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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친일파 청산’ 문구까지 삭제…역사교육 거꾸로 간다

등록 2011-11-08 20:54수정 2011-12-27 21:27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변경
8일 발표된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독재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은 물론 친일파 청산에 대해 기술한 부분도 사라졌다. 2008년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교과서포럼이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같은 ‘보수 교과서’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발표된 집필기준안을 보면, ‘2007 개정 교육과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2007 집필기준)에 있던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하였음을 서술한다”는 문구가 삭제됐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 중학생들이 사용할 역사교과서에서는 당장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같은 친일파 청산 시도와 관련한 역사가 빠질 수 있다. 집필기준 개발에 참여한 한국현대사학회 이명희 교과서위원장(공주대 교수)은 “친일파 청산 관련 내용은 교과서에서 다뤄도 되고 다루지 않아도 된다”며 “교과서에서까지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현대사학회는 식민지 근대화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계속 요구했었는데, 친일파와 그 청산 문제를 정확히 하지 않으면 식민지 근대화를 미화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 기술 강행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 밀어붙여

교육과학기술부는 검정교과서 출판사가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로 기술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국장은 “헌법 정신이나 판례를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한다”며 “교과서를 집필할 때는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7일 국사편찬위원회가 공청회에서 공개한 시안에 포함됐던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 2개 가운데 1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꾼 것이 큰 의미가 없게 된 셈이다. 역사교육과정 개발 공동연구위원장인 오수창 서울대 교수(국사학과)는 “한국사 연구자들과 대다수의 학회가 요구했던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배제한 채 한국현대사학회 홀로 주장했던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유지했다”며 “민주주의로 표현하면 되는 개념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병기하는 바람에 집필자들에게 큰 혼란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시안에서는 사라졌던 ‘독재’ 표현이 확정안에 포함됐으나, 이 역시 ‘장기집권 등에 따른 독재화’라는 제한적 표현으로 독재에 대한 개념을 한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자 가운데 한 명인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독재는 언론의 자유와 통일운동을 탄압하거나 유신헌법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부분도 있어 장기집권의 문제만이 아니다”라며 “독재정권에 대한 서술이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교육 약화하나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내용 모두 없애

이날 발표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최종안은 2007 집필기준에 견줘 크게 축약된 형태다. 2007 집필기준은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이라는 대단원 아래 8개 소단원을 배치하고 각 소단원은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구체적인 민주화의 계기는 물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거명했다. 그러나 이번 집필기준에서는 소단원이 4개로 축소됐고, 구체적인 내용도 삭제됐다.

이명희 위원장은 “집필기준 개발 연구진에서 집필기준을 소략화해 교과서 집필진에 재량권을 주자는 데 동의했다”며 “교과서마다 콘셉트가 있을 테니 그에 맞춰 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집필자 가운데 한 명인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과서를 심사·검정할 때 민중사적 관점에 서거나, 뉴라이트가 비판한 금성교과서처럼 쓰면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이 없다”며 “검정을 통과해야 하는 저자들 입장에서는 몸조심을 하고 새로 추가하는 것 없이 집필기준대로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교과서도 자유시장 편향
시장의 한계 빼고 자유방임 장점만 부각

이날 함께 발표된 중·고교 경제교과서 집필기준도 ‘시장 기능의 한계와 정부 개입’ 삭제가 최종 확정된 채,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의 시각을 강화하는 내용을 중심 기조로 삼았다.

경제교과서 집필기준을 보면,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 독과점의 폐해와 소득분배 불평등의 양상 등에 대해 기술했던 ‘시장 기능의 한계와 정부 개입’ 부분이 삭제되고, ‘경제생활과 금융’ 단원이 새로 추가됐다. 또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와 교육이 궁극적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자유무역은 비교우위론에 기초한 직접적인 이득과 함께 폭넓은 소비 기회의 제공, 경쟁의 촉진 등 여러 가지 경제적 혜택을 제공한다 등의 문구로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장점만 서술하도록 기술했다.

자원 배분과 관련해서도, 정부의 균형 조정자 역할은 배제한 채 ‘소비자 잉여와 생산자 잉여의 합은 자유로운 교환이 허용될 때 극대화되고, 이에 따라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고 적었다. 신성호 전국사회교사모임 부회장은 “경제교과서 집필기준을 개발한 곳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한 한국경제교육협회이기 때문에 자유방임 시장경제에 편향된 시각만 기술했다”고 지적했다.

진명선 김민경 이재훈 기자 torani@hani.co.kr

※ 반론보도문

본지는 11월9일치 3면 “‘친일파 청산’ 문구까지 삭제…역사교육 퇴행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친일파 청산 관련 내용은 교과서에서 다뤄도 되고 다루지 않아도 된다. 교과서에서까지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 친일파 청산과 같은 구체적 내용이 없어서 집필기준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 같다. 교육과정에 친일파 청산 내용이 빠진 이유는 교육과정 개발자들이 큰 줄거리만 제시한다는 원칙에 따라 교육과정에 명시하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라고 본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을 뿐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위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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