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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생각없이 쓴 단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등록 2011-11-21 14:03

[정종법 기자의 초·중등 문장강화]
8. 그밖에 주의할 문장 성분 ① ‘것’, ‘들’을 줄여라
불필요한 ‘것, 들’ 솎아내서 뜻 통하게 만들어야
‘것’이 대신한 말, 복원하면 내용 전달 빨라져

“내가 출정 전에 갑옷에 대해서 거시기한 거 까먹지덜 말고 병사들에게 잘 거시기 하라고 단단히 거시기 혀.”

2003년 여름 개봉한, 백제와 신라의 전쟁을 다룬 영화 <황산벌>에 나오는 대사다. ‘거시기’가 한 문장 안에 세 번이나 등장했다. 영화의 흐름을 알면 ‘거시기’가 뜻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문장만 봐선 알기 어렵다.

<황산벌>은 660년에 백제와 신라가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맞붙은 싸움을 그린 영화로, 계백이 5000명의 결사대로 김유신이 이끄는 5만명의 신라군에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한 내용을 다뤘다. 줄거리만 보면 비장하나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웃음 가득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기존에는 역사물에 나오는 인물이 모두 표준어를 썼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백제군은 전라도 사투리, 신라군은 경상도 사투리를 써 화제가 됐다. 개봉 당시 사람들에게 ‘거시기’란 말이 회자됐는데, 이 말은 전라도 사투리로 알려져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다.

사전에는 ‘거시기’를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로 정의한다. 한마디로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말이란 뜻이다.

대화할 땐 서로 잘 알고 있는 정보를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뜻이 모호한 단어를 쓸 수도 있다. 일대일 대화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보는 글을 이런 식으로 쓴다면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을뿐더러 자칫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커 치명적이다. ‘거시기’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풀어 “내가 출정 전에 갑옷을 잘 점검하라고 내린 지시 까먹지 말고, 병사들에게 잘 전달하라고 단단히 일러”라고 바꿔야 뜻이 잘 통한다.

‘거시기’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국어학자들은 발음이 비슷한 의존명사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뤄 짐작한다. 그런데 ‘것’도 ‘거시기’처럼 뜻이 모호해지거나 내용을 한 번에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를 일으키는 단어이므로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다. 다음은 <아하! 한겨레> 누리집(ahahan.co.kr)에 올라온 글이다.

예시글1

(가) 풍자할 소재가 많다는 것은 모순이 많다는 것을 반영한다.

(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하나 둘 모여 큰 불빛을 만드는 것은 국민의 생각을 정부에 전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된 것 같다.

(다) 죽음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라) 영화는 책에서 표현한 ①것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②것도 있지만, 책으로 잘 전달하지 못하는 ③것들을 영화에서 생생한 영상으로 살려 또 다른 재미를 준 ④것도 있다.

예로 든 문장 (가)~(라)에는 ‘것’이 한 문장에 평균 두 번 이상 나온다. 심한 경우에는 예문 (라)처럼 ‘것’이 네 번 이상 나오기도 한다. ‘것’은 웬만한 단어를 대신해 쓸 수 있는 편리한 단어이기 때문에 생각 없이 쓰다 보면 ‘것’투성이 글이 된다. 앞서 말했듯이 ‘것’은 뜻이 모호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쓰면 내용 전달을 방해한다. 가능하면 ‘것’이 대신한 원래 단어를 살려 써야 뜻이 분명해진다. 또 원래 단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낱말을 발굴할 수 있어 개성 있는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문 (가)에서 앞의 ‘것’은 ‘풍자할 소재가 많다’는 사실을, 뒤의 ‘것’은 ‘모순이 많다’는 ‘현실’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각각 ‘사실’과 ‘현실’로 바꿔 쓰면 무난하다. 예문 (나)에선 앞의 ‘것’이 구체적 행동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행동’으로 바꾸고, 뒤의 ‘것’은 빼도 무방하다. 학생들이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와 같이 글꼬리를 늘여 많이 쓰는데, 사족이므로 빼는 편이 낫다. 특히 예문 (나)의 ‘하나가 된 것 같다’는 자신 없어 보이는 추측성 표현이므로 ‘하나다’ 또는 ‘하나가 됐다’로 바꿔야 문장에 힘이 생긴다.

예문 (다)에선 ‘것’을 다른 말로 바꾸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자니 어색하다. ‘것’을 무분별하게 써 ‘죽음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란 명사절을 주어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란 명사절을 보어로 썼기 때문이다. ‘사람’을 주어로 해 문장을 재구성하면 해결된다.

예문 (라)에선 ‘것’이 네 번이나 나오는 바람에 내용이 빨리 와 닿지 않는다. ②는 아무 내용 없이 습관적으로 쓴 표현이기 때문에 없애도 무방하다. ④는 ‘경우’로 대체해도 되지만, ‘주기도 한다’가 좀더 매끄럽다. ①은 ‘세부 묘사’로 바꾸면 적당하고, ③은 ‘장면’으로 바꾸면 구체적이다.

(가-1) 풍자할 소재가 많다는 사실은 모순이 많은 현실을 반영한다.

(나-1)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하나 둘 모여 큰 불빛을 만드는 행동은 국민의 생각을 정부에 전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됐다(또는 ‘하나다’).

(다-1) 사람은 죽음의 기준을 정할 수 없다.

(라-1) 영화는 책에서 표현한 세부 묘사를 잘 드러내지 못하기도 하지만, 책으로 잘 전달하지 못하는 장면을 생생한 영상으로 살려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또는 ‘준 경우도 있다’).

국립국어원(korean.go.kr)이 2000년부터 3년간 문학작품·신문·잡지에 실린 글을 표본삼아 조사한 약 150만 단어 가운데 빈도수가 가장 높은 낱말은 의존명사 ‘것’이었다. ‘것’을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쓰다 보면 한 문장 안에 너무 많이 나와 전달력을 떨어뜨리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것’을 다른 단어로 바꾸기 어렵지만 여러 번 써야 한다면 발음이 다른 ‘건’, ‘게’, ‘걸’ 등으로 바꿔 써도 괜찮다.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도 너무 많이 써 문제다. 단수와 복수를 엄격히 나눠 쓰는 영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말에 복수 표현이 넘친다.

(마) 반값등록금에 찬성하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모였다.

(바)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여러 정치인들은 재산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사) 연예인들은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아) 박원순 시장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다양한 정책들을 검토한 뒤, 시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예문 (마)에선 ‘시민단체’에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아도 꾸밈말 ‘많은’과 서술어 ‘모였다’로 시민단체가 복수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들’을 뺀다. 예문 (바)에서도 ‘여러’라는 꾸밈말로 정치인이 둘 이상이란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으므로 ‘정치인들’의 ‘-들’을 빼야 한다.

예문 (사)엔 ‘대중’이란 한자어 가운데 ‘무리 중’자가 ‘여럿’을 뜻하므로 ‘-들’이 중복됐다. ‘연예인들’과 ‘사람들’의 ‘-들’도 한쪽만 남기거나 둘 다 빼도 무방하나 복수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면 빼는 편이 간결해 읽기 편하다.

예문 (아)에서도 이미 ‘다양한’이란 단어가 있으므로 ‘정책’ 다음에 ‘-들’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또 ‘시민들’ 역시 글의 흐름으로 보아 시장이 단 한 사람의 시민을 설득하기 위해 정책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굳이 복수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뜻이 통한다. 문장은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 문장을 간결하게 쓰기 위해서 글을 쓴 뒤에 빼도 뜻이 통한다고 판단되는 단어는 과감히 솎아내야 한다.

(마-1) 반값등록금에 찬성하는 많은 시민단체가 모였다.

(바-1)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여러 정치인은 재산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사-1)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다.

(아-1) 박원순 시장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다양한 정책을 검토한 뒤,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말은 ‘-들’을 붙이지 않아도 글의 흐름으로 보아 복수란 사실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면 복수로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복수로 표현하기 위해 쓴 접미사가 군더더기로 작용해 글의 간결성을 떨어뜨리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 연습 문제

다음 문장의 ‘것’을 구체적으로 풀어 쓰거나 다른 표현으로 바꿔 보세요.

1.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00억원 규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것은 안 원장이 오랫동안 품었던 결심을 실천에 옮긴 것이기에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2. 건강보험료 체계는 그동안 많은 맹점이 지적돼 왔던 것으로 무엇보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높은 임대·사업소득이 있어도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내온 것이 문제였다.

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괴담’이 떠돈다는 것은 대중들의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다.

■ 교과서 ‘옥에 티’

① 유형, 무형의 문화재는 오랜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지역 문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고등학교 <인간사회와 환경>(ㄱ출판사)

→ 유형, 무형의 문화재는 오랜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형성된 유산으로서 지역 문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② 한국인 영양 섭취 기준은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한 영양소 섭취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개인, 가족, 단체의 식사 섭취 상태의 평가나 식사 계획에 활용된다. 이것은 영양소 결핍을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만성 질환이나 영양소 과다 섭취의 예방까지도 함께 고려하여 기준이 설정되었으며 평균 필요량, 권장 섭취량, 충분 섭취량, 상한 섭취량의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중학교 <기술·가정>(ㄱ출판사)

→ 한국인 영양 섭취 기준은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한 영양소 섭취 방향을 제시한 수치로 개인, 가족, 단체의 식사 섭취 상태의 평가나 식사 계획에 활용된다. 이 기준은 영양소 결핍을 예방하는 구실뿐만 아니라 (…).

③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것은 집이나 학교에서 춥고 어둡게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무심코 낭비하게 되는 에너지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학교 <환경>(ㄱ출판사)

→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말은 집이나 학교에서 춥고 어둡게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심코 낭비하게 되는 에너지가 없도록 하자는 뜻이다.

④ 희소하다는 것은 재화의 수가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와 필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자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화의 수가 적어도 이를 찾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희소한 것이 아니다.

중학교 <사회3>(ㄱ출판사)

→ (…)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구와 필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자란다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재화의 수가 적어도 이를 찾는 사람이 없다면 재화가 희소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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