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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어야 진짜 고전

등록 2012-02-06 16:16수정 2012-02-06 16:24

〈전을 범하다〉
〈전을 범하다〉
류대성 교사의 북 내비게이션
1. 문학의 즐거움 - ② 박제된 고전에 날리는 하이킥
<전을 범하다> 이정원, 웅진지식하우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조현설 외, 한겨레출판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설흔, 창비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민음사

아름다운 공주가 성의 맨 꼭대기 층에 갇혀 있다. 무시무시한 용이 지키는 성에서 멋지고 용감한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는 잠에서 깨워줄 달콤한 키스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지 않다. 하지만 못생기고 더러운 괴물 같은 주인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 <슈렉>은 고정관념을 뒤집고 기존의 동화를 패러디하고 비틀어 새로운 재미를 준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슈렉은 동화책을 찢어버리고 세상을 향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외친다.

고전(古典)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을 견뎌낸 모범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전은 인류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며 지혜의 보물창고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에 수록되고 추천도서가 되기도 하며 교양인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고전이 재미없다는 생각은 단순한 편견일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고전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고전에 생기를 불어넣는 전제조건은 ‘비판적 해석’과 ‘새로운 관점’이다. 고전이 재미와 생동감을 함께 줄 수 있다면 굳이 권하지 않아도 찾아서 읽게 된다.

다시 <슈렉>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영화에는 숲 속의 잠자는 공주를 비롯해서 피노키오, 피터팬 등 많은 고전 동화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주인공과 다르게 행동한다. 피노키오를 만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를 팔아버리고 피터팬도 팅커벨을 팔아넘긴다. 순종적이고 조신한 여성상의 전형인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부케를 받기 위해 서로 때리며 싸운다. 이처럼 <슈렉>은 뻔한 스토리의 재미없는 이야기가 아니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지루하게 하지도 않는다. 결국 못생긴 초록 괴물 ‘슈렉’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유쾌하고 즐겁게 역경을 헤쳐 나가며 친근하고 사랑스런 캐릭터로 변신한다. 고전문학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고전이 필요하다. 고전은 그렇게 거듭날 때 생명력을 얻게 된다. 우리 고전 <춘향전>이나 서양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로 만들어질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로 거듭나고 내용도 조금씩 달라진다. 고전은 화석처럼 굳은 모범 답안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해석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우리들의 자산이다.

고전문학을 읽을 때는 ‘시대상황’이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은 당대 사회의 가치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공포영화로 거듭나며 계모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 <장화홍련전>, 봉건사회의 신분질서에 반기를 드는 <홍길동전>, 넘을 수 없는 사랑의 벽을 실감하는 <춘향전> 등에 나타난 시대 상황은 현대사회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문학 작품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역사와 사회적인 지식만으로 고전문학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고전소설들의 주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 양분될 수 있을까. 박제된 고전에 하이킥을 날리는 <전을 범하다>는 우리 고전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준다. 고전문학에는 현실 비판의 칼날이 숨어 있고 도덕이라는 폭력과 억압적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는 저자 이정원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심청 살인사건의 은밀한 내막을 밝혀주고 별주부가 식구들과 이별하는 대목에 주목하며 양반 비판의 공허한 진실을 알려준다. 장화홍련전에서 적벽가, 지귀설화, 전우치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전문학의 대표적인 소설과 설화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재미는 ‘충’과 ‘효’ 그리고 ‘정절’로 간단하게 정의될 수 없다. 고전문학은 윤리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에 재미있게 접근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인물과 작품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세상과 불화한 두 천재 ‘월명사’와 ‘최치원’을 비교하고 삼국의 여성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읽어낸 ‘김부식’과 ‘일연’을 비교하며 최고의 문장을 자랑했던 ‘이인로’와 ‘이규보’ 등 열여덟 명을 비교한다. 고전문학 연구자들이 들려주는 아홉 쌍의 라이벌은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들의 삶과 시대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남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이 책에서 여덟번째로 비교하고 있는 ‘이옥’과 ‘김려’는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라는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두 중세인이 처해 있던 시대의 답답함과 우정을 그려낸 이 책은 역사적 기록과 그들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친구의 우정과 삶을 멋진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등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서양의 고전도 이렇게 끝없이 재해석되고 현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수많은 동화의 변형과 마찬가지로 미셸 투르니에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라는 소설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재해석했다. 방드르디(Vendredi)는 원주민 소년 프라이데이(Friday)의 프랑스 이름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를 홀로 개척하는 영웅이고 프라이데이는 계몽시켜야 할 미개인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둘의 관계가 뒤바뀐다. 방드르디에게 무인도는 ‘문명’이 없는 행복한 낙원이지만 로빈슨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로빈슨이 아니라 방드르디에게 초점을 맞춘 이 소설은 인간 중심,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작가는 현대적 관점에서 고전의 통념을 깨뜨린다.

고전은 늘 이렇게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세계에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있는 고전을 즐기려면 새롭고 다양한 관점으로 고전을 재해석한 책을 먼저 만나보는 것이 좋다. 그러고 나면 그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제된 고전을 팔딱거리는 생선처럼 숨 쉬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분당 수내고 교사, <국어 원리 교과서>·

<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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