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적이 처진 학생들을 위한 이러닝 시스템인 ‘로스앤젤레스 가상 학교’에 참여할 교사들이 로스앤젤레스 교육청 연수를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교육청 제공
이러닝(e-learning) 공부가 바뀐다 <2부> 해외에서 배운다 ① 로스앤젤레스 가상 학교
“낙제한 학생들에게 지난 1년 동안 온라인 콘텐츠를 제공하고 관리한 결과, 재시험 통과 비율이 20% 가량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육청 교육공학과 샤론 로빈슨 담당관은 ‘라바(LAVA)’의 교육적 효과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라바는 ‘로스앤젤레스 가상 학교’(Los Angeles Virtual Academy)의 줄임말로, 지난해 7월 로스앤젤레스 고등학생 가운데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출범한 이러닝(e-learning) 시스템이다. 현재 고등학교 14곳의 학생 390명이 라바를 통해 영어와 수학 과목 보충학습을 하고 있다. LA교육청 \"재시험 통과율 20% 높아져\" 로스앤젤레스 교육청이 마련한 교사 연수를 마친 각 학교 교사 31명이 매주 한 차례씩 오프라인 모임을 열고 학생들의 학습 상황을 점검하는 등 ‘온라인 담임 교사’로 활동 중이다. 교사들은 수시로 라바에 접속해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해 주고, 같은 문제를 되풀이해 풀게 하면서 학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로빈슨 담당관은 “엘에이 시내 고등학생의 25%가 수학에서 낙제점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내년부터 캘리포니아주 전역에서 치를 고교 졸업 시험에 대비할 수 있게 9~11학년(중학 3년~고교 2년)인 하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것이 라바”라고 설명했다. 라바의 출범은 조지 부시 행정부 교육 정책의 핵심인 이른바 ‘낙제 학생 방지 법안’(No Child Left Behind)과 무관하지 않다. 이 법안은 특정 공립학교 학생들의 읽기와 수학 실력이 적정 학력 수준에 못 미치면 학부모들이 자녀를 다른 공립학교나 사립학교로 전학시킬 수 있게 했고, 학생들을 공부시키지 않아 학생이 줄어들면 학교가 퇴출될 수도 있는 길을 열어놓었다. 스탠포드대 교육대학원 김홍석(35) 교수는 “이 과격한 법안이 보통 수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미국 공교육에 엄청난 긴장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래서 뒤처진 학생들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졌고, 온라인으로 수준별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일선 학교와 교육 당국이 이러닝 도입에 적극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전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 ‘차터 스쿨’(Charter School)의 변신은 그 극단적 보기다. 차터 스쿨이란 교육 당국의 인가를 받고 학부모·교사·지역 인사 등이 지역별 학교교육위원회와 함께 운영하는 일종의 반공립·반사립 학교다. 도시 빈민가에 있던 이 학교는 몇 년 동안 계속 학생들이 빠져나가 40명만 남게 됐다고 한다. 학교 존립 자체가 어렵게 되자 운영자는 ‘온라인 학교’를 떠올렸다. 정부가 주는 학생 1인당 연간 5천달러의 지원금을 종잣돈 삼아 학생들에게 개인용 컴퓨터를 사 줬다. 교사를 해고하고, 대신에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값비싼 온라인 콘텐츠를 사들여 학생들에게 줬다. 학부모에게도 학생 지도 지침서를 나눠줘 집에서 학생들을 관리·감독하도록 했다. 결국 1년 6개월 만에 학생 수가 4천여명으로 늘었고, 건물도 교실도 없는 이 학교는 사립학교 부럽지 않은 튼튼한 재정을 자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러닝과 홈스쿨링이 결합된 형태라 볼 수 있는 이 학교의 성공 비결은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수준과 속도로 학습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 교육의 강점인 수준별 맞춤 학습을 극대화한 사례라는 것이다. 상위권 학생 \'맞춤학습\'도 가능케 로스앤젤레스 교육청이 기대하는 효과 역시 라바가 보통 수준의 학생들에만 맞춘 공교육의 한계를 보완해 줄 것이라는 점이다. 낙제한 학생들을 위한 학습 콘텐츠 말고,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12개 특별 과목을 추가로 운영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고등 수학, 프랑스어, 통계학, 심리학 등 고교 과정에 없는 대학 과목을 라바를 통해 이수하면, 대학에 입학한 뒤 관련 과목 학점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대학에 가려는 상위권 학생들은 특별히 관리하는 교사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라바에 접속해 ‘예비 대학’을 경험한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교육청 테미스토클레스 스파랜기스 기술 총책임자는 “학생들이 스스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준의 학습 콘텐츠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며 “질 높은 콘텐츠는 값이 비싸므로 주 정부의 이러닝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입법 청원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무한경쟁으로 탈락자는 퇴출되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미국 교육 현실에서, 이러닝 교육이 유력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로스앤젤레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샌프란시스코 어번 고교 가보니
누구나 노트북…공부대화 꽃피워 샌프란시스코 어번 고등학교는 3년 전 ‘퍼스트 클래스’라는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구축했다. 교실 안팎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토론하며 학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학생들은 입학하면 개인 휴대용 노트북 컴퓨터를 받고, 수업 때는 물론 집에서도 이를 활용해 공부한다. 퍼스트 클래스에 특정 과목의 학습 콘텐츠는 없다. 과목별로 수업 일정과 과제를 알 수 있는 자료실, 교사와 학생이 참여하는 게시판, 과제를 내거나 질의·응답을 하는 데 쓰는 전자우편 등이 주요 기능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학생들은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졸업을 앞둔 학생 케이트는 교사가 준 과제를 전자우편으로 내고 자세한 평가를 덧붙인 답장을 받는 게 좋았다고 했다. “역사나 작문 같은 과목의 에세이를 메일로 제출하면 글의 내용이나 흐름은 물론 문장까지 손질해 주는 선생님들 덕택에 대학 진학에 유리했다”는 것이다. 9학년(우리나라의 중3) 학생인 재키는 “원할 때 언제든지 질문을 하면, 다음 수업 시간 전까지 선생님이 꼭 답변을 해 주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졸업반 학생 안토니오는 “교사와 학생의 질의·응답이 온라인 게시판 토론으로 이어지는 등 대화와 토론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덧붙였다. 시스템을 총괄하는 하워드 레빈 교사는 “300명이 안 되는 적은 학생 수에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사립학교여서 시도해 볼 수 있었다”라며 “그러나 온라인이 오프라인 교육에서는 미처 소화할 수 없는 교사와 학생 간의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소통의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우리의 믿음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이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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