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일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
기고 - [학교스포츠긴급점검] 내 아이 운동부 보내기 겁난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국내 명승지를 견학하면서 3박4일 정도 선생님과 친구들과 ‘한솥밥을 먹고 함께 잠자며’ 쌓은 특별한 경험은 가정이나 학교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하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즐거운 수행여행의 추억은, 우리나라 학생 운동선수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학생 운동선수의 68%는 합숙소나 기숙사에서 1년 내내 공동생활을 하면서 수학여행조차 못가고 일반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인들이 집에서 떨어진 아고게(Agoge)라는 공동교육소에서 7살부터 아이들에게 인내와 충성을 가르치며 집단생활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20살까지 계속된 교육기간 동안 그들은 전사로 성장하는데, 만일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채찍질과 굶기기란 방식의 통제로 어린 시절부터 고된 신체훈련을 시킨다. 이러한 스파르타교육이 우리나라 학교 운동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2003년 3월26일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나 9명의 어린이가 숨지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이런 엄청난 사건에도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은 게 우리나라다. 더욱이 합숙소는 학습을 위한 학교의 공식시설물이 아니며 운동부 운영을 위한 필수시설물도 아니다.
학교 안에 있으면서 학교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운동선수들이 불쌍하다. 청소와 빨래가 기다리고, 선배들 눈치나 보고 때로는 구타가 이뤄지는 합숙소 생활에서 운동선수들이 해방돼야 한다. 그들이 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가게끔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 폐쇄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와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줘야 한다.
학교는 여관이 아니고, 학생 운동선수는 운동기계가 아니다. 학교장과 교육청은 학생과 교사들에 대한 책무를 다해야 하며, 학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투기하듯 합숙소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학기 중에는 합숙을 금지시킨다고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지켜질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합숙소 폐지를 학교운동부 폐지로 받아들이는 무책임과 무대책을 내놓아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라는 격언 뒤에 우리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면서 이제는 학부모, 교장, 교육장 등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학생들은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수학여행도 경험해야 한다. 그들은 선수 이전에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배워야만 하는 학생이요, 우리들의 미래요, 꿈나무들이기 때문이다.
나영일/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
나영일/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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