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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머리를 쥐어짜 쓴 한자어 오히려 독 된다

등록 2011-08-01 09:44

뜻이 떠오르지 않는 단어, 순우리말로 바꿔야
한자 섞인 억지스런 조어, 사전에서 확인해야
“청소년기는 자기 현시욕이 강한 때다.” <아하! 한겨레> 누리집(ahahan.co.kr)에 올라온 글이다. ‘자기 현시욕’이라는 한자어의 뜻을 모른다면 내용을 알 수 없다. 이처럼 어려운 한자어를 포함한 글은 무겁고 딱딱해져 글의 흐름을 깬다. ‘어려운 한자어’란 ‘사람들이 즐겨 쓰지 않아 서로 통하지 않는 글자’를 말한다.

그런데 한자어는 우리말의 약 70%를 차지한다. 한자어를 빼고 정상적인 언어생활을 영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앞 문장에도 ‘한자어’, ‘정상’, ‘언어’, ‘생활’, ‘영위’, ‘불가능’이라는 한자어가 쓰였다. 이 말들을 빼면 어미와 조사 정도만 남는다. 물론 토박이말을 최대한 써서 ‘한자어를 빼고 제대로 된 말글살이를 꾸려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로 바꿔 쓸 수는 있지만 습관적으로 쓰던 한자어를 매번 토박이말로 바꿔야 해서 번거롭다.

‘현시욕’은 초·중등 수준에선 잘 쓰지 않는 어휘로 ‘나타날 현’(顯), ‘보일 시’(示), ‘하고자 할 욕’(欲)을 써 ‘드러내 보이려는 욕구’를 뜻한다. 이 뜻을 살려 ‘청소년기는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려는 욕구가 강한 때다’로 바꾸면 뜻이 잘 통한다.

실제로 청소년기는 자신이 새로이 알아낸 것을 드러내 알린 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한 때다. 그래서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들은 성인들도 잘 쓰지 않는 한자어를 곧잘 쓰곤 한다. 되풀이되는 표현을 피하기 위해서는 토박이말과 함께 한자어로 된 다양한 표현을 반드시 알아둬야 하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는 글의 흐름을 깨고, 독자를 답답하게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하! 한겨레> 누리집에 올라온 글을 보자.

예시글 1

(가) 2012년도 최저임금 협상을 하고 있는 노사 대표는 확고부동한 자세로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했다.

(나) 소위 소셜테이너로 불리는 사회참여연예인들은 자신의 발언에 따르는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다) 등록금을 낮추면 대학 생활을 음미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라) ‘왕따’는 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구별하려는 일종의 폭력 문화의 한 양태다.

영어 단어 ‘apple’을 읽는 순간 ‘사과’의 모양이 바로 떠오른다. 우리말로 따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말이지만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들어간 글은 뜻이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땐 낱글자의 뜻을 확인한 뒤 우리말로 풀어 쓰면 자연스럽다. 예문 (가)의 ‘확고부동’은 ‘굳을 확’(確), ‘굳을 고’(固), ‘아닐 불’(不), ‘움직일 동’(動)을 써서 ‘움직이지 않고 굳은’을 뜻한다. 우리말로 부드럽게 바꾸면 ‘흔들림 없는’ 정도가 알맞다. ‘고수’도 ‘굳을 고’(固), ‘지킬 수’(守)를 쓰는데, ‘굳게 지키다’로 바꾸면 부드럽다. 예문 (나)의 ‘소위’는 ‘이른바’란 뜻이다. ‘감수’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란 뜻인데, 글의 흐름으로 봤을 때 ‘받아들여야만 한다’로 바꾸면 매끄럽다. ‘소셜테이너로 불리는 사회참여연예인들’은 ‘소셜테이너(사회참여연예인)’로, ‘자신의 발언’은 ‘스스로 한 말’로 바꿔야 간결하고 부드럽다. 예문 (다)의 ‘음미’는 ‘맛보다’로 대체하고, ‘명약관화’는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하다’란 뜻을 살려 문맥에 맞게 바꿔 쓰면 된다.

예문 (라)의 ‘양태’는 ‘모양 양’(樣), ‘모양 태’(態)를 쓰므로 그냥 ‘모양’ 또는 ‘모습’이라고만 써도 된다(라-1). 한자어는 ‘의미가 겹치는 현상’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단어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느낌에 기대 쓰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문 (라)의 ‘개성’은 ‘한 개체의 고유한 특성’을 뜻하는데, 이미 앞에 ‘개인의 독특한’이란 말이 나와 의미가 중복됐다. 또 ‘일종의 폭력 문화의 한 양태’에선 ‘일종’과 ‘한’이 겹친다(라-2). 이처럼 한자어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쓰면 군더더기만 많아진다.

(가-1) 2012년도 최저임금 협상을 하고 있는 노사 대표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자신들의 주장을 굳게 지켰다.

(나-1) 이른바 소셜테이너(사회참여연예인)는 스스로 한 말에 따르는 반발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1) 등록금을 낮추면 대학 생활을 맛볼 기회가 많아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라-1) ‘왕따’는 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구별하려는 일종의 폭력 문화의 한 모습이다.

(라-2) ‘왕따’는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구별하려는 폭력 문화의 모습 가운데 하나다.

쉽고 빠르게 읽혀야 좋은 글이다. 그러기 위해선 쉬운 단어, 즉 평소 대화할 때 쓰는 단어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애써 머리를 쥐어짜 어려운 한자어를 찾아 썼지만, 읽는 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헛수고다. 습관적으로 쓰던 한자어도 되도록 우리말로 풀어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시글 2

(마) 구는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절이나 문장의 일부분을 이루는 토막이다.

(바)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역사는 1899년 9월18일 만들어진 노량진역과 제물포역이다.

가끔 우리말로 풀어 쓰기 어려운 한자어들이 있다. 예문 (마)의 구와 절처럼 따로 풀어 쓰거나 바꿔 쓰기 어려운 경우엔 한자 ‘글귀 구’(句)와 ‘마디 절’(節)을 나란히 써서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또 예문 (바)처럼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한자어 ‘역사’가 한 문장 안에 같이 나오면 한자를 써 구별하기도 한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은 지 가장 오래된 역 건물’로 바꿔 써도 뜻이 통한다. 그러나 예문 (마-2)처럼 문장에 나오는 모든 한자어에 한자를 나란히 썼다간 글이 지저분해져 읽기 어려워진다. 글은 배려다. 읽는 이의 처지에서 생각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만 한자를 써라.

(마-1) 구(句)는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절(節)이나 문장의 일부분을 이루는 토막이다.

(마-2) 구(句)는 둘 이상(以上)의 단어(單語)가 모여 절(節)이나 문장(文章)의 일부분(一部分)을 이루는 토막이다.

(바-1) 우리나라에서 역사(歷史)가 가장 오래된 역사(驛舍)는 1899년 9월18일 만들어진 노량진역과 제물포역이다.

(바-2) 우리나라에서 지은 지 가장 오래된 역 건물은 1899년 9월18일 만들어진 노량진역과 제물포역이다.

억지로 한자를 우리말과 섞어 만든 말과 마치 이미 있었던 것처럼 쓰는 사자성어도 주의해야 한다. 아직 한자의 이해 수준이 낮은 초·중등 학생들이 신문 제목이나 광고에 많이 나오는 억지스러운 한자 조어를 제대로 된 어휘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므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시글 3

(사) 낙지안동: 낙지처럼 뻘에 숨어 눈만 굴린다.

(아) 카메라 3D게임 TV까지 多된다.

(자) 서울시의 대표적 여성정책은 ‘여행(女幸) 프로젝트’(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다.

예문 (사)는 ‘낙지’와 ‘눈 안’(眼), ‘움직일 동’(動)을 붙여 낙지가 뻘에서 사는 모습을 비유해 만든 억지 사자성어다. ‘어떤 일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모습’을 풍자하는 재치있는 말이나, 자칫 이미 쓰고 있는 사자성어로 잘못 받아들일 수 있어 위험하다. 예문 (아)는 ‘다 된다’의 ‘다’가 순우리말인데 ‘많을 다’(多)란 한자어로 바꿔 ‘많이’란 뜻을 강조했다. 역시 광고 카피나 제목으로는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다’가 마치 한자에서 온 것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 예문 (자)의 ‘여행’은 ‘계집 녀’(女)와 ‘행복 행’(幸)을 붙여 ‘여성이 행복한’이란 뜻을 담아 프로젝트의 취지를 잘 살렸다. 하지만 자칫 ‘다른 곳으로 떠나다’란 뜻의 ‘여행’(旅行)의 본디 뜻과 한자를 오해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실제 초·중등 학생이 스스로 억지 한자 조어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잘못된 억지 조어를 받아 들여 쓰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므로, 평소 의심이 가는 단어는 반드시 사전에서 확인해야 한다.

연습 문제

다음 문장에서 어렵다고 생각하는 한자어를 찾아 우리말로 풀어 써 보세요.

1. 정부는 매년 물가 인상률을 최대한 억제하는 정책기조를 견지해 왔다.

2. 전쟁 이후 허드렛일로 벌어오는 금액으로는 빈한한 집안조차 건사하기 힘들었다.

3. 명시적으로 정부에서 민생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해야 한다고 천명한 적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뇌리에 공공요금은 싸야 한다고 인식한다.

※예시답안은 <아하! 한겨레> 누리집(ahahan.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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