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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인민은 변덕스러워 무장한 예언자만이 성공한다

등록 2011-12-12 13:19

군주론
군주론
[통합논술 세미나] 난이도 수준 중2~고1
<군주론> 1. 군주의 통치자세
■ 책 소개

<군주론>
마키아벨리 지음/강정인·김경희 옮김/까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걸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책 <군주론>에서 나왔다. 우리는 <군주론> 하면 음모와 배신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군주론>의 한 측면일 뿐이다. <군주론>은 여러 나라로 분열돼 외세에 휘둘렸던 이탈리아가 통일되기를 바라는 마키아벨리의 열망이 들어 있다. 또 과거 정치사상가나 철학자들이 자신의 이상에 현실을 꿰맞추려 했던 데 비해 <군주론>은 냉정한 현실 분석으로 정치 법칙을 끌어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 했다. 정치는 도덕이나 종교와는 구분되는 정치 그 자체의 논리와 법칙이 있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은 근대 정치학의 시발점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군주론>을 읽을 필요가 있다.

■ 풀무질
니콜로 마키아벨리.  <한겨레> 자료사진
니콜로 마키아벨리. <한겨레> 자료사진

< 군주론>의 주 내용은 세습 군주국과 복합 군주국(새로 생긴 군주국이 아니라 종래 있던 군주국에 수족처럼 병합된 경우)의 운영법, 점령되기 이전 자신들의 법에 따라 살아온 도시나 군주국을 다스리는 법, 자신의 무력과 역량으로 세운 신생 군주국과 타인의 무력과 호의로 세운 신생 군주국의 비교 등이다. 이런 <군주론>을 음모와 배신의 정치학 교과서로 악명을 떨치게 만든 건 중간 중간 도덕을 무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어·관습·제도가 다른 지역을 병합했을 때 통치법을 서술한 부분을 보자. 최선의 방법은 정복자가 그 지역에 가서 친히 정주하는 것이다. 만약 여의치 않으면 정복한 영토의 거점이 될 수 있는 한두 곳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대규모 무장병력을 주둔시켜야 한다.

이렇게 말하던 마키아벨리는 갑자기 “이때 주의할 것은 어중간한 조치는 결단코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력과 역량으로 얻게 된 신생 군주국을 분석하면서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만이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과 비슷하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자신의 역량으로 군주가 된 인물들 가운데 모세·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테세우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영웅) 등이 가장 뛰어나다. 새 국가를 세우고 새 제도를 만들면 구질서에서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는다.

따라서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성공한 반면,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한다. 무장한 예언자는 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 밀어붙일 수 있다. 인민은 변덕스럽다. 그들은 한 가지 일과 관련해 설득하기는 쉬우나, 설득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민이 군주를 더 이상 믿지 않을 경우, 힘으로라도 믿게끔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평민 출신으로 기원전 4세기 시라쿠사의 왕이 됐던 아가토클레스는 수없이 배신과 잔인한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나라를 안전하게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아가토클레스가 “가해 행위는 단번에, 시혜 행위는 천천히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가해 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킨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 건 시민형 군주국이었다. 일개 시민이 사악한 방법이나 폭력이 아니라 동료 시민들의 호의에 의해서 군주가 되는 게 시민형 군주국이다. 시민형 군주가 되는 데는 인민의 호의에 의한 방법과 귀족의 호의에 의한 방법이 있다.

귀족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인민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사람보다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스스로를 군주와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 군주가 원하는 대로 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가 된 사람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 주위에 반대할 인물이 없거나 있어도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해는 일거에, 시혜는 천천히

따라서 인민들의 호의로 군주가 된 사람은 그들의 환심을 계속해서 사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민들이란 단지 억압당하지 않는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은 어렵지 않다. 군주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인민들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경에 처했을 때 속수무책 상태에 빠진다. 이처럼 다양한 군주국의 행태를 설명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2장에서 모든 군주국이 채택할 수 있는 공격과 방어의 일반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모든 국가의 주된 토대는 좋은 법과 좋은 군대다. 좋은 군대가 없으면 좋은 법을 가지기 불가능하고,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법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여러 나라들은 용병을 사용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용병과 원군(援軍)은 무익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한다.

군주는 유능한 용병대장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는 고용주인 군주를 공격하거나 군주의 의사에 반해서 다른 자들을 공격함으로써 오직 자신만의 권력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만약 용병대장이 평범하다면 군주는 당연히 몰락한다.

군주는 최고 통수권자로서 친히 군대를 인솔해야 한다. 만약 공화국이라면 시민을 장군으로 파견해야 한다. 파견된 장군이 유능하면 그가 월권하지 않도록 법적인 통제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원군, 즉 외국의 지원군 역시 쓸모없다. 그들이 패배하면 군주는 몰락할 것이고, 그들이 승리하면 군주는 그들의 처분에 맡겨지기 때문이다. 외국 군대를 이용해 얻은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로마제국은 고트족을 용병으로 이용하면서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무력에 근거하지 않는 권력의 명성처럼 취약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는 격언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자신의 무력이란 자국이 신민 또는 시민, 아니면 자신의 부하들로 구성된 군대를 말하며,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용병이나 원군이다.

■ 마치질

좌절된 마키아벨리의 출세 욕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쓰인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우선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출세하려는 개인적 욕구에서 비롯됐다. 1469년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어릴 때부터 착실한 교육을 받아 29살에 피렌체의 제2장관직에 올랐다. 당시 피렌체는 공화정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외교와 군사 부문에서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1512년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복귀하면서 관직을 잃었다. 1513년 2월에는 메디치 가문에 반역을 꾀했다는 혐의로 투옥됐다. 3월 석방된 마키아벨리는 그해 7~12월 사이에 <군주론>의 초고를 집필했다. 메디치가에 잘 보여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군주론>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이라는 헌정사가 붙어 있는데 “최근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지속적 경험과 꾸준한 고대사 공부로 배운 위대한 인물들의 행위에 대한 지식을 작은 책자로 만들어 전하에 대한 복종의 표시로 바치려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마키아벨리가 1513년 12월 당시 교황청 대사로 주재하던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는 더 노골적이다.

“이 책을 바치고자 하는 이유는 제가 곤궁한 처지에 봉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며, 현재의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빈궁함으로 인해서 경멸을 받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저는 메디치 군주들이 비록 저에게 돌을 굴리는 일(아주 사소한 일-편집자 주)부터 시작하라고 해도, 저를 채용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한데 로렌초 데메디치는 <군주론>을 들춰보지도 않았다. 마키아벨리의 계획은 좌절된다. 그는 고위직은 얻지 못했으며 말년에는 하급공무원 생활을 했다. 한데 1527년 메디치 정권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재건됐다. 마키아벨리는 기본적으로 공화주의자였으나 메디치 정권에서 하찮은 일이라도 했다는 이유로 공직을 맡을 수 없었다. 실의에 빠진 마키아벨리는 1527년 6월22일 숨졌다. 1532년 <군주론>이 출판됐다.

그러나 단지 마키아벨리가 개인적 욕구만으로 <군주론>을 저술한 건 아니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의 영광이 서린 땅이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이 서기 476년 게르만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한 뒤 형편없는 곳이 됐다.

마키아벨리 생존 당시 이탈리아는 중부의 교황령과 피렌체 공화국, 남부의 나폴리 왕국, 북부의 베네치아 공화국과 밀라노 공국 등 크게 5개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탈리아는 강력한 중앙집권 권력이 만들어지고 있던 스페인과 프랑스 등 외세의 각축장이 돼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이스라엘인들보다 더 예속되어 있고,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억압받고 있으며, 아테네인들보다 더 지리멸렬해 있는데다가 인정받는 지도자도 없고, 질서나 안정도 없으며,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갈기갈기 찢기고, 유린당하여, 한마디로 완전히 황폐한 상황에 있습니다.” (<군주론> 26장 ‘야만족의 지배로부터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한 호소’)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권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이탈리아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봤던 것이다.

■ 담금질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한 마키아벨리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한겨레> 자료사진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불신의 대상이다. 모든 직업군 가운데 정치인들의 신뢰도는 최하위권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인들을 비판하지만 당연하게 인정하는 게 있다. 권력욕이다. 정치인들의 권력 욕구, 집권 욕구는 당연하다. 권력욕이 없는 정치인은 마치 우승 욕심이 없는 운동선수로 본다.

2007년 17대 대선 때 고건 전 총리가 한때 유력주자였으나 본선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당시 고 전 총리에게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권력의지가 너무 없이 남이 밥상 차려주기만 바란다”는 평가가 있었다.

권력욕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집권해 권력의 힘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이기심은 고대나 중세사회에서는 기피 대상이었다. 그러나 근대가 시작되면서 달라졌다.

예를 들어 애덤 스미스가 1776년 발표한 <국부론>은 인간의 이기심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이기적 존재지만 시장이라는 공간은 이를 사회적 이익으로 바꾼다고 주장했다. 근대의 출현을 상징하는 지표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이기심의 긍정이다. 한데 <군주론>은 인간의 이기심을 당연한 것으로 봤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 세이빈이 쓴 <정치사상사>는 <군주론>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정책에 관해 언급한 거의 모든 것의 배후에는 인간 본성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정치가가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사실상의 행동 동기는 대중의 안전에 대한 욕구 및 통치자들의 권력욕과 같은 이기적인 것이라는 가정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실로 국가권력의 지원 없이는 다른 개인의 침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개인의 허약성과 불안전성에 기반한다…특히 마키아벨리는 재산과 생명의 안전이 인간 본성의 가장 보편적인 욕구이므로 정부가 성공하려면 재산과 생명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그보다 119년 뒤에 태어난 토머스 홉스(1588~1679)의 예고편이다. 홉스는 대표작 <리바이어던>에서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 능력도 비슷하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누구든지 똑같은 수준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이는 극히 자연적인 자기 보존 욕구다.

한데 두 사람이 서로 같은 걸 원하지만 그것을 똑같이 누릴 수 없다면 적이 돼 싸우게 된다. 이런 불신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생겨난다. 인간은 전쟁 상태를 피하기 위해 서로 계약을 맺고 자기의 권리를 양도하니 여기서 국가가 탄생한다. 국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권력의 독점권을 가진다.

<군주론> 이전에 통치자의 이기심과 권력욕을 마키아벨리처럼 노골적으로 긍정한 인물은 없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근대 정치학의 시조라고 부르는 것이다.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아래 지문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관점과 비교·분석해 보시오. (600자)

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사람이 사회를 떠나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과 사회 간의 이러한 불가분의 관계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며 개인이 성장하면서 점차 다양해지고 그 범위도 확대된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거나 경쟁하고 때로는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개인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조절하고 규제하여 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 따라서 사회에는 질서 유지를 위한 규범이 필요하고, 공동의 목표와 수단에 대한 합의를 위하여 협력하는 조직적인 활동이 필요하게 된다. 국가는 이와 같은 인간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등학교 정치>(천재교육)

② 민주적 도덕 공동체의 구현 원리는 함께 사는 삶, 자유로운 삶, 인간다운 삶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함께 사는 삶’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인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생겨나는 갈등을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절하는 원리와 관련된 것이다. 공동체 내의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여러 가치들, 예컨대 재화·지위·명예 등은 기본적으로 그 양이 제한되어 있다.

한정된 것을 놓고 여러 사람들이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힘쓰다 보면, 과열 경쟁과 충돌이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경쟁과 충돌은 더욱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경쟁적이고 갈등적인 이해관계를 되도록 마찰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이해 조정을 위한 합의의 도출이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인류의 정치적 경험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바로 이 합의의 효과적 구성 방안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육인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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