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이제는 우유 급식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학교는 얼마 전부터 우유하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버린 우유가 이곳 저곳을 흉하게 얼룩지게 만드니 학교에서 반마다 꼭 다 먹을 수 있도록 지도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우유 하나 제대로 못 먹인다면 교사라 할 수 있겠냐며 질책 아닌 질책도 받았다.
우리 반은 학기 초부터 우유를 먹고 싶은 사람은 먹고, 먹기 싫은 사람은 잘 챙겨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이 먹지 않을 권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유가 체질적으로 안 맞는 아이도 있고, 그날의 상태에 따라 먹을 수 없는 아이들도 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는 그런 일이 생기자, 모든 아이에게 우유를 다 먹일 수 있도록 하고 우유곽도 하나도 남지 않게 정확하게 교사가 세어서 관리하란다. 전체주의의 망령은 우유 급식에까지 이어져 있다.
아이들이 우유를 그렇게 버리게 되는 동기는 여러 가지 있다. 먹기 싫은 데 강제로 먹으라고 하니 버리는 것이고, 먹을 수 없어서 집에 가져가려고 가방에 넣어 두면 이리저리 부딪치다가 그만 터져서 가방 안에 있는 모든 책과 공책이 젖으니 그걸 걱정해서 버릴 수도 있고, 여름철이라 가방에 넣어 가도 학원으로 어디로 돌아다니다가 정작 집에 가면 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 반 수진이도, 성민이도, 우현이도 가방 안에서 우유가 터져 책이 엉망이 되고 고약한 냄새가 나니 그만 책을 버리고는 다시 구하지 않은 채 공부 시간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 우유는 공부에도 지장을 준다.
우유 급식이 처음에는 선의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설령 어느 반의 우유 급식이 잘 이루어져서 우유곽이 상자에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먹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 것일 터이고, 무조건 다 먹으라고 했다면 사물함이나 책상 속, 청소함, 창 밖의 난간 따위에 던져진 우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에 반해 교사가 먹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마다의 개인 상태를 인정해 준다면 아예 안 먹은 우유가 서너 개씩은 꼭 상자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 우유를 다 어찌할까?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 우유 사태를 이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해결책은 우유 급식을 아예 학교에서 하지 않는 일이다. 원하지 않는 우유 급식을 신청하게 만들었으니 그 우유가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생활 지도의 측면으로만 접근해서 교사에게 책임지라는 이런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백 번을 양보한다 하더라도, 먹고 싶은 아이에게만 급식할 수 있도록 지금과 같은 전체 급식 방식은 버려야 한다. 제발 교사가 우유 때문에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도록 도와 주기를. 김권호/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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