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초5, 중1 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두 아이 모두 제가 공부 계획을 짜주고 있거든요. 복습, 학습지, 책읽기 그날 할 것들을 시간별로 나눠 하게 합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데, 이 방법을 계속 유지해도 될지 걱정입니다. 큰아이는 가끔 억지로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엄마가 정해준 공부만 하다 보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자기주도학습 열풍이 불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불안감이 일어났다. ‘이렇게 엄마가 계속 도와주면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못 만들지 않을까?’라는 것. 스스로 자기 공부를 챙기지 않는 자녀를 보면서는 자기주도학습이 남의 이야기인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한다. 자기주도학습을 위해 부모는 언제까지 또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자기주도학습이라 해서 모든 것을 혼자 완벽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하는 방법과 생활 속에서의 습관은 부모가 격려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며, 그 과정 중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방법을 익힌다.
학교 다녀와서 숙제를 하도록 살피는 건, 자기 전에 양치질을 했는지, 엄마 없는 동안 밥은 어떻게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은 공부를 할 때 무엇이 중요하고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아이들에게 요약노트를 시켜 보면 문제집의 정리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로 나와 있는 것은 대부분 중요한 거야. 그러니 틀린 문제는 두 번씩 봐야 해”라는 식의 구체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공부와 관련된 것이라 해서 특별히 일찍 손 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밥을 차려 주면서 “언제까지 엄마가 밥 차려 주니?”라고 잔소리하지 않듯, 아이의 공부도 가능한 한 눈여겨 살펴주는 것이 좋다. 함께 공부하는 과정은 소통이다. 학습 도움의 과정이 잔소리와 말다툼으로 변질되지만 않는다면 학년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유지해도 좋다.
아이들은 엄마가 알려주는 방법이 왜 좋은지 모른다. 어릴 때에는 그저 하라는 대로 따라 하지만 서서히 그것이 지겨워진다. 이 무렵 아이들의 입에서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가 자주 튀어나온다. 자신의 세계가 생겨나는 시기, 그 유명한 사춘기다. 이때는 엄마도 서서히 손을 놓아야 한다. 보통 초6~중2학년에 해당하는데, 아이들은 공부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부모와 떨어지려고 한다. 엄마가 내 책상을 치우는 것도 싫고, 주말마다 아빠와 운동하러 가는 것도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부모가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이전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공부를 챙기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대략적인 제시만을 해주고 구체적인 것들은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수학 성적이 많이 떨어진 것 보니까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했나 보다. 방학 동안 기말고사 범위였던 부분을 다시 공부하는 게 어떠니?”까지가 줄어든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수학 점수를 떠올려보고, 시험공부를 제대로 못했던 것을 생각한다. 그 이후의 공부는 아이들의 몫. 아이가 구체적인 지도를 거부한다면 방법을 알려주되 반복하여 강조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의 간섭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혼자 공부를 해 나간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스스로 겪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시험기간 혼내가며 공부하는 것은 점수를 위한 공부를 가르치는 꼴이 되어 매우 위험하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로 자기만의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이 자리잡기까지는 2~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중3~고2 정도다. 잔소리도 참고,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모른 척 격려도 해야 하는 시기. 자녀에게 도움을 주며 보람을 느끼는 부모에게는 참으로 힘든 기간이다. 한 엄마는 이 기간을 ‘도 닦는 기간’이라 표현했다. “이제 부처가 될 지경이에요”라며 묵직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도 스스로 잘하고 싶어 한다. 점수 욕심도 있으며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노력도 한다. 예전에 엄마랑 공부했던 방법도 떠올려보고, 선생님 말씀대로 해보기도 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어떻게 공부하나 물어보기도 한다. ‘이것이 나에게 맞는 공부구나’라는 느낌은 스스로의 경험과 인지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산물이다. 자기만의 공부틀을 가질 수 있도록 지켜봐주자.
아기들은 걷기를 배우기 위해 2000번 정도 넘어진다고 한다. 나만의 공부 감각, 균형적인 자기관리를 위해서는 걷기를 배우는 것 이상의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부모라면 기다려주자. 부모니까 지켜보아 주자. 부모가 아니면 아무도 그 과정을 사랑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교육> 기획위원
<초등 4학년부터 시작하는 자기주도학습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