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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스타 민주주의’를 넘어 ‘풀뿌리 민주주의’로

등록 2012-01-02 12:00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60. <미국의 민주주의> 1·2권 - 시민은 만들어진다
<미국의 민주주의> 1·2권
알렉시 드 토크빌 지음임효선 옮김, 한길사

서양의 전쟁터에서는 신분이 분명하게 갈렸다. 튼튼한 갑옷은 귀족들만 갖출 수 있었다. 무척 비쌌던 까닭이다. 또한, 귀족들은 ‘기사’로 전쟁터에서 큰 몫을 했다.

상황은 총과 대포가 나오고 나서 바뀌었다. 총을 다루는 법은 익히기 쉽다. 총포 앞에서는 무예도 소용없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한 방에 죽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탓이다. 화약은 세상에 평등을 가져왔다.

인쇄술이 나오기 전, 책은 일일이 손으로 베껴 만들었다. 당연히 책은 귀하고 비쌌다. 때문에 특권층만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마침내 활자로 책을 찍어내게 되자, 책은 흔하고 값싸졌다. 이렇듯 인쇄술은 ‘지식의 평등’을 낳았다.

미국의 민주주의
미국의 민주주의

과학기술은 사회를 평등하게 만든다. 게다가 평등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대세(大勢)’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귀족이었던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이렇게 믿었다. 하지만 평등이 꼭 바람직하지는 않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폭동과 쿠데타는 끝없이 이어졌다. 혼란 속에서 사라졌던 왕과 귀족 제도는 자꾸만 부활했다. 평등이 혼란만 낳은 셈이다.

1776년에 태어난 미국은 어땠을까? 미국은 처음부터 ‘평등’을 앞세웠다. 그런데도 단 한 번의 쿠데타도, 독재정권도 없었다. 왜 그럴까? 혁명의 혼란 속에서 살았던 토크빌은 미국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아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 한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의 장점을 ‘자치제도’에서 찾는다. “미국인들이 자기 마을에 애착을 갖는 까닭은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마을 일에 참여하고 노고를 쏟은 덕분이다.”

당시 미국은 타운(town)이라는 마을 공동체 중심으로 꾸려졌다. 시민들은 누구나 마을의 업무를 떠맡았다. 마을 일이 곧 자기 일이었던 셈이다. 반면, 당시 유럽은 어땠을까? 나랏일은 왕과 귀족의 몫이었다. 평민들에게 공공(公共)의 업무는 ‘남이 해주는 몫’이었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싹틀 수 있을까?

토크빌은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잘라 말한다. 미국에서는 어디서나 토론이 벌어졌단다. 마을이나 국가에서 어떤 일을 하려 하건, 사람들은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타협과 조정의 기술을 몸에 익혔다.

“민주주의는 가장 뛰어난 정부를 낳지는 못한다. 그러나 가장 능력 있는 정부도 하지 못할 일들을 해낸다.” 민주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의견이 좌충우돌할 테다. 그 가운데서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이 사회를 이끌고 가면 어떨까? 민주주의를 할 때보다 더 큰 성과를 낼지 모른다. 하지만 시민은 점점 노예로 길들여질 테다. 의견을 펼치고 다른 생각을 조정하며 타협을 이끄는 기술은 자꾸 해봐야 몸에 밴다. 지도자 뒤만 쫓아다닌 이들에게 이런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왕이 지배했던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힘들었던 이유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의 단점도 꿰뚫어 본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독재로 떨어지기도 쉽다. 정치인들은 항상 ‘국민의 뜻’을 앞세운다. 과연 국민은 언제나 현명하고 도덕적인가? 민주주의에서는 표를 많이 받은 쪽을 따라야 한다. ‘전체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고, 정의로운 의견을 펼치는 이는 소수인 상황을 떠올려 보라. 이 경우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를 막기 힘들다.

게다가 미국 민주주의는 정치 무관심을 낳기도 한다.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 이 때문에 누구나 정치에 뛰어들 수 있다. 반면, 누구에게도 ‘꼭’ 정치에 참여해야 할 의무도 없다. 이 점에서 토크빌은 혀를 찬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유럽의 귀족제도보다 못하다고 말이다.

왕과 귀족은 ‘다스리는 역할’을 타고난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국가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 반면,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는 지도자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를 안고 사는 사람은 없다. 먹고살기도 힘들 때, 등 따습고 배불러 세상일에 신경 쓰기 싫을 때, 정치에 대한 관심은 뚝 떨어져 버린다. 이때 민주주의는 교활한 몇몇 정치가들에게 휘둘리곤 한다. 정치같이 귀찮은 일은 우리가 할 테니, 시민들은 마음 놓고 자기 일에나 신경 쓰라는 식이다.

그래서 토크빌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시민들은 자기 일만 신경 써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사회, 국가에 관심을 갖고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 혼자서는 제대로 의견을 펼치기 어려울 테다. 뜻이 같은 이들을 모아 단체를 꾸려,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생각과 이익을 주장해야 한다. 이럴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굴러간다. 시민들의 ‘민주주의 능력’도 제대로 길러지고 말이다.

토크빌의 잣대로 볼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우리에게 풀뿌리 민주주의는 아직도 멀리 있는 듯싶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스타 민주주의’에 가깝다. 안철수, ‘나는 꼼수다’의 정봉주 등 시민들의 바람과 답답함을 풀어주는 이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들에 대한 애정은 아이돌 스타에 견줄 만할 정도다.

반면, 현실의 여러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시민 모임은 턱없이 적어 보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토론보다 일방적인 지지나 경멸의 목소리들만 판을 친다.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토크빌의 말이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민주주의 스타’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시민들 스스로 의견을 펼치고 조정하는 능력이 자라나야 한다. ‘나꼼수’ 정봉주의 구속에 터지는 한숨소리가 더 갑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시사브리핑: ‘나꼼수’ 스타 정봉주 전 의원 구속지난 26일,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로 인기를 모은 정봉주(51) 전 민주당 의원이 수감되었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지난 22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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