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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읽기·생각하기·쓰기는 한 몸

등록 2011-08-15 13:44

김창석 기자의 서술형·논술형 대비법
짧은 기간 완성은 불가능…평생 할 공부로 인식해야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글쓰기는 더 중요해졌다. 이메일에, 홈페이지에, 블로그에, 스마트폰에 누구나 일상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글쓰기를 강조하는 흐름은 개인 차원을 넘어섰다. 대학에서는 신입생을 위한 글쓰기 센터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대세이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글쓰기를 잘해야 자기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대중과도 소통하는 진정한 스타가 된다.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발언하는 것은, 이제 전문가들에게 필수능력이다. 글쓰기가 개인의 문화자산이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노동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노동인 글쓰기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화려한 빛을 내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적 성공의 잣대 가운데 하나로 글쓰기 지수(WQ·Writing Quotient)가 등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학교 시험에서 서술형·논술형 문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도 사회의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객관식’으로 불리는 선다형 문제로는 지식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인식이 교육계 전반과 전체 사회에 퍼진 결과다.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넘치는 정보와 지식을 무작정 모두 흡수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대신 의미있는 정보와 지식을 골라 재구성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과 ‘습득한 지식을 재구조화하는 능력(지식의 수정·통합·재구성 능력)’이 필요하다.

글쓰기가 창의력이나 문제해결력과 직접 연결되는 이유는 글쓰기의 전제조건이 ‘읽기’와 ‘생각하기’이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한 사고력이 없이는 인상적인 글을 쓰기 어렵다. 글은 손가락 끝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읽기와 생각하기가 뇌 속에서 변증법적인 화학작용을 일으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가 글쓰기인 셈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읽기는 단순히 문자를 소리 내어서 읽는, 낮은 단계의 독서가 아니라 읽은 내용을 비판적으로 곱씹어볼 줄 아는, 상당한 수준의 독서를 뜻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양질전화의 과정을 무시하고 억지스럽게 생산물을 만들어내려는 것은 글쓰기를 정신노동의 과정이 아닌 물질적 상품생산의 과정으로 잘못 이해한 결과다. 요컨대 글쓰기를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서술형·논술형 시험의 전면 확대는 글쓰기의 중요성과 긍정적 효과를 온 사회에 퍼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순 암기 위주의 학습이 주는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가 대학 입시를 향해 치닫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이런 바람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글쓰기가 또 하나의 사교육 대상이 되는 것은, 우리 교육을 또 하나의 황무지로 이끄는 일이다. 글쓰기가 ‘반복적으로 익혀야 할 학습기술’로만 인식된다면 글쓰기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본래적 의미를 제대로 살리려면 글쓰기 공부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신시험 대비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아이들이 평생 활용할 지적 능력을 기르는 공부로 삼아야 한다. 벼락치기 공부로 글쓰기에 접근하면 안 된다. 읽기부터 차분히 하는 게 순서에 맞다. 내용을 이해하는 단계로 시작해 내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불어넣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고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흘러넘친다. 필연적으로 그것을 표현하게도 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처음부터 무작정 긴 글을 쓰도록 하는 것은 무리다. 매일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습관도 들지 않았는데 일기를 쓰게 하고 그것을 검사·평가하려는 것은 인권 침해다.

서술형·논술형 시험은 하나의 단순한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니다. 읽기·생각하기·글쓰기를 통해 자유로운 사고, 입체적인 사고, 자기 식대로의 사고를 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서술형·논술형 대비법이다.

kimcs@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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