카니 앉아서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프다. 그 옆에 동그마니 놓여 있는 고무동력기도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일어나 중얼거린다. “엄마 빨리 오시면 좋겠다. 할 이야기 진짜 많은데.” 고무동력기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린 아이의 옆모습은 분명 웃는 표정인데 묘하게도 슬프다.
아이들의 세계를 아이다운 그림과 문장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낸 이 책이 나는 자꾸 좋아진다. 아이가 쓴 것처럼 보이는 제목 글씨를 보면, 슬픔이나 외로움을 강요하는 단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하고 단순한 아이의 독백을 읽으면, 아이가 그린 것처럼 맑고 순수한, 그러면서도 오만 가지 감정을 표현해낸 그림을 보면 이 책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뒷표지에 있는 아이의 일기엔 이렇게 씌어 있다. “내일 모레 엄마하고 연습해서 잘해야겠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고무동력기 만들기에 관한 책이다. 아이와 함께 고무동력기를 만들어 신나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니까.
김태희/사계절출판사 아동청소년문학팀장 kth@sakyej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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