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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신명 ‘휘몰이’ 주눅든 가슴도 활짝

등록 2005-07-17 20:08수정 2005-07-17 20:16

서울 광운전자공고 응원 동아리 ‘일렉’ 학생들이 이상종 교사(가운데)와 응원 연습 도중 포즈를 취했다. 신명나게 한바탕 연습을 한 뒤라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서울 광운전자공고 응원 동아리 ‘일렉’ 학생들이 이상종 교사(가운데)와 응원 연습 도중 포즈를 취했다. 신명나게 한바탕 연습을 한 뒤라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공부는 별로지만 대회만 나가면 1등이란다 좀 ‘놀던’ 기환이 이젠 맘 잡았다 대학 특별전형도 보이고 훗날 사장님 꿈도 영근다

마음을 여는 교육-⑤ 광운전자공고 응원동아리 ‘일렉’

허공을 힘차게 가르는 손, 신명 나는 어깻짓에 푸른색 벨벳 소매가 우아하게 출렁거린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노래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거대한 인간 피라미드가 완성된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 광운전자공고의 응원단 ‘일렉’의 피날레는 멋지고 정교한 동작으로 이름이 높다. “그만! 호흡이 안 맞잖아, 응원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5명이 다 똑같이 움직여야 하는 거란 말야.” 3학년 정중필(18) 군이 1학년생들을 나무란다. 인근 중학교의 학부모 모임이 열리기 전날, 일렉은 응원 공연을 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아이들은 벌써 두 시간째 무겁고 두꺼운 응원복을 차려입고 ‘실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응원을 안 했으면 학교 안 다녔을지도 모르죠, 재미없어서.” 정군이 농반진반으로 말문을 열었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진짜 잘했을 걸.” 홍제규(18)군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기환이는 응원하면서 맘 잡았잖아요.” 박기환(18)군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9년 동안 태권도 하다가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만두고 좀 ‘놀았’거든요. 춤 추는 건 생각도 안 하다가 2학년 때, 다른 애들보다 늦게 응원단에 들어왔어요.” 정군, 박군을 비롯해 현재 응원단에서 활동하는 3학년 5명은 올 하반기 대학 입학 특별 전형을 준비하고 있다. 서일대 레크리에이션학과 입학을 목표로 여름 방학에는 관련 연수도 받고, 레크리에이션 2급 지도자 자격증도 딸 계획이다. 2001년 이래 이 학과에 진학한 응원단 출신 선배가 20여명이나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감에 차 있다. “공부는 못하지만요, 우리는 실기가 강하잖아요. 대학 졸업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 열심히 하면서 특별 활동 선생님도 하고 싶고요, 돈 많이 벌면 이벤트 회사 차려서 사장님 할 거예요.” 박군은 평소 궁리해 둔 인생의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일렉은 1993년 이 학교 전자과 이상종(44) 교사가 주축이 돼 탄생했다. 당시 광운전자공고 축구단이 고교 축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전교생이 응원하러 가는 일이 많았는데, 이 교사는 학생들이 경기를 그저 ‘구경’을 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한다. “아이들이 축구 경기의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기가 죽어 있는 아이들의 기를 펄펄 살리고도 싶었고요.” 이 교사는 고등학교 시절 응원단장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응원 동아리를 만들고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했지만, 그때부터 고난의 가시밭길이 시작됐다. “제가 고교 시절 했던 응원은 구호와 함성 위주였는데 요즘은 응원이 하나의 공연이 됐잖아요. 명동 거리며 각 대학이며 응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아이들과 함께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죠.” 힘들게 탄생한 응원단이라 교사와 아이들의 결속력은 대단했지만, 학부모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이가 실업계 고교에 다닌다고 해서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건 아니거든요. 공부에 방해된다고 직접 찾아와 아이를 끌고 가는 분도 있었고, 항의 전화는 수도 없이 받았어요. 아이가 부모와의 불화 끝에 가출하는 소동이 벌어져 찾아 나선 일도 있었습니다.”

10여년의 세월은 응원단의 위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응원단 출신 졸업생들이 프로스포츠팀 응원단에 들어가고, 관련 대학에 진학하면서 응원단을 보는 안팎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일렉은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에서 다섯 차례나 교육감 표창을 받고, 전국청소년 응원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등 ‘고교 응원계’의 굵직한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과천 경마장에서 열린 대규모 응원전에 참여해 15만 관중을 이끄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고 초대해 주는 곳도 많아졌지만, 저는 아이들이 응원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해 주고, 힘을 보태 주는 게 응원이잖아요. 아이들이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어요.” 이 교사의 소박한 바람에 정군이 화답하듯 말했다. “저는 호루라기만 있으면 길 가던 사람들을 모아놓고 응원할 수 있어요. 그런 자신감이 생겼어요.” 스스로를 응원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이를 응원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은 벌써 깨달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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