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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 교육으로 빈곤을 이기게 하는 법

등록 2011-07-25 15:10

<계층이동의 사다리>
<계층이동의 사다리>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

39. 계층이동의 사다리 - 중산층의 문화 코드를 가르쳐라

<계층이동의 사다리>
루비 페인 지음김우열 옮김/황금사자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어쩌지 못한다고 했다. 엄청난 복지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인다. 서유럽에는 ‘복지 폐인’도 적지 않단다. 국가가 주는 혜택에 기댄 채, 자립하려는 생각을 잃어버린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빈곤층을 건강한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는 아주 어렵다. 이는 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루비 페인은 빈곤층의 ‘문화코드’부터 제대로 짚으라고 충고한다. 가난을 이기려면 먼저 가난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중산층의 삶의 기준은 ‘성취’와 ‘일’이다. 반면, 빈곤층의 삶의 잣대는 ‘인간관계’와 ‘재미’다. 지지리 궁상인 상황, 미래는 어둡고 생활은 신산스럽다. 이럴 때 삶을 기댈 만한 것은 무엇일까? 주변의 사람들밖에 없다. 가난할수록 의리와 정(情)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다. 친한 이웃과 친구는 사회 안전망과도 같다. 하지만 이 때문에 빈곤층은 돈을 잘 모으지 못한다. 가욋돈이 생기면 중산층은 저축을 하거나 투자를 한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여윳돈은 주변 사람들에게로 흩어져 버린다.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친척과 이웃은 언제나 널려 있다. 빈곤층은 이들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하기 어렵다. 그랬다가 내가 어려울 때 외면받으면 어쩌겠는가. 인간관계는 빈곤층의 ‘모든 것’이다. 몇 푼 더 있다고 내 운명이 바뀌지도 않을 터, 여유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쪽이 낫다.

기업과 정부는 중산층의 잣대로 돌아간다. 당연히 가난한 자들의 태도가 마뜩해 보일 리 없다. 그러나 대물림되는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중산층과 다른 잣대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빈곤층은 법에 매달리는 정도가 덜하다. 결혼만 해도 그렇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정식 결혼만큼이나 동거가 흔하다. 그래서 이혼 등이 닥치면 여러 문제가 생기기 일쑤다. 법적 부부가 아니니, 재산을 가르는 일이나 양육 문제 등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어렵다. 하지만 빈곤층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법적으로 분명히 해야 할 만큼 재산이 없다면, 무엇하러 번거롭게 법규를 따져야 하겠는가. 지킬 것도 없는데 잃을 걱정부터 해야 할 까닭은 없다.


서로 나눌 것이 적은 상태에서는 관계도 쉽게 깨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된다. 부모 가운데 한쪽이 사라진 상황에서, 더 어린 동생을 돌볼 식구가 자기밖에 없는 경우도 흔하다. 한창 칭얼거려야 할 나이, 그럼에도 아이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이의 시기를 충분히 거치지 못한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채워지지 못한 욕구는 평생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이렇게 자란 어른은 턱없는 의무감과 자신감을 앞세우기 일쑤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부모 모습이다. 반면,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채워지지 않은 아이의 욕구가 살아나는 탓이다.

그래서 집안은 바람 잘 날 없다. 이들의 마음속에 남자는 가정을 지키는 ‘전사’(戰士)이거나 살가운 연인이어야 한다. 여성은 집안의 ‘구원자’이자 희생하는 사람이다.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전사’와 ‘구원자’는 가정을 박차고 나간다. 그러다가 정에 굶주리고 생활의 필요가 커지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다.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는 살가운 시간은 잠시, 다시 가정은 다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 상황을 벗어날 희망은 좀처럼 엿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빈곤층을 ‘건전한 중산층’으로 거듭나게 할까? 루비 페인은 무엇보다 빈곤층에게 ‘중산층처럼 생각하는 법’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외친다. 빈곤층에게 중산층처럼 사는 법을 일러주는 유일한 곳은 ‘학교’다. 선생님은 빈곤층 아이들에게 닮고 배울 만한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 가난이 대물림되다 보면, 뭐가 ‘정상’인지를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된 가정에 살아본 적도, 성공하는 삶을 꾸리는 이를 만나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이 쓰는 말투와, 잘살고 교양 있는 부류의 언어습관은 많이 다르다. 학교는 말을 하는 법에서부터 생활 습관에 이르기까지, 중산층의 생활 습관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빈곤층에게 교육의 효과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교사는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익보다는 정과 친근함에 끌리는 빈곤층의 특징을 놓쳐서는 안 된다. 루비 페인은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옮겨간 이들에게는 하나같이 ‘따를 만한 좋은 사람’이 있었음을 놓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편견 없이 다가가는 교사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또한, ‘빈곤층에게는 무엇이 부족하다’라는 식의 시선은 옳지 못하다. 이런 눈높이에서 나오는 정책은 빈곤층에 대한 편견을 처음부터 깔고 있다. 게다가 부족한 점을 채우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더 많은 복지정책으로 흐르기 쉽다. 이래서는 도움에 기대려 하는 ‘복지 폐인’들만 낳을 뿐이다.

가난한 이들을 돕고 싶다면 빈곤층에게 ‘쓸 만한 장점이 무엇이 있는지’ 살피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자립을 돕기 위해 그들의 장점에 무엇을 보탤지를 고민해보는 식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 빈곤층에도 중산층과 다른 장점이 있는 법이다.

형편이 안 좋은 곳에 교육여건을 높이기 위한 ‘혁신학교’가 잘 되지 않는 듯싶다. 서울에서는 15곳에 혁신학교를 세우겠다며 학교들의 생각을 물었지만, 4곳밖에 신청이 없었다고 한다. 루비 페인에 따르면,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갈 희망은 학교에 있다. 예산을 많이 들인다고 교육 효과가 꼭 나아지지는 않는다. 혁신학교가 학생들에게 심어주어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먼저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시사브리핑: 서울 혁신학교 2년째 신청 미달

서울시교육청의 ‘혁신학교’ 전환 사업이 2년째 미달됐다. 혁신학교란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창의·인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 목표인 학교다. 학급 인원이 25명 안팎으로 연간 최대 2억원이 지원되며, 교육과정 편성에 자율성도 높다. 교육청은 지난해 말 40곳을 공모하는 것으로 시작해 2014년까지 300곳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신청 학교는 27곳에 그쳤고, 올해도 15곳을 추가 지정하기 위해 지난달까지 공모했지만 신청 학교는 4곳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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