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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1년에 절반 ‘갇힌 훈련’…외박은 주말에나

등록 2005-07-19 18:34수정 2005-07-19 18:46

[학교스포츠긴급점검] 내 아이 운동부 보내기 겁난다
② 합숙소의 아이들

1.누가 이들을 때리는가?
2.우리도 외박 나가고, 휴가 가요.
3.학생인가? 프로선수인가?
4.지도자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5.금메달에 희생된 수많은 선수들
6.대학을 바꾸자, 연고대부터

20여평의 방 한쪽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는 옷들이 가득 걸려있다. 실내화와 봉 걸레, 커다란 빗자루, 그리고 짝잃은 양말. 책상 하나 없고, 책 한권 보이지 않는다. 덩그런 벽에는 흔한 복사 그림 하나 없다. 싱크대와 화장실도 모두 같은 공간에 있다. 서울에 있는 한 여중학교 축구부 25명을 수용하는 합숙소 풍경이다.

“학교에서 합숙해요. 주말엔 외박가요.”(서울 한 여자중학교 축구선수)

중학교 2학년 15살 여학생 입에서 ‘외박’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서울에 사는 이 선수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지하철로 30분 거리. 그런데 여럿이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는 합숙을 하고, 주말에만 집을 찾는다.

한국의 학원스포츠 선수라면 모두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다. 서울의 한 여고생 축구선수(2학년)는 “집은 마장동이다. 그런데 공릉동에서 합숙한다”고 말한다. “집에서 다니는게 좋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집에서 다니면 피곤해요”라고 농담을 한다. 그러더니 “사실 집에서 다니면 좋죠”라고 본심을 말한다.

가건물에 수십명씩 수용 사생활 간섭도 군대식
천안초교 화재사건 뒤에도 교육부 폐쇄명령 ‘공염불’

합숙은 한국 학원스포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사한 ‘전국 각급 학교별 운동부 합숙소 현황’(2004년 6월)을 보면, 전국 초·중·고 합숙소는 모두 1291개다. 고등학교(555개) 중학교(536개) 뿐 아니라 초등학교도 200개나 된다. 교육부는 2003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건 이후 합숙소를 폐쇄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합숙소가 운영된다. 운동부 코치들은 선수들을 한 군데 몰아넣어 집중적으로 훈련해야 성적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부 지도자들은 휴대폰을 빼앗는 등 사생활에도 간섭하고 있다.


그러나 합숙훈련을 받는 선수들의 생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대한체육회가 2005년 발간한 ‘선수폭력 실태조사 및 근절대책’을 보면 조사대상인 초·중·고·대학 선수 1600명의 34.8%가 ‘합숙의 효과는 없다’고 응답해 효과가 있다(32.5%)는 쪽을 앞질렀다.

대부분 가건물로 지어진 합숙시설은 부실하기만 하다. 학교가 원천적으로 재정을 지원할 여력이 없어 선수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40만~50만원의 합숙비로 운영되기에 상황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아침은 합숙소 아주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한다. 저녁은 다시 합숙소에서 먹는다. 성인남자들이 가는 군대와 다르지 않다.



이런 곳에서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의 보조연구원 김숙씨는 “분명히 아이들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합숙소엔 그런 공간이 없다. 어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상처받기 마련”이라고 걱정한다. 스포츠클럽 활동이 활발한 유럽에서는 유소년들이 멀리 가서 원정경기를 할 경우에는 외박을 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쓰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한국 상황은 너무 척박하다.

올해 만 17살의 신아무개 선수는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축구팀 미드필더다. 그러나 그는 주말에도 고향인 광주에 가지 않는다. 일요일 밤까지 돌아와야 하고 차비도 많이 들어서다. 그래서 주말 외박 나와서는 친구집으로 가서 어울리는데 남의 집이라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보통 대회가 끝나면 3일 휴가받고, 여름·겨울 방학 때 1주일 휴가 가요.” 1년에 4~5개 대회가 있다고 보면 집에 가는 날은 1년에 한달이 채 못된다.

합숙제도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건 어른들의 욕심이다. 그 속에서 심성은 깨지고 상처받고 주눅들어 기를 펴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1인1기’ 즐기는 운동 활발 시험땐 훈련단축 ‘상식’

이웃 일볼에선

이웃나라 일본의 학원스포츠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 운동부가 우선이 아니라 운동을 즐기는 게 먼저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미카게고등학교를 사례로 일본 학원스포츠 현황을 들여다본다. 지난 5월16일부터 21일까지 현장을 방문하고 온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이용식 연구원(교육학 박사)이 도움말을 줬다.

일본의 건강함은 학원스포츠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학교마다 기본적으로 수영장과 체육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운동부(동아리) 활동은 매우 활성화돼 있다. 학과 뒤 운동부 활동이 시작되는데, ‘즐거운 학교’가 핵심이다. 지도자는 주로 학교 선생님이 맡는다. 자원봉사자가 와서 가르치기도 한다. 모든 선생님이 학창시절부터 1인1기 교육을 받아 자연스럽게 종목을 지도할 수 있다. 미카게고교 배구부는 영어 선생님이 감독이다. 그리고 교사 중심이 아니라 학생 중심으로 움직인다.

남녀공학인 공립 미카게고교는 1~3학년 전체가 826명이다. 이 중 529명이 축구(45명) 야구(46명) 테니스(66명) 농구(69명) 배구(48명) 정구(41명) 육상(31명) 수영(21명) 럭비(24명) 배드민턴(34명) 등 15개 운동부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10명 중 6.4명 꼴로 1개 스포츠 종목을 익히는 셈이다.

효고현(인구 555만574명·2000년 기준) 전체로 확대해보면, 고등학생 16만3090명 중 운동부에 들어가 활동하는 학생이 6만6478명으로 40.7%나 된다. 학교당 평균 운동부는 17개다. 효고현 전체 중학교도 학생의 70%가 운동부에 가입해 있고, 학교당 평균 운동부는 11개다.

운동부 운영시간은 보통 수업이 끝난 오후 4시부터 7시까지다. 운영비는 학생회비에서 일부 충당되고, 고등학생의 경우 월 400엔(4000원)과 연간 등록비 1800엔, 대회 참가비(매회 2천엔) 정도가 지출된다. 수준높은 운동부가 있는 팀으로 가기 위해서 추천을 받아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처럼 4강·8강에 입상해야 대학에 진학하는 제도는 없다.

가령, 일본 고교야구부는 3500개로 한국(50여개)의 70배에 이른다. 또 지역별로 1, 2, 3부리그 등으로 수준을 분리해 우수선수를 자연스럽게 키워내게 된다. 학년별로도 △1학년 △2학년 △3학년 △1~2학년 대회와 △1~3학년 통합대회 등 세분화돼 있다.

고교야구 최고 권위의 고시엔대회는 유일한 전국대회인데, 봄 방학(긴편임)과 여름방학 때만 실시된다. 야구팀은 50여개에 불과한데도, 8개 전국대회가 난립해 선수들을 혹사시키고, 여름·겨울방학 때도 합숙훈련을 하는 한국의 ‘준 프로고교선수’ 만들기와는 비교된다.

이런 식으로 즐기면서 운동부를 운영하다보니 학생들은 시험기간 때 운동을 그만두고, 공식대회에 출전하는 운동부도 1시간 정도만 훈련하는 게 상식화돼 있다.

이용식 연구원은 “일본의 특징은 문부성(한국의 교육인적자원부)이 학원스포츠의 모든 것을 관리 운영하면서 엘리트선수를 육성하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한국도 운동만 하는 학교운동부를 자발적인 학생들로 모인 학교스포츠 클럽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금 기자

*학원스포츠의 폭력과 비리 제보와 개인 경험담을 받습니다.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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