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 세부기준 발표
2013년부터 중학교 수업시간에 사용될 새 역사교과서에는 ‘친일파 청산 노력’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주요 역사적 사건들이 반드시 서술돼야 한다.
교과서 검정심사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는 1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세부 검정기준’을 발표했다.
검정기준을 보면, 심사영역은 100점 만점 기준으로 △교육과정의 준수(배점 25점) △내용의 선정 및 조직(35점)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40점) 세 영역으로 나뉜다. 특히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 영역의 5개 항목 가운데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준수하였는가’ 항목의 세부 심사 요소로 ‘국가적·사회적으로 인정된 주요 역사적 사실(제주 4·3 사건, 친일파 청산 노력, 4·19 혁명,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은 충실히 반영하여야 함’이라고 명시했다.
교과부는 지난 8일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면서, 현행 기준에는 들어 있는 친일파 청산 노력과 독재·민주화 운동 관련 역사적 사실들을 삭제했다. 이에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자, 지난 14일 급하게 검정심사위원회를 꾸렸다. 애초 내년 1월에 발표할 예정이던 세부 검정기준이 사흘 만에 마련된 것이다.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국장은 “사회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급하게 만든 것”이라며 “배점과 상관없이, 이번에 심사 요소에 포함된 역사적 사실들을 역사교과서에 포함하지 않을 경우 검정 심사에서 무조건 탈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정기준을 뜯어보면, ‘주요 역사적 사실은 충실히 반영하여야 함’이라는 세부 심사 요소가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준수하였는가’라는 항목의 하위 항목으로 규정돼 있다. 주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교과서 기술을 전반적으로 보수화한 집필기준에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예컨대 ‘5·16군사정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 이를 국가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기술해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교육과정 각론과 집필기준은 교과부 장관 명의로 고시되거나 발표되지만, 이번 세부 검정기준은 차관급인 국편 위원장 명의로 발표된다.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은 “세부 검정기준보다 상위에 있는 개정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기준에 이미 ‘자유민주주의’ 등 편향적인 용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세부 검정기준을 통해 주요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에 포함시키는 것이 되레 정치 편향적인 내용을 기술하게 하는 검열기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진오 한국교과서집필자협의회 회장(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은 “부실하게만든 개정 교육과정이나 집필기준을 재고시 또는 수정 발표하지 않으면서 세부 검정기준만 고친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훈 진명선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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