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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공부가 게임보다 재밌을 수는 없을까

등록 2011-10-03 15:32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 난이도 수준 고2~고3
47.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 즐거운 공부 문화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대니얼 T. 윌링햄 지음문희경 옮김/부키

만화 <포켓 몬스터>에는 수백 마리의 괴물이 나온다. 아이들은 괴물 이름을 줄줄 꿴다. 그런데도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은 금방 까먹는다. 거듭 반복하고 강조해도 별 소용이 없다. “네가 만화 볼 때처럼 공부해봐라. 금방 1등 하지.” 엄마들이 늘 하는 한탄이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 보자. 책상 앞에 앉으라고 아이들을 다그치기에 앞서, 공부를 만화처럼 재밌게 만들 수는 없을까? 이 물음에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T. 윌링햄은 솔깃한 답을 들려준다. “충분히 가능하다!”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먼저 ‘난이도’에 신경 써야 한다. 우리 두뇌는 끊임없이 간을 본다. 주어진 과제를 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할지를 가늠한다는 뜻이다. 턱없이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할 때, 두뇌는 금방 흥미를 잃어버린다. 할 것이 너무 많을 때는 되레 아무것도 안 하게 되지 않던가.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너무 쉬운 과제도 즐거움을 못 준다. 머리를 안 써도 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해보라. 이는 고문에 가까울 테다. 우리 두뇌는 적절히 어려운 과제에 재미를 느낀다. 공부가 지겹다면 내용이 내 수준에 맞는지부터 따져볼 일이다.

두뇌는 호기심이 많다. 그러나 왕성한 호기심은 공부에 방해가 되곤 한다. 예컨대, 선생님이 휴대전화 요금 계산을 예로 들어 수학 공식을 설명했다고 하자. 이럴 때 수업 집중력은 되레 흐트러지기 쉽다. 공식보다 휴대전화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윌링햄은 학생들의 흥밋거리로 관심을 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학습의 재미는 학습 자체에서 나와야 한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고개가 갸웃해질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공부가 싫은데, 공부 안에서 재미를 찾으라고? 하지만 윌링햄은 공부 자체에서 흥미를 끌어내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단 여러 분야의 지식부터 풍부하게 쌓으라고 권한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경기를 보면 지루하다. 그러나 이대호 같은 홈런 타자를 알고 있을 때는 어떨까?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을 때 관심은 훨씬 더 커진다.

‘초등학교 4학년 슬럼프'(Fourth-Grade Slump)도 지식 부족 탓이 크다. 초등학교 4학년 슬럼프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4학년 때부터 성적이 뚝 떨어지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3학년 때까지는 기본적인 읽기와 셈하기 기술을 배우다가, 4학년부터는 여러 분야의 지식을 배우기 시작한다. 형편이 좋은 아이들은 배경지식도 풍부하다. 학교 밖에서도 교육이 끊이지 않을뿐더러, 여행 등으로 많은 경험을 쌓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학습 흥미도 높아진다. 반면, 배움의 기회가 적은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 관심을 잃기 쉽다. 교실에서 모든 내용을 처음 듣는 상황, 수업은 버거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풍부하게 아는 학생은 지식을 쌓기가 쉽다. 그래서 더 많은 공부를 한다. 반면, 아는 게 적은 아이는 새로운 앎을 쌓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부를 더욱 안 한다. 학습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일어나는 셈이다. 그래서 윌링햄은 신문이나 잡지를 꾸준히 보라고 권한다. 신문과 잡지에는 학습에 관심을 일으킬 만한 배경지식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암기도 무척 중요하다. 자전거를 배울 때는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나 자전거 타기가 몸에 익으면, 딴생각을 하면서도 자전거를 곧잘 탄다. 학습에서도 마찬가지다. ‘5×8=40’ 등의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채 수학 문제를 풀면 어떨까? 당연히 공부가 버겁겠다. 계산할 때마다 5를 8번씩 더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탓이다. 학습에 기본이 되는 내용은 두뇌에 완전히 붙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에 기본이 되는 지식을 거듭해서 외우고 또 외워야 한다.

체스의 달인들도 ‘암기의 힘’으로 승리를 이끈다. 그들은 숱하게 두었던 체스판들은 외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판세를 전에 비슷했던 상황과 견주어 생각하며 말을 움직인다. 암기가 생각할 여유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놀이도 기본 규칙을 배우는 단계에서는 즐겁지 않다. 규칙이 완전히 몸에 익은 뒤에야 게임도 재밌어진다.

그럼에도 암기는 어렵고 힘들다. 선생님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갖도록 계속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라는 소리다. 하지만 어설픈 칭찬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윌링햄은 지능 말고 노력을 칭찬하라고 힘주어 말한다.

만약 지능을 칭찬하면 어떻게 될까? “넌 참 머리가 좋구나”라는 소리를 줄곧 들은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능이 뛰어나다는 믿음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줄곧 쉬운 과제만 하려 한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식의 태도를 보인다. 반대로, 노력을 칭찬받는 아이는 실패를 개의치 않는다. 거듭되는 좌절에도 계속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발전한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읽기 부문 1위를 차지했나 보다. 25~34살 청년들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육 이수율도 98%와 63%로,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교육열은 성인이 되면 뚝 떨어진다. 평생학습 참여율은 32%로, 오이시디 평균인 44%보다 훨씬 떨어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우리에게 공부는 성공과 발전을 뜻하지는 않는다. 치열한 입시경쟁, 대다수는 공부를 통해 실패와 좌절을 배운다. 대한민국 국민의 상당수는 공부에 대한 아픈 기억을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학업성취도는 이제 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제는 평생 동안 학습하고 싶은 욕구를 틔워줄 ‘즐거운 공부 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시사브리핑: 우리나라, 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읽기 부문 1위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월13일 2011년 오이시디 교육지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PISA 읽기 점수에서 평균 539점으로,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반면, 성인(25~64살)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32%로, 오이시디 평균인 44%보다 많이 낮았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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