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매거진의 회의에는 희·노·애·락이 모두 있었다. ©바이러스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청소년 매거진 ‘밥’을 만나다
밥은 우리의 주식이다. 밥이 우리의 신체를 유지하는 주된 음식이듯, 청소년의 마음을 채우기 위한 ‘밥’이 있다. 1998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에 맞추어 청소년문화지 ‘밥’매거진이 발간되었다. 창간하자마자 ‘밥’매거진은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전국 16개 지역에도 지사를 만들고 60만부의 청소년잡지를 발행하는 최대의 청소년잡지사가 되었다. 7년이 지난 2005년 ‘밥’매거진의 9월호 기획회의 현장을 찾아갔다.
서울청소년수련관에 모인 15명의 서울・인천지역 청소년 리포터들은 각자 준비해온 기사거리를 설명하기에 분주했다. 독자들에게 좋은 ‘밥’맛을 전달하기 위해 청소년 리포터들은 일반 언론과 달리 청소년 언론의 색깔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번 9월호 기획회의에서도 다양한 설문조사와 명소탐방, 학교・동아리소개 등의 기사거리가 기획되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뜻밖에 여학생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여군 의무제’에 대한 의견을 묻기로 하였다. 그리고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묻는 ‘서로가 멋있어・예쁘게 보일 때’ 등 재미있는 앙케이트도 기획했다. 이번호의 추천명소는 문학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린 천상병 시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귀천’카페를 탐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직접 인터뷰를 하는 ‘길거리취재’에서는 다이어트와 K1에 대한 의견을 취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의기양양한 그들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학생’이라는 이름 때문에 생기는 취재의 어려움이었다. 리포터들은 학교・동아리소개를 두고 어떻게 섭외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장원희 리포터(인천 숭덕여고2)가 자신의 경험담 소개로 어려움을 풀어주었다.
“학교나 동아리 섭외는 그 학교 학생부장 선생님을 찾아가면 되요. 학교나 동아리를 소개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반갑게 대해주세요. 어느 학교에 다니냐고 묻기도 하고 그 학교에 아무개 선생님은 잘 계시냐고 안부를 묻기도 해서, 섭외하는 분위기는 좋은 편이예요.”
2시간동안 진행된 기획회의는 회의 내내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최명칠 대표의 발언으로 마무리되었다.
“기획회의에 오시기 전에 좀 더 자신이 준비한 안건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으면 합니다. 자신의 안건에 대한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면, 상대방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회의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띤 회의 속에서 정해진 안건은 10여명의 리포터들이 다시 모여 세부 취재내용을 정한다. 그리고 섭외를 통해 취재날짜를 정해지면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하여 기사를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기사는 6만부의 ‘밥’매거진에 실려 한 달에 한 번 전국의 학교와 서점, 청소년시설로 배달된다.
청소년 스스로 기획하고 만드는 ‘밥’ 매거진
‘밥’매거진은 현재 서울경기, 인천, 강릉, 광주 등 4개 지역에서 만들고 있다. 전국 500여개 고등학교 5000여명의 청소년 리포터가 참여하고 있는 ‘밥’매거진은 각자 학교에서 홍보를 통하여 리포터를 추가모집하고 있다. 인천지역 정진아(인천여상2) 편집장은 중학교 시절부터 언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밥’매거진을 만나고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선후배와 친해지고, ‘밥’매거진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졌다. 이젠 반에서 ‘밥’매거진을 함부로 다루면 친구들을 보면 난리를 치는 정진아 편집장은 “밥은 이제 제 삶의 일부분이예요”라고 말한다.
사랑이 깊을수록 아픔도 깊다고 했던가. 리포터들의 ‘밥’에 대한 사랑은 가끔 어려움으로도 다가왔다.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원희(숭덕여고2) 리포터는 현재 ‘밥’매거진 학교지부의 대표이자, 인천연합의 취재부장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장원희 리포터는 다른 기자들만큼 활발히 활동하지 못해 늘 아쉽다. 이러한 어려움을 아는지 선배 리포터들의 충고가 이어지지만 후배들을 지도하는 어려움까지 겹쳐, 사이에 끼인 2학년의 서러움을 종종 느낀다.
운영비 부족으로 2002년 10월 발행중단
탄탄대로를 달려왔을 법한 ‘밥’매거진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밥’매거진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집중되자 청소년 언론을 꿈꾸던 지역의 수많은 인사들은 너도나도 ‘밥’매거진의 지사가 되기를 원했다. 이렇게 16개의 지사가 만들어졌지만, 본사의 지원이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지사는 리포터운영과 인쇄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1, 2년 사이에 사라졌다. 이후 광고수익까지 줄어들어 ‘밥’매거진은 재정악화로 2002년 10월 발행중단을 선언한다. 그러나 ‘청소년들과의 (발행)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최명칠 현 대표는 주주들을 1년6개월동안 설득해 경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인수받아 2004년 10월 다시 ‘밥’매거진 발행을 시작했다.
“‘밥’매거진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밥’매거진은 회사의 이익이 아닌 청소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청소년을 위한 기금은 많은데 쓸데없는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시설은 완벽히 구비해놓고 제대로 활용도 못하는 청소년 관공기관도 많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광고예산은 어떻습니까. 3대 이동통신사의 최대 사용사가 청소년인데, 청소년을 위해서 돈을 쓰지 않습니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며 받은 월급을 2004년 재창간 이후 모두 ‘밥’매거진에 내고 있다는 최명칠 대표는 ‘밥’을 청소년 전문 포털사이트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선 현재 고등학생에 치중된 리포터를 중학생으로 확대하고, 20살이 넘은 졸업생 리포터가 만드는 자매지를 별도로 발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현재 ‘밥’매거진 홈페이지를 개편하여 청소년전문 포털사이트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되겠다는 ‘밥’을 정작 만드는 사람은 청소년 자신이었다. 청소년이 만드는 청소년을 위한 ‘밥’매거진. ‘밥’을 자신의 삶의 일부라 여기는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마디가 떠올랐다. ‘밥’맛 참 좋다!
최룡훈 기자
©2005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인천지역 정진아 편집장. ©바이러스
인천지역 장원회 취재부장.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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