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고 1학년5반 학생들이 자아 발견과 진로탐색을 다루는 ‘후엠아이’ 시간에 ‘나의 브랜드’라는 주제로 토론과 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끌고가는 부모…끌려가는 아이
‘대한민국 교육 1번지’라는 서울 강남 대치동. 뜻밖에 이 곳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 뒤 다시 재수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강남 지역 교사들의 말을 빌리면 30% 가량은 마음에 드는 학과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신입생들 가운데는 부모와 함께 수강 신청을 하러 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학교에 가고 학원에 다니며 살아 왔는데 대학에서는 혼자 알아서 강의를 정하라니 당황스럽다’고 이유를 댄다. 요즘 많은 청소년들이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란다. 부모의 교육열 덕에 학원, 학습지, 과외 등 ‘교육 혜택’도 누린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물어 보면 대부분 대답하지 못한다. 공부를 왜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공부만 한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는 “자신이 혼자서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하고 그 책임을 져 본 적이 없는 청소년들이 10~20년 뒤에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말한다. 나라의 앞날로까지 문제를 확대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대학 졸업 뒤 사회에 진출할 때 스스로의 앞길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꼬인 걸까? 부모 과잉 보호가 자녀 미래 비틀어 <자녀의 공부를 방해 마라>의 저자 정근화씨는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가진 능력과 관심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독려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개입해서 아이를 특정 방향으로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런 과도한 개입이 아이를 망친다”고 지적했다.
한국리더십센터 이석휘 팀장은 “족집게 학원에 보내 중간고사, 기말고사 대비시키고, 수행평가 점수 잘 받게 하려고 숙제도 대신 해 주는 부모의 행태는 자녀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속빈 강정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눈앞의 ‘효율’만 보고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효과’는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부모의 인식은 서강대 교수의 자녀 부정입학 사건, 서울 유명 사립고의 성적 조작 사건 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녀를 위한다는 명분이 오히려 자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많은 부모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춘천 전인고 조영제 교장은 “자녀를 정말 큰 인물로 만들고 싶다면 스스로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어려서부터 수시로 마련해 주고 거기에서 실패와 성공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며 “인생의 주인인 아이가 부모와 교사에게 떠밀려 사는 삶은 의미 없는 허수아비 인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기 관리 능력 키워가야 부모의 인식을 바꾸는 일 못지 않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한국리더십센터 김경섭 소장은 “자기가 주체가 돼 스스로를 다스리고 관리할 줄 아는 자기 관리 능력 리더십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간 계획표를 짜고, 식습관을 관리하고, 소비 욕구를 조절하는 일 등이 모두 자기 관리 능력에 해당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면 꿈을 키워 가야 한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마음속에 명확한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자기 사명서를 작성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경섭 소장은 “자기 사명서가 있는 사람은 거친 파도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모터 보트처럼 자체 동력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자신의 편견을 고치는 일도 필요하다. 요즘 학생들은 누가 ‘왕따’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무능력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많은 교사들은 전한다. 이런 부정적인 자아 인식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 큰 장애물이 된다. 장점 살리고 편견 고치고 서울 중동고 안광복 교사는 “공부 잘하고 건강하고 사교적이며 말 잘하고 노래 잘하는 등 바라는 모습대로 자신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지금 지니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청소년들이 남 따라하기에 급급한 것은 부족한 점을 메우는 데 신경쓰느라 정작 자신의 장점에는 소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과 본디 잘하던 일에도 소질을 잃어 버리고 장점도 없고 단점도 없는 그저 그런 아이로 학교문을 나서기 일쑤다. 천안대 청소년학과 서에스더(22)양은 “자신의 장점을 찾아 꾸준히 개발하고 그를 통해 ‘나의 브랜드’를 구축한다면 자신이 진정으로 주인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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