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위인전>
밥공동체 일군 토정 이지함
제주 구한 여성 상인 김만덕
역병 맞선 양반 의원 이헌길
‘나눔’ 향기의 은은한 대물림
나눔을 실천한 역사 속 인물들을 조명하는 독특한 위인전이 나왔다. <아름다운 위인전>은 자신이 가진 부와 재능, 지식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쓰고자 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김만덕, 이지함, 이헌길, 이승휴, 을파소 등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자주 거론되지 않아 생경하기까지 한 이름들이 ‘나눔’이라는 주제로 한자리에 모였다.
한 해 운수를 점칠 때 흔히 펼쳐 보는 <토정비결>의 지은이 이지함이 밥과 일자리를 나누는 ‘경제 공동체’를 일궈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지함은 현재 서울 마포구 토정동에 있는 자그마한 언덕 위에 토담집 ‘토정’을 짓고 마땅한 밥벌이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줬다. 공짜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소금을 굽고 농사를 짓고 바가지를 만들어 파는 등 다양한 ‘수익 사업’에 참여하면서 임금을 받고 숙식도 보장받았던 것이다.
제주 관아의 기생이었던 김만덕은 “내가 비단옷에 좋은 음식을 먹는 동안 제주 백성들은 힘든 밭일과 물질을 하는데도 겨우 해초로 죽을 쑤어 먹으니 그들을 돕고 싶다”며 기생을 그만두게 해 달라고 ‘단식 투쟁’을 벌인 인물이다. 이후 상인이 된 김만덕은 제주 특산물을 좋은 값에 육지에 팔고, 육지에서 들여온 쌀을 값싸게 팔아 제주 사람들의 살림을 도왔다. 흉년이 들자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주 사람들을 먹이는 ‘구휼’ 활동을 벌인, 배포 크고 마음 따뜻한 조선의 여장부다.
양반의 신분인데도 당시 중인들이 주로 했던 ‘의원’으로 살아가길 자처한 이헌길도 예사롭지 않다. 손써 볼 틈도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각종 역병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가자, 이헌길은 앓는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치료와 예방에 힘썼다. 이헌길에게 목숨을 구한 이 가운데는 일곱 살 때 천연두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다산 정약용도 있다. 정약용은 나중에 그의 저서 <마과회통>에 이헌길을 두고 이렇게 썼다. “명예를 바라지 않고 뜻을 오직 사람을 구하는 데만 두었고, 마진(홍역)에 대한 수많은 책을 두루 읽고 읽혀 어린 생명을 건진 것이 만여 명에 이르렀다. 나 또한 그 분에 의해 ‘사람을 살리는 길’에 대한 가르침을 얻었다.”
아름다운 나눔은 이처럼 대물림된다. 책에 소개된 위인들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 많이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자신의 생을 통해 방증하는 듯하다. ‘위인’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엄숙하고 딱딱한 느낌을 상상하는 것은 금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쓴 글이 편안하고 쉽게 읽힌다. 초등 고학년, 고진숙 지음, 경혜원 그림. -한겨레아이들/9500원.
책 속에서 아름다운 위인으로 꼽힌 이지함, 이승휴, 김만덕의 그림(사진 위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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