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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생회장’이 아니고 ‘기여일꾼’입니다

등록 2012-03-05 15:22

① 지난해 송남초 3학년 1반 학생들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설명을 들으며 투표를 준비하던 모습이다. ② 선거관리위원회 일을 맡았던 김산군은 “투표함과 투표용지 등을 만들고 선거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③ 대안적인 학급임원 문화 속에서는 규칙과 처벌, 칭찬에 대한 법률도 학생들 스스로 만들기 쉽다. 지난 2010년 대방초 5학년 1반 학생들이 두 친구의 다툼을 보고 재판을 연 결과 내린 판결문. ④ 지난 2010년 대방초 5학년 1반 학생들이 규칙을 어긴 친구를 피의자로 불러 재판을 열던 모습이다.   송남초 김태곤 교사, 천왕초 장대진 교사 제공
① 지난해 송남초 3학년 1반 학생들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설명을 들으며 투표를 준비하던 모습이다. ② 선거관리위원회 일을 맡았던 김산군은 “투표함과 투표용지 등을 만들고 선거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③ 대안적인 학급임원 문화 속에서는 규칙과 처벌, 칭찬에 대한 법률도 학생들 스스로 만들기 쉽다. 지난 2010년 대방초 5학년 1반 학생들이 두 친구의 다툼을 보고 재판을 연 결과 내린 판결문. ④ 지난 2010년 대방초 5학년 1반 학생들이 규칙을 어긴 친구를 피의자로 불러 재판을 열던 모습이다. 송남초 김태곤 교사, 천왕초 장대진 교사 제공
대안적인 학급임원 문화를 찾아서
‘러닝메이트제’로 학급임원 뽑아요

“작년 임원선거요? 저는 선거관리위원회 일을 했어요. 선거하는 날짜도 알리고 아이들한테 후보도 추천받았어요. 투표함이랑 투표용지를 만들었던 것도 기억나요.” 충남 아산 송남초에 다니는 김산(4년)군은 3학년 때 치른 학급임원 선거를 잊지 못한다. 선거관리위원회 대표를 뽑는다는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멋져 보여서’ 시작한 일이다. 큰 기대 안 했지만 배운 게 많았다. “선거에선 부정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부정선거가 안 되도록 선거 기간 동안 후보들을 잘 살펴봤어요. 또 해보고 싶어요.”

김군이 있던 학급에서 임원 후보로 나오려면 반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야 했다. 담임교사도 이 작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후보는 혼자가 아니다. ‘팀’ 단위로 나온다. 이 학급에서는 ‘러닝메이트제’로 학급임원을 뽑았다. 3명의 후보자가 팀을 이뤄 입후보를 한 뒤 공약을 발표하고, 선거유세를 한다. 학급 구성원들 앞에서 질문을 받는 시간도 있다. 출마하는 팀에 여자가 둘이면 남자가 한 명 있어야 하고, 남자가 둘이면 여자가 한 명 있어야 한다. 이렇게 남녀 성비도 맞춘다.

이런 방식의 선거를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담임이었던 김태곤 교사는 “가능하면 기회를 균등하게 주고 싶어 러닝메이트제를 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임원선거는 발표력이 좋거나 성적이 높은 친구들이 중심이 됩니다. 러닝메이트제를 하면 후보로 나온 팀에 흔히 회장감으로 생각 못 했던 아이가 들어갈 수도 있죠. 학급에서 두드러지지 않던 아이들에게도 임원에 도전해볼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학급 대표를 뽑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학급임원들이 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회장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는 중간해결자, 담임의 스파이라는 인상이 깊다. 교사는 임원에게 학생들을 통솔하라는 식의 임무를 줄 때가 많다. 이 과정에서 회장은 왜곡된 권력을 행사한다. 때론 소외되기도 한다. 누가 회장이 되는지에만 주목했을 뿐 회장이 어떤 일을 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탓이다.

김 교사네 학급에서는 학급임원을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학급임원은 회장 또는 부회장이 아니라 ‘자치·기여일꾼’으로 불린다. 자치 활동을 하면서 학급자치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나씩 더 한다는 의미다. 학급임원들은 고유의 회장, 부회장 역할인 학급회의 진행 등을 하면서 한 가지씩 할 일을 갖는다.

같은 학교 김가람(4년)군은 지난해 1학기 회장을 하면서 온라인 학급카페 관리, 학급 행사 사진촬영 등을 맡았다. 전광(4년)군은 1학기 부회장을 하면서 우유를 날랐다. 2학기 회장을 했던 이금납(4년)양은 매일 신문을 모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팀으로 입후보를 하면서 자치·기여일꾼이 느끼는 부담도 덜하다. 전광군은 “혼자 하기 힘든 일들이 있는데 같이 나온 친구들이랑 나눠서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감춰져 있던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 교사는 “한 번도 후보로 추천된 적이 없는 아이, 흔히 말해 회장이 되기엔 어려운 아이도 입후보를 하면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일꾼 역할을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방식의 학급임원 문화를 경험하면서 학생들은 임원에 대한 고정관념도 버린다. 김산군은 “회장은 심부름꾼 같다”고 말한다. “회장은 선생님을 대신하는 사람이라고들 많이 생각하잖아요. 어떤 학교에서는 회장이 선생님을 대신해서 문제도 내고, 숙제도 내더라고요. 근데 우리 반에서 학급임원은 수업 끝나면 칠판을 지우고 우유를 가져오는 일을 했어요. 꼭 일꾼 같았어요.”

대통령, 입법부, 사법부 있는 교실도

최근엔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임원을 맡는 ‘순환회장제’도 늘고 있다. 학급임원이 아니면 학급 일에 참여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나온 대안이다.

서울 문창중 1학년 임소희양은 대방초 5학년이던 지난 2010년 독특한 학급임원 문화를 경험했다. 학기 초에 회장 2명, 부회장 2명을 뽑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학급의 임원 선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뽑힌 남녀 회장 가운데 득표수가 많은 친구는 대통령이 된다. 나머지 세 사람은 득표수에 따라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고른다. 담임교사는 이들과 관련한 부서에 대해 설명한 뒤 어떤 세부 부서가 있는지 알려준다. 크게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있다. 나머지 학생들은 이 부서 가운데 한 곳에 소속돼 활동한다. 엄밀히 말해 학급에 ‘대표’는 없다. 아니 학생들 모두가 대표다. 학생들 모두 각자의 부서에서 대표 역할을 하며 학급 일에 참여한다.

당시 담임을 맡았던 장대진 교사는 “이런 학급운영을 두고 ‘땡굴이 나라 프로젝트’라고 불렀다”고 했다. “각 부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이들의 이름도 재미있게 지었어요. 입법부의 국회의원은 ‘땡굴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의 줄임말’로 ‘땡복’이라고 했고, 행정부의 경찰은 ‘땡굴이 지킴이’를 줄여서 ‘땡지’라고 했습니다. 행정부에는 경찰 말고도 검사와 반의 환경미화를 책임지는 꾸미기부가 있었죠. 사법부에는 판사가 있었고요. 학생들이 회의를 통해 부서를 하나 더 만들자고 하더군요. 그때 한창 촛불집회가 사회 이슈였는데 아이들이 ‘촛불시위대’라는 이름의 시민단체를 추가하자고 했죠.”

학생들은 대통령이 안 됐다고 서운해하지 않았다. 대통령이라고 권력을 휘두를 순 없었다. 권력만큼 중요한 게 학생들이 모두 모여 만든 ‘법’이었다. 땡굴이 나라 회의를 통해 등교시간도 8시30분에서 8시50분으로 바꿨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급임원을 해봤던 임소희양한테 반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이런 방식의 임원 활동은 새로웠다. “저는 여자 회장이어서 국회의장을 맡았어요. 전에는 학급 회장이면 선생님 심부름을 하거나 떠든 친구 이름을 적어 내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5학년 때는 자기 역할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 반을 이끌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원 자체가 없는 학교도 나오고 있다. 올해 서울 오남중 1학년 김이랑양은 6학년이던 지난해 천왕초등학교에서 ‘다모임’을 경험해봤다. ‘다모임’이란 모든 학생들이 다 모여 자기 의견을 내고 토론·토의 과정을 거쳐 민주적인 결정을 내리는 회의 시간이다. 이 학교에는 회장이나 부회장 등 임원이 없었다. 6학년 2학기에 천왕초로 전학을 왔던 김양한테는 새로운 문화였다. 김양은 “전에는 임원선거를 할 때 정말 그 자리만을 차지하려고 경쟁이 붙어서 살벌했다”며 “심지어 엄마까지 오셔서 인기를 얻으려는 활동을 했다”고 했다. “전학을 오기 전에는 회장들끼리만 전체회의를 했거든요. 아이들이 자기 주장을 펼치고 싶은데 회장들만 나가게 되니까 그런 자격이 없는 친구들은 자기 생각을 말할 기회가 없었죠.”

학급임원 문화는 학생 자치활동이 강조되는 때 힘을 얻어 더욱 변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울 수송초 배성호 교사는 “임원순환제도 나오고 있고, 학급 회장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며 “기존에 하던 방식의 임원선출과 임원 운영 방식을 재고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학급임원도 그렇지만 전교임원이 되려고 애쓰는 일이 많죠. 제일 슬픈 게 이런 걸 해보려고 돈 들여서 명함이나 팸플릿을 만드는 친구들도 있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연설문을 써 줘서 본인이 무슨 공약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친구도 있고요. 임원을 왜 하는 거고, 임원이 뭘 할지를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오직 당선이 되려고만 애를 썼던 겁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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