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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종교의 정치세력화는 바람직한가

등록 2011-09-19 16:24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 난이도 고2~고3
45.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종교의 역할은?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데이브 로빈슨 지음박미선 옮김/이제이북스

철학자 니체는 기독교가 마뜩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인류 역사의 영원한 오점(汚點)’이다. 게다가 기독교는 ‘노예의 종교’다. 기독교 역사에서 초기 신자(信者)들을 떠올려 보라. 대부분은 억눌리고 빼앗긴 자들이었다. 때문에, ‘노예들의 도덕’은 기독교의 고갱이가 되었다. 그들은 참고 굽실거리며 감정을 숨겨야 했다. 이는 ‘인내’, ‘순종’, ‘마음의 평온’ 등의 가치로 굳어졌다. 하나같이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들이다.

기독교가 널리 퍼질수록, 사람들은 노예처럼 바뀌어갔다. 주인은 당당하며 감정에 솔직하다. 참기보다 내세우며, 창의적인 생각을 자신 있게 내놓는다. 하지만 ‘노예도덕’이 자리잡은 세상에서 주인의 모습은 눈꼴사나울 뿐이다. 주인처럼 굴었다간, ‘건방지다’, ‘경우 없다’ 등의 비난이 쏟아진다. 이렇듯 인류는 비루해지고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기독교를 따라야 하는가?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외친 이유다.

게다가 기독교는 세상을 허무 속으로 빠뜨렸다. 니체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기독교에 따르면, 우리 사는 세상은 진짜 세계가 아니다. 진정한 삶은 피안(彼岸)에서 열릴 터다. 물론, 과학은 기독교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 신앙이 아닌 논리로 세상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니체가 볼 때, 과학도 기독교와 별다르지 않다. 과학 또한 우리 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학법칙을 써서 세상의 진짜 모습을 밝히려 한다. 세상은 법칙에 따라 질서 있게 돌아간다고 믿는 탓이다.

하지만 과학이 세계를 분명하게 설명하면 뭐하겠는가? 과학의 시대, 도덕과 윤리는 뿌리를 잃어버렸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를 꼼꼼히 따져줄 뿐, ‘의미’를 주지는 못한다. 이렇게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가 더 ‘세속화’된 모습인 과학은 세상을 허무주의로 내몬다.

헛헛해진 삶을 다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니체는 ‘영원회귀’와 ‘초인’(超人)을 앞세운다. 영원회귀란 역사가 끝없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오늘 친구에게 창피를 당했는가? 이는 언젠가 똑같이 반복될 테다. 그것도 영원히 말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일은 없다.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여기까지만 들으면, 아연한 기분이 들지 모르겠다. 모든 일이 다시 거듭되는데 굳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니체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친구에게 창피를 당했다고? 이번에 분한 마음을 삭이며 비굴하게 웃었다 해보라. 앞으로 나는 상황이 다시 닥칠 때마다 영원토록 비굴하게 웃어야 할 테다.

친구에게 당당하게 맞서며 내 주장을 폈다면? 앞으로도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감 있게 가슴을 펴고 외칠 테다. 그것도 ‘영원히’ 말이다. 니체의 주장에는 신도, 도덕도 없다. 오롯이 ‘나의 행동’만으로 새로운 삶의 잣대를 세운 셈이다.

이렇듯 당차게 살다 보면, 인간은 ‘초인’으로 거듭난다. 초인은 ‘노예도덕’에 끌려다니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강하고 밝고 창의적이다. 남의 주장에 굽실거리기보다, 예술과 창의력으로 자기 삶을 끌고 간다. 인류의 진정한 모습은 초인 같아야 한다.

데이브 로빈슨은 이런 니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준으로 가늠한다. 모더니즘이란 ‘근대’(近代)를 말한다. ‘포스트’(post)란 넘어선다는 뜻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우리말로 ‘탈(脫)근대’, 혹은 ‘후기 근대’라고 불린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려면 모더니즘부터 제대로 짚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이겨내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나라의 모토(motto)가 ‘조국 근대화’였던 적이 있었다. 때문에 우리가 모더니즘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근대화란 합리적인 생각이 뿌리내리는 것을 말한다. 과학에 기대어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근대’의 특징이다. 근대화란 ‘발전’을 뜻하기도 한다. 근대 국가는 성장 목표를 세워 계획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간다. 이처럼 ‘이성’, ‘과학’, ‘발전’은 근대, 즉 모더니즘의 본질을 이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모든 것을 허물어뜨린다. 합리가 감정보다 앞서야 하는 까닭이 있을까? 지금의 문화는 솔직한 감정 표현을 ‘쿨’하게 여긴다. 과학은 또 어떤가? 시내를 걸어보라. 각을 잡고 선 건물보다, 자유롭게 개성을 뽐내는 건물이 훨씬 많이 들어선다. 과학과 합리성보다 미학과 아름다움을 앞세우는 분위기이다. 게다가 ‘웰빙’(Well-Being)은 ‘발전’을 대신하고 있다. 역사가 진보를 향해 나아가니, 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설득은 이제 씨알도 안 먹힌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분위기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 해도 좋겠다.

니체는 합리성보다 뜨거운 감성을, 과학보다 느낌을, 발전보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앞세웠다. 이쯤 되면 그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보아도 좋겠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제 많은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이성’과 ‘과학’, ‘발전’이 사라진 자리,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고 있는가? 우리 시대는 풍요롭다. 그러나 가슴은 헛헛하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뾰족한 답을 못 준다.

이 점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새롭게 다가온다. 종교는 삶을 의미로 가득 채운다. 개신교 내의 몇몇 목사님들이 ‘기독당 창당’을 추진한다고 한다. 종교는 사회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한다. 권력자들이 힘으로 내리누를 때, 종교는 신성함과 관용을 앞세워 억압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보듬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가 지배 권력이 될 때, 종교는 사회를 짓누르는 ‘도그마’(dogma)로 바뀐다. 종교 특유의 확신은 자신의 신념 외에 모든 목소리를 잦아들게 하는 탓이다.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정신이 왜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을 받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

>>시사브리핑: ‘기독당 창당’ 찬반 논쟁 가열 한국 교회 언론회는 지난 14일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기독자유민주당 창당을 주도하는 전광훈 목사 등과 이에 반대하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진영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흡연율, 이혼율 같은 사회 붕괴를 막으려면 기독교 이념에 따른 정치 활동이 필요하다”(찬성)는 주장과, “기독교의 정치 참여가 종교간 평화를 깰 수 있다”(반대)는 주장이 맞섰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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