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 반응
11일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위원장이 뒤늦게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친일파 청산 노력’ 등이 역사 교과서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지만, 교과서 집필자들과 역사학자들은 교과서 집필기준을 수정해 재고시하지 않는 한 교과서 역사 서술의 보수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은 이날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민주화 운동은 물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모두 삭제해 사실상 독재를 미화하고 있는 게 진짜 문제”라며 “단지 ‘5·18 민주화 운동이나 6월 민주항쟁 등을 언급해야 한다’는 위원장의 말만으로는 집필자들이 자유롭게 교과서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 4월 이뤄질 교과서 검정에 적용할 ‘검정 심사 기준’을 마련할 때, 삭제된 부분을 반영해 관련 내용이 충분히 기술되도록 한다는 입장이지만, 집필기준 재고시만큼 강제력이 있는 조처가 아니란 점에서 실효성이 없는 ‘면피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진오 한국교과서집필자협의회 회장(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은 “역사학자들이 반대한 ‘자유민주주의’나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부분은 꼭 써야 한다고 해놓고,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뒤늦게 문제가 되니까 ‘대강화(요약) 원칙’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다”며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국편 위원장이 구두로 할 게 아니라 집필기준에 명시돼야 하기 때문에 재고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자의 한 명인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집필기준에 맥락과 함께 제시되지 않으면 용어만 달랑 쓰고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대강화 원칙에 따라 집필기준이 이전보다 보수화했기 때문에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출판사들은 위원장이 구두로 제시한 것에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집필기준에 포함된 ‘독재화’라는 용어와 관련해 “박정희 정권도 처음부터 독재를 한 게 아니고 민주주의를 하려다가 장기 집권을 통해 점차 독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논란을 낳았다. 주진오 교수는 “박정희의 목표가 민주주의를 하려는 것이었다는 뜻인데, 이는 독재를 미화하려는 역사관”이라며 “교과부와 국편은 독재 미화를 위해 독재 관련 내용을 축소한 것일 뿐, 집필진의 자율을 위해 ‘대강화 원칙’을 적용한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명선 김민경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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