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 교문 앞 횡단보도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학교에서 두발을 규제하는 탓에 대다수 학생의 머리가 스포츠형이다.
앞머리 5㎝·휴대폰 금지…‘서릿발 규제’ 여전
단발 강요에 손톱 위생상태 검사까지…학생들 “감옥같다”
일부 교사, 교육법 개정안 통과되자 “조례 무력화됐다” 강변
단발 강요에 손톱 위생상태 검사까지…학생들 “감옥같다”
일부 교사, 교육법 개정안 통과되자 “조례 무력화됐다” 강변
7일 오전 7시30분 서울 용산구 용산고 교문 앞. 2학년 ㅈ(16)군은 교문 안에 서 있는 학생지도 교사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에 숨어 불안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ㅈ군은 교문 앞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면서 대부분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깎은 다른 학생들이 몰려오자 이들에 섞여 학교에 들어갔다. “‘앞머리 5㎝’를 넘으면 안 됩니다. 걸리면 이름을 적은 뒤 바로 미용실에서 자르고 오라고 하거나 운동장 뛰기를 시켜요.”
학교 앞에서 만난 1학년 ㄱ(15)군은 지난달 26일 열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받은 자료집을 보여줬다. 자료집에는 ‘학력신장을 위한 5무(無) 운동’이라며 △지각하지 않기 △수업시간에 졸지 않기 △다투지 않기 △휴대전화 휴대 금지 △담배 피우지 않기 등이 적혀 있었다. ㄱ군의 머리카락은 길이 2㎝도 안 돼 보일 만큼 파릇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교사가 ‘웬만하면 스포츠형으로 깎으라’고 해서 짧게 깎았어요. 지금은 점퍼를 입고 있지만, 실내에 들어가는 순간 점퍼도 벗어야 합니다.” 이날 오전 서울의 기온은 영하 1도였다.
지난 1월27일 서울시교육청이 ‘복장과 두발 등 규제 금지’와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소지 규제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지만, 새 학기가 시작된 일선 학교에서는 두발 단속과 휴대전화 소지 금지, 손톱 검사 등 권위주의적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7일 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서울학생인권조례 누리집 학생 게시판을 보면, 학교의 학생인권조례 침해 사례를 고발하는 글이 수십건 올라와 있다. 서울 ㅅ여고의 한 학생은 “머리를 묶고 다녀도 머리띠를 풀고 자로 길이를 잰다”며 “파마나 염색은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단체로 단발을 하고 다니나”라고 썼다. ㅅ고의 한 학생도 “교사들이 일일이 교실을 돌면서 다음주부터 손톱 등 위생상태와 두발, 용의복장 등을 검사한다고 한다”며 “무슨 감옥 같다”는 글을 올렸다. ㄷ고의 한 학생은 “두발에 신경 안 쓴다고 성숙한 학생이고 신경 쓴다고 철부지 학생인 게 아닌데, 2012년에 두발 규제 따위에 목숨을 거는 학교가 답답하고 한심하다”며 “교사들이 두발 자유에 반대하는 까닭은 학생에게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칙을 제·개정하는 경우 교육감의 승인을 받도록 한 절차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하자, 학생들에게 “이제 학생인권조례가 무력화했다”고 강변하는 교사도 있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학생지도 교사가 ‘교육감은 시장 격이고, 교과부 장관은 대통령 격이니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끝났고, 두발 규제도 할 수 있다’는 부정확한 내용으로 학생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개학한 지 1주일이 되는 9일까지 실태를 점검한 뒤 공식적인 시정조처를 요구하는 지침을 내려보낼 계획이다. 시교육청 책임교육과 관계자는 “7일 현재까지 20여개 중·고교에서 학생인권조례에 반하는 규제 사례가 접수돼, 11곳에는 일단 구두로 시정을 요구했다”며 “개선되지 않을 경우 공문으로 지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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