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가상의 회합을 그린 <아테네학당>(라파엘로, 1510년). 계단 위 누런 옷을 입은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출처: <라파엘로> (서문당 펴냄)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는 철학서로든 문학서로든 걸작으로 꼽힌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치열한 토론을 보면 논리 전개를 바탕으로 하는 철학서의 전범이고, 등장 인물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긴장감이라는 점에서는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의식을 꼬집어 비트는 ‘문제 덩어리’로 등장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만든다. 그와 대화하면서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는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풍부한 ‘생각 보따리’를 유산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플라톤 저서의 제목은 소수의 예외 말고는 거의 모두 사람의 이름이다. 우리말로 하면, 갑돌이, 복동이 같은 이름이 고전이 된 철학서 제목인 셈이다. 프로타고라스도 플라톤 작품의 제목이 되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소피스트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아테네 명문가의 젊은이들은 새벽부터 줄을 설 정도였다. <프로타고라스>의 부제는 ‘소피스트들’이다. 이 작품에는 그 말고도 히피아스, 프로디코스 같은 당대에 명성을 날리던 자칭 지자(知者)라는 소피스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소피스트’가 숨어 있다(작품을 꼼꼼히 읽어 가면 그가 누구인지 ‘숨은 그림’을 찾을 수 있다). 소피스트의 출현은 서구 역사에서 최초로 대단한 계몽주의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에 바탕을 두고 사회에서 수용된 기존 가치들의 근거를 합리적으로 의심하고자 했으며, 그 성과를 사람들을 일깨우는 교육에 연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은 ‘의혹의 마스터’들이었고, 새로운 교육의 전문가들이었으며, 수사의 기술을 무기로 한 ‘토론의 달인’들이었다. 이 점에서는 소크라테스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당시 전통과 관습에 더는 빠져 있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한 합리주의자였다. 즉 이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믿지 않았으며, 합리성을 도덕에 접목시키고자 했다. 또한 아주 뛰어난 토론가였으며 높은 수준에서 ‘말장난’의 귀재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최고의 소피스트였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극단의 소피스트였다. 그랬기 때문에 소피스트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주의 입장을 취했던 소피스트들의 수사는 지식의 나열과 달변의 화려함을 보여주지만, 객관적 사실에 도달하기 위한 논지 전개의 진지함과 긴장감이 없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객관적 진실의 존재와 이성에 기초한 도덕적 당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지자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어떤 명제가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객관적이고자 노력하는 것 자체이며 그러한 노력이 바로 도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최초의 철학자(애지자)였다. <프로타고라스>의 내용은 ‘덕은 가르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치열한 토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토론의 활기는 마치 독자도 책 속으로 뛰어들어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토론에 임하는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의 태도 차이다. 그것은 인식론적 차이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차이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을 주목할 때, 플라톤의 고전으로 철학하기는 그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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